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치원으로부터 만들어진 이야기
유치원에는 유치원실무사가 있다. 우리 지역에는 아무튼 유치원실무사라고 있는데 뭐 간단히 말하자면 교사들이 수업하는데 쓰이는 수업자료를 만들어주시거나, 행정업무를 도와주시기도 하고, 교실청소나 환경정비를 도와주시기도 한다.
유치원에서는 통상 살무사님이라고 부르지 않고 ○○○선생님이라고 부르는데 우리 유치원에는 내가 이곳으로 발령 나기 전부터 쭉 근무해 오셨던 심소정선생님이 계셨다. 나이가 많았고 심성이 약해 보였다. 심성이 약해 보인다고 한 이유는 본인이 부당하다고 생각하는 것에 대해 쉽사리 이야기를 잘 꺼내지 않았으며 늘 불만이 있어도 속으로 삼키는 분이었다. 직접 문제를 해결하기보다는 약간의 한숨 섞인 말과 우울한 표정을 겉들여
그냥 상황이 그렇게 됐으니 내가 맞춰서 받아들여야지 -라는 분위기를 풍기거나 좋고 싫음이 확실하지 않은 분. 유치원에서 큰 행사가 있을 때마다 선생님들보다 더 가슴을 졸이는 분, 새로운 업무를 줄 때마다 나는 그런 것을 잘 못한다고 늘 말씀하시는 분 (그러면서 잘하심)이다. 무엇인가 상황이나 기세에 따라 잘 휩쓸릴 것 같은 느낌이라고 해야 하나. 같이 일하는 동안 심소정선생님이 생각하는 확고한 가치관 하나를 찾을 수 없었다.
욕을 하고 싶어도 앞에서는 당연히 욕을 하지 못하셨고, 뒤에서도 욕을 하지 못하셨다. 욕보다는 항상 한숨과 체념 섞인 약간의 험담 아닌 험담으로 상황을 받아들이는 분이었던 것 같다.
사람들마다 약하고 강해 보이는 이미지를 떠나 가지고 있는 신념이 있지 않느냐 이것이다.
예를 들면, 옆에 있는 조미희 선생님 같은 경우 자신의 육아시간 사용에서 만큼은 확고한 신념을 가지시고 철저하게 그것을 사용하고 지키시는 분이었다. 또 다른 예로 박지현선생님은 기간제실무사님이셨는데 교사시험에 응시할 수 있는 자격증을 가지고 계신 분이셨다. 그렇지만 앞으로도 교사보다는 실무사직을 하고 싶다는 강한 희망이 있었고 그에 대한 자신만의 이유가 있었다. 보통 대화를 하다 보면 저 사람은 이런 부분에서 저렇게 생각하는구나 -라고 느낄 수 있는 부분이 있는데 심소정 선생님은 그런 것을 내가 발견하지 못했다.
1학기가 마무리되고 같이 식사를 했다. 밥을 먹는 와중 심소정선생님의 남편이 오래전 암으로 세상을 떠났다는 사실을 알게 됐다.
아 - 그동안 추석이나 명절에, 당신의 어머님 생일에 매 번 충남에 있는 친정에 간다고 하셨는데 그때마다
오- 시댁에는 안 가도 되나?라는 생각과 더불어 그냥 어렴풋이 이상하다는 생각을 하곤 했던 것 같다.
그때마다 죄송스럽게도 깊게 생각하지 않았고 잘 - 다녀오시라는 말과 함께 인사를 나누었는데
사실 적잖이 놀랐다. 그리고 남편이 떠난 후로 꽤 오래 혼자 사셨다는 것도.
왜 놀랐을까. 이유는 두 가지 정도가 되겠다. 하나는 몇 년을 같이 일하면서 같이 일하는 동료가 혼자 사는지, 남편이 세상을 떴는지도 모른 체 그렇게 시간이 흘러버렸다는 것에 대해
스스로 어느 정도 이 정도면 따뜻한 사람이라고 생각했던 나 자신의 무정함에 대한 놀람이었던 것이었고
또 다른 하나는 그렇게 보이지 않았다는 것. 내가 생각한 심소정선생님의 이미지는 연약하고 유약한 인간의 모습이었는데. 혼자 사시는 것을 전혀 티 내지 않았고 그 외로움이 얼굴에 전혀 보이지 않았다는 것에 대한 놀람이었던 것 같다.
나는 꽤 오랜 시간을 혼자 살았다. 20살 이후부터 부모와 떨어져 지냈으며 완전히 혼자서 독립을 시작하게 된 건 28살 무렵이니 한 5-6년 정도 지났다. 나는 그동안 혼자보낸시간들이 참으로 질기게도 사무치도록 외로웠다. 원래 외로움을 잘 타는 성격은 아니라고 생각하나 어렸을 때부터 부모님의 잦은 불화와 다 깨지고 깨진 유리창을 노란색 테에프로 덕지덕지 붙여 근근이 이어나가던 우리 가정 속에서 자란 나는 20살 이전에도 부모, 형제와 같이 살긴 했어도 나에게 부모, 형제는 집을 나가는 순간 같이 조금씩 천천히 흐려져나갔기 때문에 28살 경제적 독립을 하고 난 이후에는 완전히 철저하게 혼자로 지냈던 것 같다.
어디 뭐 놀러 나갈 데가 없어서 외롭고 같이 밥 먹을 사람이 없어서 외롭고 그런 외로움의 차원이 아니었다.
엄마랑 전화도 했으며 반찬도 받으며 동기들과도 가끔씩 쇼핑도 하고 혼자서 잘 놀고 잘 먹고 직장동료들과 술도 한잔하고 열심히 회사 잘 다니며 누구보다도 외롭지 않은 사람인척 연기했다. 시간이 지나면서 연기하는 게 힘이 들었다. 너무 외로워 스스로 힘이 드는 걸 인정하는 지경이었다. 누가 날 한 번이라도 안아줬으면 좋겠다고 생각했고 기대고 싶었고 같이 밥 먹고 싶었고 계절이 바뀔 때면 단풍구경도 가고 싶었다. 보름달을 보며 제발 진심을 나눌 수 있는 친구 한 명만 생길 수 있게 해달라고 아무도 몰래 빌었고 결혼이 하고 싶었으며 번개모임이나 온라인으로 할 수 있는 소모임, 다모임등에 나가볼까 기웃거리기도 했고 곰인형을 끌어안고 안기고 있다고 착각하며 울기도 했다. 죽기는 싫었고 겁났으나 갑자기 내 삶이 끝난다 해도 별로 아쉬울 건 없다고 생각했다.
나는 그 시간이 힘들었기에 남편이 떠나고 자식들이 떠나고 혼자서 오랜 시간을 지낸다고 상상하면 견딜 수 없을 것만 같았다. 그런데 심소정선생님은 그 시간들을 이미 지나간 시간처럼 말했다. 나라면 아마 그 시간 안에 갇혀 살았을 텐데. 벌써 추억이 되어버린 듯이 담담하게 웃으며 말씀하셨다.
더불어 퇴근하고 너무 우울해지지 않기 위해 수영도하고, 자격증공부도 하셨다.
선생님이 달라 보였다. 강인함을 봤다. 내게 없는 면이기에 그렇게 말하는 상대방이 강해 보일 수 있다고 생각하기도 했다. 내가 약한 걸까. 무엇이 약하고 무엇이 강한 걸까. 어떤 사람이 약한 사람이고 어떤 사람이 강한 사람일까. 선생님은 내게서 어떤 약함을 보셨고 어떤 강인함을 느끼셨을까.
더불어 선생님은 돌아가신 남편얘기를 하며 이제껏 한 번도 볼 수 없었던 느낄 수 없었던
확신에 찬 얼굴로 말했다.
저는 죽음이 두렵지 않아요
저는 천주교신자예요
언젠가는 하늘에 있는 남편
저를 많이 사랑해 주었던 아버지와 어머니
우리 가족들 꼭 하늘나라에서 다시 만날 수 있다고 저는 확신하거든요
그래서 저는 죽음이 두렵지 않아요
집에 왔는데 선생님의 말이 깊게 여운이 남았다. 그 말 자체가 아니라 그 말을 하는 선생님의 눈빛과 어조에서 무엇이 그렇게 선생님을 확신하게 만들었을까. 몇 년 동안 한 번도 볼 수 없었던 선생님의 신념을 본 것에 대한 여운이었다.
죽으면 하늘에서 다시 만난다?
천주교 신자라 그런가?
원래 독실한 천주교 신자니까 그렇게 생각할 수도 있겠군.
그래 - 그렇게 생각하면 죽음이 두렵지 않지.
어차피 죽고 나서 다시 만난다고 생각하면
죽고 나서 내가 없어지는 게 아니라, 나라는 우주가 없어지는 게 아니라
또 다른 나라에서 다시 만난다면
죽음이 날 찾아온다 하더라도 사랑하는 사람이 날 기다리고 있고
그 공간 속으로 간다 믿으면 두려울게 뭐가 있겠나 싶다.
그 뒤로 더 이상 선생님이 유약하거나 약해 보이지 않았다. 내게는 없는 강인한 면이 있었기 때문에.
그 강인한 모습이 설사 몇 년 전의 나처럼 외롭지만 아무렇지 않아 보이는 모습이라고 해도,
강한 믿음은 강하게 두려워하고 있다는 것을 반증하는 것이라 해도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