처음 대학생이 되어서 가졌던 목표는 이곳에서 뒤처지지 않는 것이었다. 지금이야 교내 강의실에서 맨 뒤자리를 차지하려 남들보다 일찍 오는 열의를 보이지만, 당시에는 앞자리에 앉아야만 성적이 오른다는 말에 늘 항상 일찍왔었다. 아무튼, 한 학기는 나름대로 잘 수행해왔다. 새벽 일찍 일어나 열람실에서 공부를 했고, 저녁에는 도서관의 퇴실 시간이 되어서야 뉘엿뉘엿 몸을 이끌고 나왔다. 그때는 그래도 뭐든지 생각한대로 될 줄 알았다.
그러나 차츰 대학 생활을 보내면서, 대학에서 할 수 있는 것이 공부만이 될 수는 없다는 것을 깨달았다. 지금도 그렇지만, 그때도 용돈이란 것을 받아 본 적이 없었기에 생활비는 당연히 내가 벌어야 하는 것이라 생각했다. 그래서 학교 앞 편의점 부터 아르바이트를 시작하게 됐다. 지금 돌이켜보면, 편의점 아르바이트는 다소 단순한 일이지만, 처음이기에 서투른 일 탓에 매번 부족한 돈을 메꾸기 일수였다. 그 후, 아르바이트는 눈 뭉치 마냥 조금씩 불어나 어느덧, 내 대학 생활의 상당 부분을 차지했다. 아이스크림 가게 점원에서 부터, 시설물 조사원, 과외 등 돈이 되는 일이라면 가리지 않고 하려고 했다.
물론 내가 한 일이 고생이라고 생각하진 않는다. 정말로 그런 생각은 없는데, 농사를 짓고 계시는 부모님의 노고에 비하면 내가 하는 일은 아무 것도 아니라는 것을 잘 알기 때문이다. 그래도 일을 하는 시간이 늘어날 수록, 공부를 할 물리적인 시간이 부족해질 수 밖에 없었다. 그리고 시간이 점차 흐르면서, 처음에 가졌던 포부는 조금씩 잊혀져 갔다. 한 때는 서로 밤 새며 공부한 친구들이 이제는 나와 점차 다른 선에 있는 것을 보고 속상하기도 했고, 내가 조금 더 열심히 했으면 어땠을까라는 아쉬움도 남았다.
그러나, 기회는 결핍에서 비롯된다. 수업과 일을 오가며 어떻게 조금이라도 공부를 할 수 있을까 고민했다. 그 때는 비싼 학원비도 낼 형편도 안 됐으므로, 도서관에서 매주 몇 권의 책을 빌려서 읽기 시작했다. 책은 아르바이트를 하는 틈틈이 읽을 수도 있었고, 주제가 한정되어 있었던 것도 아니었기에 남들과는 조금 특별한 지식을 얻는 다는 것에 위안감을 얻을 수 있었다. 언젠가는 이렇게 꾸역 꾸역 읽는 독서가 남들과의 차이점을 만들어내겠지라는 희망을 품은 채 읽었다. 그 때문인지 때로는 교수님께서 좋은 글을 칭찬해주셨을 때 너무나 감사했다. 교수님들은 모르셨겠지만, 지친 심신에 그러한 칭찬 하나가 내게는 심심한 위안을 주곤 했기 때문이다.
다양한 경험이라는 면에서도 결핍은 내게 좋은 동기가 되어주었다. 소심한 성격 탓에 평생 못할 것 같은 일들도, 당시에는 순전히 돈을 벌기 위해서 꾸역꾸역 하는 수 밖에 없었다. 학생들의 선생님이 되기도 하고, 한 여름에 줄자를 가지고 시설물을 재기도 하면서 생각지도 못한 일들을 하나 둘씩 해내게 되었다. 무엇보다, 그러면서 만난 소중한 인연들은 내게 만일 이 일을 안했더라면 어쩔 뻔했을까하는 생각이 들게 한다. 장애학생도우미로 활동한 1년간 마주친 친구들과, 방과 후 선생님으로 일하면 마주친 소중한 학생들, 무거운 가구를 나르며 거의 형 동생하며 지내게 된 아저씨까지.
졸업을 앞 둔 지금의 나를 보면 키와 몸무게를 빼고는, 그다지 숫자로 환산할 수 있는 것들은 없긴 하다. 그러나 누군가는 보이지 않는 것이 더 중요하다고 하지 않았던가. 아이스크림을 어떻게 동그랗게 푸는지 내 손의 감각이 잘 알고 있고, 한 여름에 무거운 짐을 나르며 사무실에서 일하는 사람들을 보는 심정이 어떤지는 익히 알고 있기 때문이다. 물론, 가끔은 신세한탄을 한 적도 있다. 사람이 늘 긍정적일 수 만은 없으니까. 그래도 그때마다 든 생각은 어떠한 상황 속에서도 늘 감사할게 남아 있다는 것이다. 비록 아직까지의 내 짦은 삶이 화려하지도 않고 유별난 것도 없을 지라도, 잔잔한 가운데에도 깊이 있는 삶을 살았으면 한다.
4학년이 되어보니, 대학 생활동안 겪은 작은 고생과 고민들이 내게는 모두 배움이었다. 만약 그 때 내게 돈과 시간이 많았더라면, 책을 그렇게 가까이 할 수 있었을까. 만약 그 때 내가 그 짐을 들어보지 않았더라면, 무거운 짐을 나르는 노동자들의 마음을 조금이나마 이해할 수 있었을까. 대학 생활 동안, 강의실 밖에서 배운 일들도 강의실 안에서 배운 일들만큼 소중함을, 이제야 조금씩 깨닫고 있는 중에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