호두까기 인형 보기 전에 꼭 보고 가세요 :) !
연말에 피케팅을 뚫고 꼭 봐야 하는 '호두까기 인형'. 이번에 저도 보고 왔는데 차이콥스키의 음악, 무대 연출, 아름다운 무용수들의 움직임까지 경이롭고 행복했답니다. 오늘은 발레 '호두까기 인형'을 보기 전에 알고 가면 좋은 이야기들을 해드릴게요.
원래 발레는 프랑스에서 사랑받던 무용이에요.
영국에서 극 문화로서 연극이 자리 잡혀있었다면 프랑스는 발레가 자리 잡혀있어요. 특히 태양왕 루이 14세는 자신이 직접 발레를 공연하기까지 했죠! 이건 어떤 의미냐 하면, 루이 14세는 발레와 오페라를 이용해 왕의 권력을 드러냈습니다. 매체가 하나도 없던 시대에 거대한 나라에 자신을 알리려면 가장 효과적인 것이 예술이었던 거죠. 예술은 경외심이 들게 하니까요. 루이 14세는 매일 2시간씩 발레 연습을 하면서 극에서는 자신을 태양의 신 아폴론으로 표현했어요. 왕을 신격화해 귀족들이 복종하게 만드는 방법을 썼죠.
왕이 발레에 참여하니 얼마나 화려했겠어요? 이렇게 발레는 19세기까지 인기를 얻었는데요. 19세기 후반까지 흘러가면서 자연스럽게 진부해집니다. 그런데 그걸 누가 배워가냐면 러시아가 배워간 거예요.
한창 루이 14세가 발레를 할 때 러시아의 표트르 대제가 프랑스에 다녀갑니다. 표트르 대제는 개혁에 굉장히 깨어있던 사람이에요. 배를 닦는 청소부든, 정육점을 하는 사람이든 능력만 있으면 정부 요직으로 데려갔어요. 표트르 대제는 러시아를 서구화시키면서 근대화를 이루어냅니다.
그런 사람이 프랑스에서 큰 역할을 하는 발레를 보고 가져간 것이죠. 원래는 러시아에서 여자는 사교 모임에 참석할 수 없었어요. 그런데 표트르 대제가 여성도 사교모임에 참석할 수 있도록 했고 여성들도 모임에서 춤을 추게 됩니다. 이후 예카트리나 2세가 발레에 관심을 갖게 되면서 집중적으로 발레가 육성돼요. 자연스레 발레는 귀족의 확고한 취미로 자리 잡았고, 유럽에서는 인기를 잃어가는 발레가 러시아에서 생명력을 얻게 됩니다.
하지만 그래도 19세기말까지 러시아 발레는 유럽 발레 문화를 이끌어간다기보다는 추종자에 가까웠어요. (러시아 문화 전체적으로 이런 흐름이 있지요.) 이것을 개혁하려고 프랑스 태생의 안무가 마리우스 쁘띠빠가 나섭니다. 쁘띠빠는 이미 작곡가로 인기가 있었던 차이코프스키에게 음악을 의뢰해요. 당시 발레음악은 주목받는 부분이 아니어서 안무자가 지시한 사항을 그냥 그대로 따르는 상황이었어요. 그런데 여기에 차이코프스키가 교향곡 같은 퀄리티를 내버립니다.
차이코프스키의 발레 음악은 단순히 발레를 하는데 반주 역할을 하는 음악이 아니었어요. 그 음악을 연주회장에서 발레 없이 들어도 충분히 가치 있을 정도로 만들어 냈죠. 최고의 안무와 최고의 음악이 합쳐지니 100년이 넘도록 인기를 끄는 예술이 탄생합니다.
쁘띠빠는 차이콥스키에게 '호두까기 인형' 음악을 의뢰했어요.
처음에 쁘띠빠가 의뢰했던 곡은 ‘잠자는 숲 속의 미녀'였는데 이것이 대성공하면서 두 번째 곡을 의뢰합니다. 그것이 바로 ‘호두까기 인형'이었어요. 하지만 당시 차이코프스키는 컨디션이 좋지 않았어요. 이미 업무가 많은 상태였고 오랫동안 차이코프스키를 믿고 거대한 금액을 후원해 주었던 폰 메크 부인과의 관계가 거의 파탄 나 있었거든요.(그녀는 철도 사업을 몇 개나 가지고 있었던 재벌이었어요. 둘은 단순한 후원자-음악가와의 관계는 아니었답니다.) 또 차이콥스키는 동성애자였는데 러시아가 동성애에 대한 러시아 사회의 분위기가 점점 날카로워지고 있었던 것도 그를 힘들게 했지요.
그러다 사건이 발생합니다. 원체 마음이 여렸던 차이코프스키는 종종 동생 알렉산드라의 집에 가서 동생 부부, 조카들과 지내며 마음을 위로하곤 했어요. 지금의 우크라이나에 위치한 알렉산드라의 집은 차이콥스키에게 존재 자체로 위안이었지요. 그런데 소중한 동생이 세상을 떠났다는 비보를 접하고 충격에 빠지게 돼요.
슬픔에 빠져있던 차이콥스키는 호두까기 인형에 자신의 추억을 담아내요.
호두까기 인형의 줄거리는 이렇습니다. 크리스마스이브날 밤, 어린 클라라의 집에서 파티가 열리는데요. 아이들을 좋아하는 삼촌은 아이들이 좋아하는 인형극을 보여주며 함께 즐거운 시간을 보냅니다. 그는 클라라에게 크리스마스 선물로 호두까기 인형을 주었죠. 그런데 장난꾸러기 오빠 프란츠가 실수로 인형을 부숴버리죠. 속이 상해 잠들지 못하는 클라라 앞에 갑자기 무서운 쥐떼가 나타납니다. 호두까기 인형과 병정들이 일어나 쥐떼들에 맞서 싸우는데요. 클라라가 용감하게 도와주면서 호두까기 인형이 승리하게 되죠. 호두까기 인형은 왕자로 변해서 과자의 나라로 클라라를 데려갑니다. 그곳에서 요정들이 화려한 춤으로 클라라와 왕자를 환영해요. 그런데... 알고 보니 모든 것이 클라라의 꿈이었다는 이야기예요!
[호두까기 인형]에서 아이들은 차이코프스키의 조카들로, 아이들을 즐겁게 해주는 삼촌은 차이코프스키 자신으로, 사탕요정은 동생으로 생각하며 음악을 만들었어요. 음악을 들으면 차이코프스키가 얼마나 행복한 시간을 보냈는지 생생히 느껴질 거예요.
첼레스타 (Celesta)
차이코프스키는 이 곡을 작곡하던 중에 파리에서 재밌는 악기를 하나 발견합니다. 바로 '첼레스타'인데요. 악기의 음색이 호두까기 인형에 딱이라고 생각한 그는 다른 작곡가들에게 알려지지 않도록 비밀리에 악기를 구입해요. 이 악기는 ‘사탕요정의 춤’에 나오는 데 환상적인 음악과 참 잘 어울리죠. 해리포터의 음악에도 첼레스타가 나오는 것으로 유명해요.
그는 또 발레에 사용하기 위해 파리에서 나팔, 큰북, 카코우피리, 우즈 라피리, 심벌, 두 개의 래빗드럼, 크레셀 등 귀여운 악기들을 잔뜩 구매했답니다. 공연에 가시면 귀여운 음색들을 귀 기울여 들어보세요!
(아래 쇼츠에서 첼레스타의 음색을 들어볼 수 있어요!)
https://youtube.com/shorts/ASw4_3mUS_Y?si=z766KG1vDcr002p_
발레를 보다 보면 갑자기 줄거리와 상관없이 (뜬금없어 보일 수 있는) 춤이 이어져요. 호두까기 인형에서는 중국의 춤, 아라비아의 춤 등이 등장하는데요. 이건 ‘디베르티스망’으로, 줄거리와 연관 없이 무용수들이 등장해서 화려한 무대를 보여주는 장면이에요. 서사적 진행보다는 시각적 즐거움을 위해 이와 같은 장치를 사용하는 것이니 마음껏 즐겨보시면 됩니다!
이렇게 '호두까기 인형'은 전 세계적으로 매해 연말마다 사랑받고 있는 공연인데요. 꼭 한 번쯤은 가보셨으면 좋겠어요. 눈 내리는 아름다운 연말에 화려하고 행복한 극장에서 소중한 사람과 함께 시간을 보내기에 딱이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