여기는 당연히, 극장 / 미아리고개예술극장
몇 달 만에 본 연극이다. 연극에는 곡비, 소비, 위대한 곡비가 나온다. 곡비는 남을 위해 울어주는 사람, 소비는 남을 위해 웃어주는 사람이다. 위대한 곡비는 곡비들 중에서도 어떤 반열에 오른 사람이다.
세 배우의 말을 세 명의 수어통역사가 교차하여 통역했다. 한 사람은 모든 말을 통역했고, 두 사람은 대화를 나누는 두 사람의 이야기를 나누어 통역한 것 같다. 검은색 화면에 자막도 나왔다. 배우의 연기를 계속 보고 있기 어려울 때, 대사의 맥락을 더 잘 이해하고 싶을 때 자막에 눈이 갔다.
연극을 보며 웃었다. '곡비가 하나둘 사라져 결국 '남는 사람'이 되어 개중에 상대적으로 위대한 곡비가 되는 것은 기쁜가' 하는 질문을 들으면서였다. 냉소적이다. 하지만 이 문장이 나오기까지 어떤 경험과 사고의 과정이 있었을지 상상해보게 됐다.
이외에는 "무엇을 위해, 누구를 위해 우는가"라는 위대한 곡비의 질문이 기억에 남았다.
물론 연극은 친절하지 않다. 그렇다고 아주 관객을 외면하지도 않는다. 나는 그 '뒤돌아서기 직전의' 모습을 한 여당극의 연극을 줄곧 좋아했다. 오늘은 많이 웃거나 울지 않았다. 어둡고, 말소리가 울리는 극장 안을 배우들이 채워내는 과정을 조용히 지켜봤다.
(곡비 공연정보 링크 : https://tickets.interpark.com/goods/23014076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