할머니가 되면 땅콩집에서 같이 살자
넷플릭스 드라마 '은중과 상연'을 보며 친구 몇 명이 생각났다. 사랑하기만 하면 좋을 텐데 마음 곳간이 가난해질 때면 질투 어린 감정을 주고받게 되던. 이런 경험이 몇 쌓이다 보니 서른 무렵부터는 오히려 기쁜 일, 행복한 감정을 내보이는 것을 조심하게 됐다. 나에게는 기쁜 일이 누군가에게 슬프고 미운 일이 될까 봐. 그럼에도 한 명의 친구, 채연(가명)에게만큼은 나름 나의 소식과 감정들을 바로 전한다. 중요한 소식들은 재깍재깍 보고하라는 그의 장난스러운 엄포 때문이기도 하고, 그와의 관계에서 만큼은 복잡한 셈을 하고 싶지 않은 나의 바람 때문이기도 하다.
오늘은 슬혜에 대한 지난 글에 이어, 채연에 대한 이야기를 해보려 한다.
채연은 슬혜와는 반대로, 나와 다른 점이 많은 친구다. 나와는 달리 매사에 똑 부러지고, 섬세하며, 욕망에 충실하고, 월급루팡을 꿈꾼다. 채연이는 고등학교 시절 밥메이트 중 한 명이었는데, 그때도 어디 닮은 구석은 하나 없이 희한하게도 가장 죽이 또 잘 맞았다. 보통 채연이가 나를 놀리는 포지션이었고, 나는 그의 장난에 타격감 좋게 맞받아치고는 했다. 그렇게 이어져 온 우리 식의 17년의 티키타카 역사로 채연에게만큼은 내가 아직까지도 "꺼져" 혹은 "짜증 나"와 같은 꽤나 상스러운 어투를 쓴다. 다소 철없어 보일 수 있지만, 그와 이렇게 실 없이 장난을 치고 나면 나는 생뚱맞게 개운함마저 느꼈다. 몸과 마음의 긴장이 풀렸다.
채연은 실제적으로도 나에게 가장 큰 위안이 되어 준 친구이기도 하다. 그는 내가 힘든 일을 겪을 때 그 어떤 친구와도 다른 방식으로 나를 위로해주곤 했다. 수능을 망치고 멍하니 있는 나를 잡아끌고 영화를 보게 했고, 임용고사를 치르고 진이 빠진 나에게는 마사지를 입문시켜 줬다. 중요한 면접을 망쳐버린 어느 날엔 그의 아버지도 불러 함께 맥주를 부어라 마셨던 적도 있다. 이렇게 채연이랑 정신없이 하루를 보내고 나면, 인생이 망해버린 것 같은 좌절감도 금세 옅어지곤 했었다.
닥친 현실에 급급했던 내가 더 넓은 세상으로 발 디딜 수 있게 도와주었던 것도 채연이었다. 제주도에서 대학생활을 하던 나에게 육지에서 진행되는 1박 이상의 대외활동 내지 면접 일정은 꽤나 부담이었는데, 그때마다 경기도에서 부모님과 지내고 있던 채연은 먼저 본인 집에서 자고 가라 얘기해 주었다. 그렇게 수 번을 채연이네 집에서 뻔뻔히 아침밥을 먹고 채연이 부모님의 배웅을 받으며, 지금의 나에게 피가 되고 살이 되는 경험들을 쌓았다. 더 넓은 세상이라 하니, 새삼 떠오르는 기억도 하나 있다. 이른바, 아웃백 회동! 고등학생 시절 좋지 못한 가정형편 탓에 친구들과 약속도 은근히 피했었는데, 하루는 채연의 손에 이끌려 무려 '아웃백'을 간 것이다. 그날 나는 아주 신기한 경험을 했다. 메뉴판을 보고 나서부터 나는 돈 걱정에 온몸이 식은땀으로 젖었는데, 투움바 파스타 한입에 행복감과 만족감으로 그 걱정이 삼켜진 것이다. 게다가 채연의 야무짐으로 각종 쿠폰과 제휴카드를 조합해 결제를 하니 가격도 꽤나 저렴해 내가 걱정했던 상한선을 넘는 상황도 생기지도 않았다. 이때 어쩌면 나는 현명히 돈을 쓰는 법을 배웠다.
채연이와는 결혼 직전, 내가 고용승계된 직장이 서울에 위치하게 되면서 같이 살게 되었다. 당시 나는 회사 퇴사, 이직 등을 고려하고 있었어서 연 단위의 집계약을 서울에서 하는 것을 망설이고 있었는데, 이 상황을 알게 된 채연이 다시 또 흔쾌히 본인 집에서 같이 지내자고 제안해 준 것이다. 채연이와 같이 지낼 때 나는 여러 채용을 겹쳐 준비했었는데, 채연이는 그 일정들을 본인도 저장해 두었다가 결과 발표일에 되면 혹여 상심해 있을 나를 위로해 주기 위해 일정을 비워두곤 했다. 채연이는 우스갯소리로, 본인이 수험생 부모가 된 것 같다고 얘기하기도 했다.
그는 이렇듯 내가 가장 취약해있을 때, 어떤 방식으로든 나의 웃음이, 또 나의 보금자리가 되어주었다. 그렇게 반년을 함께 살고 내가 서울에 아예 새 집을 구해 나갈 때, 채연이는 많이 아쉬워했다. 그런 채연에게 나도 못내 아쉬워, 대학생 시절 채연이 지나가듯 했던 말을 그대로 돌려주었다.
"채연아, 만약 우리 영감님들 먼저 하늘나라로 보내게 되면, 꼬부랑 할머니 돼서 땅콩집에서 같이 또 살자."
나의 비빌 곳, 나의 자매들 슬혜와 채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