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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재치 Aug 09. 2020

그 때의 내가, 여전히 나이기 위해

스무살의 인도 여행

현재를 살아가면서도 끊임없이 되새기게 되는 과거가 있다. 그런 과거는 버스 창 밖 풍경에 불쑥 오버랩 되기도 하고, 풀죽은 나를 위로하기 위해 그 시절 무용담으로 부러 꺼내지기도 한다. 죽다 살아났던 그 날을 기억하기에 오늘의 불평이 내려놓아지고, 눈물 나게 행복했던 그 순간이 있었다는 사실만으로도 어쩜 내 생은 이미 충만하다는 생각이 들곤 한다. 그런 이유들로, 난 자주 스무 살 인도 여행을 떠올린다. 


수능을 망치고, 간신히 성적에 맞춰 들어간 대학교에서 난 좀처럼 적응을 하지 못했다. 초중고시절 악착같이 공부에만 열심이었는데, 그 12년 동안의 노력에 보답 받지 못했다는 생각에 심히 낙담한데다가, 그 기운 탓에선지 대인관계도 맘 같지가 않았다. 


‘이번 생은 망했다’라는 생각까지 들기 시작했던 때, ‘해외 테마여행 공모전’ 알게 되었다. 학술적 가치가 있는 테마로 여행을 기획하면, 학교에서 여행 경비 일부를 지원해주는 사업이었는데, 신입생이 당선됐던 사례가 없었다는 이야기를 들었으면서도, 뭐라도 집중할 거리가, 우울의 고리를 끊어낼 계기가 필요했던 나는 같은 대학에 진학한 고등학교 친구 세 명을 설득해 팀을 꾸렸다.

여행지는 ‘인도’로 정했다. 제주에서 태어나고 자라 해외는 커녕, 육지를 가본 것도 손에 꼽았던 스무살들의 첫 여행지치고 난이도가 높았지만, 처음이었기에 순수히 용감할 수 있었다. 인도의 영화 산업을 관찰하고 오겠다는 기획으로, 면접에 분장까지 해갈 정도로 아주 진심이었던 우리는 결국 최종 팀으로 선발되었다. 스무 살의 마지막 달, 그렇게 나는 인도로 한 달간의 여행을 떠나게 되었다.  


2012년 12월 17일. 밤 비행기로 도착했던 인도 델리에서의 첫 날은 말 그대로 카오스였다. 공항으로 픽업을 와주기로 했던 숙소와는 1시간 동안 연락이 닿지 않았고, 간신히 연락이 닿아 픽업차량을 기다리는데 택시, 릭샤호객꾼이 달려들어 공항 안과 밖을 몇 번이나 왔다가야 했다. 픽업차량의 차문은 도로 위를 달리는 도중에 시도 때도 없이 열렸고, 숙소 측 오버부킹으로 기존에 예약한 것보다 훨씬 좋지 못한 컨디션의 룸에서 첫날밤을 지내야 했다. 같이 온 친구 중에 한 명은 한국에 돌아가고 싶다고 끝내 울음을 터뜨렸다.    


리더 역할을 하던 나 역시 이 여행을 계속 하는 것이 맞을까 고민하게 되었는데, 다음 날 지난 밤 왔던 길을 창문 너머 다시 보는데, 어떻게든 이 여행을 끝까지 해내보기로 다짐을 하게 된다. 인도의 이국적 매력에 삽시간에 빠졌다 하는, 그런 이유가 아니었다. 밤이 걷히고, 사람들이 진짜 삶을 사는 낮의 풍경을 보는데, 온갖 인간 군상들이 있었고, 그 중에는 하인을 부리는 부자도, 아이폰을 하면서 길을 지나가는 내 또래의 젊은이도, 똥지게를 진 빈민도 있었는데, 그 다양한 삶의 모습에 난 내가 목표로 했던 삶만이, 내가 살아가고 있는 삶만이 전부가 아니구나 하는 다소 신박한 깨달음을 얻은 것이었다. 깨달음이 있고 난 후, 그 삶의 풍경으로 나의 한 발자국을 내딛지 않을 수가 없었다.

첫 날에 예고되었듯이 인도에서의 여정은 쉽지 않았다. 먹고 마시는 것, 화장실을 가는 것, 안전히 잠을 자는 아주 기본적인 문제들에도 하나, 하나 어려움을 겪어야 했고, 예상치 못한 변수들에 일정이 자주 꼬였고, 이따금 아주 위험스런 상황에 처하기도 했다. 그렇지만 우리는 각자의 방법으로 차차 적응해갔고, 문제가 생길 때면 머리를 모아 함께 해결했다. 나쁜 마음에 기인했던 위험들로부터는 좋은 이들의 도움을 통해 안전할 수 있었다. 

어느 날은 기차가 연착된 탓에 그 다음 연결편을 놓쳐 늦은 밤 기차역에서 하루를 지새우게 됐었다. 어린 여자 여행객들에 집중되는 시선에 나는 파란 비니를 쓴 한 인도 청년에게 막무가내로 도움을 청했었다. 제발 우리를 지켜달라고. 실제로 그날 밤 낯선 이에게 손목을 잡혀 끌리는 등 아찔한 상황이 있었고, 그때마다 그 청년은 우리를 최선을 다해 보호해주었다. 하필 그 날이 크리스마스 이브여서였을까. 함께 여행을 했던 친구도 여태 모르는 사실이지만, 내 첫사랑은 좀 특이하게 인도사람이다.

생존의 단계를 넘고 나니, 인도에서의 매일은 감탄이었다. 만나는 사람, 곳곳에 유적, 그 속에 역사 무엇 하나 새롭지 않고, 감동스럽지 않은 것이 없었다. 무엇보다 새로운 나와 마주하는 모든 순간들이 참으로 벅찼다. 목표로 하는 일을 노력해 끝내 성취하고, 낯선 세상에 발을 내딛을 수 있는 용기를 지닌, 또 주어진 문제를 차근히 풀어갈 줄 아는 나. 사람을 긍정하고, 진실로 도움을 요청하기도 하는, 아직 더불어 사는 삶을 포기하지 않은 나.


스무 살 인도 여행 이후, 내가 가장 좋아하는 음식은 커리가 되었고, 또한 그 때 알게 된 나로 여전히 살아가고 있다. 과거만을 쫓는다고 혀를 끌끌차는 대상에서 나는 제외해주기를 바란다. 사람들이 생각하는 각자 본연의 모습이 있는 것이고, 내가 쫓고 싶은 모습을 나는 내 과거에서 발견한 것일 뿐이다. 나는 그 때의 깨달음, 다짐, 감정을 잊지 않기 위해 노력하며 살아가고 있고, 그 때의 내가 여전히 나인 것을 알아 자주 행복하다. 그 것이 나를 나답게 해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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