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하면서 밥해먹기 episode 3
거래의 신
며칠 상간에
해가 저무는 시간이 많이 당겨지고 있다.
지난주 이맘때와는 달리 해는 이미 넘어가 버렸다. 하늘이 붉게 그을린 채
종종걸음으로 현관을 들어섰다
얼마 전부터 학원을 작파하여
저녁시간 유일하게 집을 지키는 막내가
웬일인지 통통 튀어나와
매우 정중한 배꼽인사를 건넨다
유치원 이후로 처음 인듯하다
그뿐 아니라
저녁 준비를 하는 주방까지 따라 들어와 보조를 청한다. 싱크대 얼룩이 졌다며 오늘 안으로 닦아주겠단다. 냉동실 얼려놓은 밥을 데우는 게 좋겠다며 아버지 밥도 손수 해동을 한다.
왜 이리 스위트 해?
물었더니
동그란 안경 너머로
긴 눈썹을 깜빡이며 미소를 짓는다
아참!
낮에 문자가 생각났다
꼭 필요한 물건이 있어서 사고 싶다고 했었지
오늘 거래 성사를 위한 제스처였던 거다.
식사 후 운동을 할 건지 묻는다
당연하다니 옷을 서둘러 갈아입고 운동화를 신는다 나가는 김에 음식쓰레기를 챙겼더니
세상 깔끔 떠는 녀석이
손 내밀어 직접 버리겠단다
보통 걷는 거리가 4.5킬로 정도 되는데
이 녀석 다리 좀 아플 텐데 제법 걷는다.
용건을 물었다
허용한도를 되묻는다.
한도보다 가치판단이 우선이라고 했더니
스페인 주화인데
희소가치가 있고 보기에 아름다워 욕심이 나는 물건이라고 하며 가격이 23만 원이라고 했다.
그 정도는 네가 착한 일을
한 3년간은 해야 쌓일 금액이라고 말해주었다.
매우 난감한 목소리로
시간을 단축할 방법을 의논하고 싶단다.
우선 본인 통장 금액을 인출하는 방법
엄마로부터 대출받는 방법을 제시했다
대출상환은 이번 추석이 지나고 바로 가능하단다
그러나 그건 코로나 방역수칙 때문에 가능성이 희박하다고 했다
친척 어른들을 뵙기 어려우므로.....
실망한 기색이 역력하다
그러나
상호 간에 신뢰가 형성되면 좋은 조건으로 시간을 단축시킬 수도 있다고 하며
오랫동안 중단한 독서활동을 할 것을 제안했다
돌아오는 발걸음은 터덜터덜 심술을 낸다
적은 금액은 아니지만
괜스레 애를 태우게 했나 아주 잠깐 생각했다
그래도
며칠간의 신뢰 향상을 위한
독서활동을 지켜본 후에 해줄 계획이다
이 거래를 통해서
엄마가 얻는 건 없는 것 같다고 했더니
독서를 통해서 교양인이 되어가는 아들을 지켜보는 기쁨을 누리게 될 거라고 하는데
이 깜찍한 거래를 응하지 않을 수 없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