좋아한다는 것을 부정하는 것

유치원으로부터 만들어진 이야기

by 차강

나는 특수교사다. 장애가 있거나 발달지체가 있는 아이들의 담임이다.

진수는 발달에 지체가 있는 adhd 유아다. 이제 고작 7살이다.

진수는 또래보다 빨리, 6살 때 글자를 읽을 정도로 똑똑하고 말도 잘한다.

다만, 수업시간에 한시도 가만있지 못하고 다른 생각, 다른 말을 하느라 선생님 말을 자주 놓치고 친구들 말을 자주 놓쳐 수업을 따라가기가 어려웠으며 친구들하고도 잘 어울리지 못했다.

유치원에서는 수업이란 말보다 활동이라는 말을 더 많이 쓰지만, 통상 이해하기 쉬우라고 수업이라고 하겠다.

그런 진수가 유난히 빠져 있는 것은 물고기와 비행기다. 진수는 내게 1년 중, 아니 내가 만나온 사람들 중 가장 많은 물고기의 종류를 이야기하고 또 내게 질문을 하고 떠올리게 한 사람이었고 앞으로도 그럴 것이다.

진수는 가을이면 방어나 전어얘기를 하고 1년 내내 정어리, 복어, 홍연어, 넙치, 광어, 돔을 얘기했다.

그냥 상어나 범고래, 가오리, 피라니아 정도까지도 어느 정도 이해를 했다. 아이들은 오히려 어른들보다 공룡이나 상어, 고래 등의 종류를 훨씬 많이 알고 외우고 있다. 그렇지만 방어나 홍어, 가자미 얘기를 하지는 않는다.

진수는 물고기를 아주 많이 좋아하는 특별한 아이였다.

비행기도 그렇다. 자동차도 그렇다. 아주 잠깐 짧게 스쳐가는 비행기나 자동차를 보고 저것은 네덜란드 항공, 저것은 이집트항공, 저것은 제네시스, 아우디 등 비행기의 기종과 차의 종류를 줄줄 외우고 다녔는데 그렇다고 해서 진수가 영화나 드라마에서 나오는 것처럼 특정 부분에 있어 천재성을 나타냈느냐. 그것도 아니었다.

물고기에 대해서는 물고기 이미지와 그 종류를 보는 것을 좋아했지 그 이상으로 딥하게 질문을 들어가면 잘 몰랐다. 진수의 어머님과 나는 진수가 혹시 그 쪽방면으로 천재가 아닐까 생각했지만 아쉽게도 아니었다.

그래서 더욱 포지션이 애매한 진수였다.

친구들과의 대화는 온통 물고기로 시작해 물고기로 마무리되었다. 친구는 요리놀이를 하고 싶어도 진수의 질문은 뚱딴지처럼 연어는 왜 강을 거슬러 올라가는지로 시작해서 굴비와 조기는 뭐가 다른지로 끝났다. 전혀 상황에 맞지 않는 시점에서.

6-7살 친구들의 얼굴에는 항상 물음표가 떠있거나 아무 말 없이 그 자리를 떠났다.


유치원에서는 자유선택활동시간이 있다. 자유롭게 내가 하고 싶은 놀이를 선택해서 하는 놀이인데

진수는 놀이시간에는 늘 자동차를 가지고 줄 세우기를 했으며 혹여나 때때로 같이 놀자는 친구가 있어도 왜 강화도를 가기 위해서는 청라 ic로 빠져야 하는지, 서울을 가면 김포 ic로 가면 안 되는지를 물어보았다. 친구들은 그렇게 떠나가고 있었다. 진수는 혼자서 고속도로에서 구급차가 오면 차를 양 옆으로 벌려주는 놀이, 톨게이트놀이등을 했다.


나는 스트레스를 받았다. 진수가 물고기를 자체를 좋아하는 건 문제가 되지 않았지만 진수가 상황에 맞는 이야기를 하기를, 그래서 친구들과 어울리고 수업에 따라갈 수 있기를(진수는 수업시간에도 물고기 얘기로 맥을 끊었다. 예를 들면 가을 하면 하고 싶은 놀이를 자유롭게 말하라고 했을 때는 홍연어놀이를 하자고 했다. 선생님이 가을에 궁금한 것이 있니?라는 질문을 하면 가을엔 왜 연어가 있을까? 실제로 연어는 가을에만 있지 않다) 바랬다.

진수는 점점 혼자가 되었고 나는 그런 진수가 친구들과 어울릴 수 있도록, 수업에 잘 참여할 수 있도록 하는 게 내 일이었다. 돈을 받고 하는 일이라는 1차적 책임이 있었고 진수의 어머님과 협력해야 하는 의무를 지닌 파트너였으며 진수와 진수어머니에게 서비스를 제공해야 했으며 진수를 진심으로 사랑하고 있고 진수의 어머니를 진심으로 응원하고 있기에 진수의 어머니와 나는 진수가 물고기를 조금만 좋아하길 바랐다.


어머니와 나는 많은 노력을 했다. 여러 가지 검사를 받았으며

오히려 물고기를 키우기도 했으며 주말에는 종종 아쿠아리움을 가기도 했고 나 역시도 교실에서 진수에게 물고기 백과사전, 고래사전, 상어사전, 물고기 피겨를 사주었다. 물고기에 대한 사랑을 충분히 충족시켜 주면 유치원에서는 조금 덜 하지 않을까, 친구들과 놀 때는 조금 덜 얘기하지 않을까 하는 마음이 있었기 때문에.

그렇지만 진수의 물고기사랑은 변함없었다. 물고기를 치워보기도 했지만 물고기얘기를 할 때, 물고기를 볼 때 진수의 눈알과 얼굴을 보았다면, 좋아하는 것을 맘껏 사랑하는 그 눈이 얼마나 초롱초롱한지 그 눈에 별을 박은 것만 같았다.

나는 진수를 6살 때부터 데리고 있었고 이 모든 이야기는 1년 반개월가량 지속되었다.

진수는 7살이 되어 adhd약을 먹은 후 제법 규칙도 잘 따라가고, 선생님 말씀에 잘 집중하며, 색칠이나 색종이 접기, 자신의 소지품 챙기기등 어느 정도 또래와 비슷한 정도로 따라가게 되었다.

여전히 친구들과 어울리는 것을 어려워했지만 예전처럼 시종일관 상대가 누구인지, 어떤 상황인지 아랑곳하지 않고 물고기얘기를 꺼내지는 않았다. 그렇지만 여전히 물고기를 좋아했다. 여전히 그 눈은 빛났다.

어느 순간부터 진수는 자신은 물고기를 좋아하지 않는다고 했다. 그런데 눈은 거짓말을 할 수 없다.

진수는 물고기를 아직 많이 좋아하고 있는 게 느껴지는데 진수는 물고기의 물-자만 나와도 자신은 물고기를 이제 좋아하지 않는다며 기겁을 하고 그 자리를 떴다.

모래놀이 시간에도 돌을 긁어 흙바닥에 그림을 그리고 있길래 물고기를 그려주었더니 물고기를 그리지 말라고 하는 게 아닌가.


진수야. 왜 물고기 안 좋아해?

진수물고기 엄청 좋아했잖아

아니에요 -

이제 안 좋아해요 -

왜 -

그냥요-

그럼 이제 뭐 좋아하는데 -

-

-

-

무당벌레요.

거짓말. 속으로 거짓말이라고 생각했다. 그리고 왠지 모르게.. 왠지 모를 슬픔과.. (슬픔이라는 감정이 맞는지 지금도 잘 모르겠지만 내게는 그 모습이 슬픔이라는 감정이 가장 가까웠다. ) 슬픔이 느껴졌다.

그 일이 나에게 심각하게 다가오지는 않았다. 진수가 정말 물고기를 안 좋아할 수도 있는 거고

그렇다면 오히려 다행이라고 생각했다. 자연스럽게 물고기에 대한 관심이 줄어들어 또래들과 비슷한 관심사를 가지고 또래들과 잘 어울리는 것이 진수의 마지막 목표였기 때문이다. 그렇지만 아무래도 찜찜한 건

물고기책이나 물고기 영상이 나올 때 예전의 그 초롱초롱한 눈빛이 살아있는 것을 나에게 들켜버렸고

이제 고작 7살 인생은 좋아하는 것을 좋아하지 않는 것처럼 완벽히 연기하는 것이 불가능했기 때문에.

어머님이랑 상담도 했고 또 물고기얘기를 의도적으로 하지도 않고 그렇다고 피하지도 않았다. 진수의 마음이 자연스럽게 어디로 흘러가는지 기다렸다.

그 이후로도 몇 번 물고기 얘기가 나왔을 때 의도적으로 피하려는 게 느껴졌고 어느 날 또 자신은 이제 물고기를 싫어한다는 다짐을 표효했을 때 나는 진수에게서 내 모습을 봤다.

흙바닭에서 물고기 거부 커밍아웃을 한 이후로 나는 진수를 볼 때마다 느껴지는 연민이 어디서 왔는지 알 수 없었고 왜인지 그것에 대해 열심히 파헤치기를 피했다.


진수야. 너 물고기 좋아하잖아.

왜 물고기 안 좋아한다 그래.

-

아니에요. 저 이제 물고기 안 좋아해요. 진짜예요.

무당벌레 좋아해요.

진수야 자기가 좋아하는 것을 부정하는 건 정말 힘든 일이야.

그러지 않아도 돼.

좋아하는 것을 마음껏 좋아해도 돼.

..


진수는 좋아하는 것을 일부러 저 뒤로, 맨 구석으로 밀어 넣고 또 밀어 넣었다.

튀어나오면 위에서 누르고 흘러나오면 못 본 척 쓱 닦아버렸다. 그렇게 자신의 마음을 접고 숨기고 피하고 누른 내가 안타까웠다. 진수에 대한 연민은 나에 대한 연민이었다.

내가 좋아하는 것을 맘껏 하고 싶었다. 좋아하는 옷을 입고 좋아하는 머리색을 하고 좋아하는 음악을 듣고 좋아하는 음식을 선택하고 내가 일어나고 싶은 시간에 일어나 내가 선택한 공간에서 일하고 시간을 보내고 싶은데 나도 진수처럼 내 마음을 철저히 모른척하고 있다.

그런데 나는 알아 진수야. 선생님은 알아. 그 마음은 계속해서 올라올 것이고 문을 두드릴 것이고 흘러나올 거야. 진수가 아무리 못 본척하더라도 다시 진수를 찾아올 테니 외면하지 마.

선생님은 그 마음을 누르고 눌러서 결국에는 그 마음을 누른 채로 살아가는 다른 어른들을, 선생님보다 더 어른들을 아주 많이 봤어. 그들의 얼굴이 어떤지 진수는 모를 거야. 그리고 물고기를 사랑하는 진수의 얼굴이 어떤지도 진수는 모를 거야. 진수는 아직 7살이잖아. 좋아하는 것을 마음껏 좋아해도 돼. 더 마음껏 더 강렬히 사랑해도 돼.


진수랑 나, 그리고 또 다른 어른 진수들이 좋아하는 마음을 외면한 채 살아가는 데에는 다 그만한 이유가 있을 것이다. 어쩌면 그것을 못 본 체하고 있다는 사실조차 모를 만큼 삶이 힘들기도 할 것이며 그 좋아하는 마음보다 더 소중히 지켜야 하는 것들이 있기도 할 테며 좋아하는 마음을 외면하지 않고, 종종 자주 들여다보며 사는 사람도 있을 것이며 마음껏 좋아하는 마음을 온몸으로 끌어안으며 살아가는 사람도 있겠지.

근데 그런 줄 알고 으레 살았는데 진수를 보며 생각이 좀 바뀌었다. 외면하는 것은 나에 대한 죄이다.

내 마음을 내가 부정한다는 것은 죄고 나에게 내리는 스스로의 형벌이며 감옥이다. 적어도 외면은 하지 않아야지. 내 마음을 내가 알고 살피며 언젠가 너를 힘껏 끌어안으리라는 다짐을 하고 그 마음을 토닥여주기라도 해야 한다는 생각이 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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