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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모님과 돈

by 하루

아버지가 돈을 빌려달라고 한 돈은 5천만 원 정도였다. 사회생활을 시작한 지 2년도 채 안된 때라 금액이 적지만은 않았다. 당시 아버지가 하시는 일에 급하게 투자 자금이 부족해졌고 어쩔 수 없이 나에게까지 연락을 하셨다. 처음에는 아버지의 제안을 거절했다. 아무래도 생각이 좀 필요했고, 지인 간의 돈거래는 가족이더라도 좋은 것이 아닐 것이리라 본능적으로 깨달았다. 그러고 어머니께 혹시 내가 모르는 일이 있나 해서 연락을 드렸다. 그러곤 어머니의 풀 죽은 목소리를 들으니 빌려드려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 길로 은행에 가서 신용대출을 처음 받아서 부모님에게 보내드렸다. 은행 직원은 부모님에게 보내드리는 게 맞냐며 수차례 확인했다. 보통은 부모님으로부터 자식이 받는 편인데 내 경우는 반대로 되었다.


'자식으로서' 부모님에게 도움을 드릴 수 있는 것은 어찌 보면 참 감사할 일이지만 다른 한편으론 원망을 하게 되는 계기도 되었다. 돈을 빌려드리고 나서는 자식으로서 부모님에게 도움을 드렸다는 만족감 하나와 먼가 묵직한 바위가 가슴에 얹은 듯한 답답함이 공존하기 시작했다.


어쩌다 유튜브와 같은 매체에서는 모두들 부모님이 자식 돈을 가져간 것을 나쁜 일이다라며 비난하는 영상이 줄을 이었다. 마음이 약한 나는 친한 친구에게 이러저러한 사정을 털어놓았다. 다들 반응은 한결같았다.


" 그렇구나... 돈은 못 돌려받을 것 같네, 그냥 드렸다고 생각하자...!"


가난한 집 자녀가 성장해서 돈을 벌기 시작하자 부모님이 돈을 요구하셨고, 이후 돈을 지속적으로 빌려준 후 돌려받지 못하는 흔한 레퍼토리가 내게 적용된다고 그들은 생각했다. 우리 부모님은 이런 이야기 속에 나오는 나쁜 부모들과는 다른 사람이기에 그런 말이 적용되지 않음을 알고는 있었으나 내심 마음속으론 원망하는 마음이 새어 나오기 시작했다.


"왜 다른 집 부모님들은 자식에게 하나라도 더 줄려고 안달인데 나는 왜 이렇지..."


그동안 대학생활부터 직장을 마련하기까지 제대로 된 금전적인 지원 없이 늘 상 알바하고 때론 내 인생의 불우함을 처음 보는 사람들에게 늘어 놓으며 장학금을 받았다. 물론 부모님의 지원없이 스스로 생활비를 버는 내 자신이 자랑스러웠지만, 어쩐지 그때부터는 부모님이 원망스럽게 느껴졌다. 만일 대학생 때 한 달에 20만 원, 아니 10만 원이라도 도와주셨다면 어땠을까, 내가 하고 싶은 공부를 하며 대학 생활을 보낼 수 있지는 않았을까 싶었다.


그도 그럴 것이 복학을 하고 난 2학년 때 어느 순간부터 대학에서의 내 목표는 어떤 직장에 가거나 사회적 가치를 실현하는 것이 아닌 무사히 졸업을 하는 것이 되었다. 당시만 해도 변호사라는 목표가 있었는데 우선 로스쿨에 진학을 한다고 해도 학비를 어떻게 될 거냐는 문제도 있었다. 같은 명문대를 친구들과 함께 다녔지만 친구들과 나는 꿈을 꿀 수 있는 환경은 같지 않다고 느꼈다.


당시 첫 직장에서의 내 상황은 녹록지 않았다. 부서가 너무 어려워져 부서장은 먼저 육아휴직에 들어갔고 부장과 대리 직급들도 서로 살 길을 찾아 이직했었다. 서로에게 힘이 되어야 할 입사 동기는 나를 시기한 것인지 혹은 무시한 것인지 인사조차 받아주지 않아서 그것도 참 마음에 상처가 되었다. 이런저런 일이 몸과 마음을 상하게 할 때쯤 이런 금전적인 문제도 얽히니 마음이 참 힘들었다.


그 후 사춘기 때도 화내지 않던 나는 부모님과 통화할 때마다 조금씩 짜증을 냈다. 돈은 언제쯤 돌려주실 거며 어떻게 나에게 그렇게 부탁을 할 생각을 하셨냐는 둥 여러 가지 부모님께 상처를 주는 말들을 이어갔다. 이상하게도 그렇게 얘기를 하면 마음이 좀 후련했고, 그러면서 원망하는 마음은 더 깊어졌으며 다시 독한 얘기를 더하게 되었다. 그렇게 한 3년을 부모님을 닦달했다.


그동안 부모님의 자금 사정이 안정을 되찾았고, 나는 첫 직장을 떠나 새로운 곳에서 도전을 시작하게 되었다. 부모님은 지인들의 걱정과는 달리 돈을 모두 돌려주셨다. 돈을 돌려받게 된 날 마음에 체증이 씻겨 내려가는 느낌을 받았다.


부모님이 내게 보내주신 애정과 사랑은 이 돈에 비하면 아무것도 아닐 테지만, 서울 살이에서 뒤가 없는 내게는 당장 너무나 크고 중요한 돈이었다. 내 입장에선 남들과의 출발선에서 뒤처져서 어떻게든 중간이라도 갈려고 했지만, 돈을 빌려드린 후로 출발선 저 먼 뒤에서 달리는 느낌이었기에 이제는 조금씩 제자리를 찾는 기분이었다.


그 일도 꽤 시간이 지난 일이 되었다. 돌이켜보면 내가 그때 조금 더 상처되는 말을 하지 말았을까 싶기도 하고 아니면 처음부터 돈이 없었다고 말했어야 했을까 싶기도 하고... 여러 복잡한 생각이 들었다.


언젠가 책에서 그런 글 귀를 읽은 적이 있다.


'부모를 용서해야지 본인이 살 수 있다'


이 구절에서 느낀 점은 사실 누구나 다 부모님께 저마다 상처가 있구나 싶었다. 그런 걸 보면 부모님의 그런 모습을 용서하는 것이 어쩌면 삶을 살아가는 지혜가 아닌가 싶었다. 그 말이 힘이 되어서 더 이상 부모님을 원망하거나 하지는 않으려고 노력한다.


생각해 보면 대학 시절 내가 그렇게 살았던 것은 농사지으면서 힘겹게 살아가는 부모님을 잘 알았기에 부모님께 용돈을 달라고 말할 용기도 없었거니, 공부를 좀 더 열심히 하지 못했던 내 게으름과 그들과의 경쟁을 포기했던 비겁함이었기도 했다. 그리고 부모님은 정말 나를 위해 많은 것 들을 희생하면서 여기까지 와주셨었다.


그래서 지금은 더 이상 원망치도 않으며 이따금 그때 돈을 빌려드릴 수 있어서 다행이라고도 생각했다. 두 분이 서투른 곳에 쓴 곳도 아닐뿐더러 지금은 오히려 그때 투자하신 것 덕분에 잘 살고 계신다. 그래도 이제 두 번 다시 부모님과 혹은 지인과는 돈거래는 하지 않을 것 같다.


지금도 이따금 원망이라는 감정이 올라올 때가 있다. "누구는 부모가 얼마를 주었다더라"라는 생각. 그 '비교'하는 생각 때문에 원망이 샘솟는다. 내가 세상의 것들에 많이 물들여졌다는 생각이 든다. 그리고 그때마다 지금 내가 가지고 살고 있는 모든 것과 부모님의 기도들을 곱씹어 본다.


그렇게 생각해 보면 원망도 짜증도 사라지고 감사한 게 많은 삶이라는 생각이 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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