후암동, 독립서점, 재개발
서울 후암동에 갔다. 설을 보내고 서울로 돌아와 한 한 책을 읽었는데, 그 책에서 소개하는 독립서점을 문득 가고 싶어 책을 덮자마자 그날 저녁 후암동으로 향했다. 버스 환승 없이 1시간 30분이 걸리는 거리지만, 특별히 할 것도 없고 출근해야 하는 내일도 연휴 다음 날이라 부담이 덜해서 떠나게 되었다. 버스 안에서 사람들의 모습을 멍하니 보려고 했는데, 가기 전에 독립서점을 운영하는 사장님의 인터뷰 영상이 라디오처럼 들으며 가기로 했다.
후암동의 작은 책방은 4~5평이 될까 말까 한 크기로 생각했던 것보다 더 작았다. 서점에는 사장님 대신 점원분이 지키고 있었는데 내가 생각한 것보다 더 편하고 소박한 옷차림으로 작은 쪽방에서 앉아계셨다. 책을 잠시 둘러보고선 작은 책 한 권을 사서 나왔다. 바로 옆에는 인근 교회 공터가 있어 저녁 무렵의 서울을 바라볼 수 있었다.
며칠이 안되어 후암동에 대한 아쉬움이 있어 낮에 다시 찾아갔다. 낮에 찾아간 그곳에는 재개발을 추진한다는 소식이 이곳저곳 붙어있었다. 이곳에 거주하는 주민들에게는 참 잘 된 일이라 축하드리지만 한편으로 아쉬움도 있었다. 어차피 나의 아쉬움과 상관없이 재개발은 추진될 것이므로 최대한 내 입장에서 편향되게 써볼테다.
서울의 특색은 재개발과 함께 사라져 갔다. 후암동의 골목길에서 느껴지는 풍경에서도 테슬라와 같은 전기차와 고가의 차량들이 보였는데, 필시 재개발을 노리고 몸테크하는 사람들일테다. 재개발이 좋다고 생각했지만 이렇게 도시가 아파트로 덮인, 특색 없는 획일화된 문화로 변화하는 것 같아 아쉬움도 있었다.
서울만의 문화를 이루는 여러 가지 요소가 있을 테지만, 소박하고 투박한 감성, 젊음과 힙함이 합쳐진 문화는 주로 서민들이 거주하는 곳에서 나타나는 것 같다. 상대적으로 소득 수준이 낮은 곳은 임대료가 저렴하여 새로운 시도가 많이 나타났다. 감성적인 카페, 옷가게, 독립서점 등 임대료 수준이 높은 곳에선 결코 시도조차 할 수 없는 것들을 젊은이들은 시도하게 된다.
그런 요소들이 모여서 그 일대를 하나의 '힙'한 문화를 형성한다. 어찌 보면 '힙'하다는 곳은 제한된 소득 수준을 가진 청년층들이 한국 사회에서 그나마 주도적으로 소리를 내고 개성을 나타낼 수 있는 유일한 공간이 아닐까 싶기도 하다. 어른들의 눈에는 왜 그런 후줄근한 옷을 입고, 좁은 카페나 대중적이지도 않는 책을 읽느냐고 할 테지만, 그곳에서는 내가 입은 명품 옷들보단 가성비의 트렌디한 옷이 대접받고, 좁은 카페에서의 불편함을 기꺼이 감당하는 것이 미덕이다.
그런 '힙'한 곳은 연이어 임대료가 오르고 건축사와 주민들에게 재개발 가치를 눈여겨보게 만든다. 임대료가 높아지다 보니 앞서 형성된 감성적인 상권들은 버티기 점차 힘들어지고, 어느덧 그곳은 재개발을 진행하며 도시의 경관은 다시 아파트로 뒤덮이게 된다.
서울의 아파트화(Apartmentization)는 누군가에는 경제적 부를 성취하는 주요 수단이지만, 제삼자인 나의 입장에서는 서울이라는 문화적 특색이 사라지는 안타까운 현상으로도 보이기도 하다. 한 때는 가난의 상징이었지만, 그곳에서나마 청년들은 자기만의 공간을 향유할 수 있었는데 그런 공간들이 점차 사라지는 것 같아 아쉬움이 들었다.
땅의 재개발 가치만을 떠올리기보다는 그 공간이 가지는 문화적 가치도 생각해 보면 좋을 것 같다. 아파트라는 효율성을 중시하는 곳만 추구할 것이 아니라 느리지만 의미에 목적을 두는 공간도 한켠에 두는 것도 좋지 않을까 싶었다.
모두가 아파트와 재개발, 투기에 혈안인 시기라 청년들이 향유했던 공간들이 허물어지는 것, 사라지는 것들에 대한 나의 작은 아쉬움 정도만이라도 반항의 의미로 기록해 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