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하루 Oct 06. 2024

5평 원룸 찬가

5평 원룸은 작은 크기지만 깔끔하게 정리하기 따라서는 꽤 아늑한 공간이 되기도 하는 곳이다. 

나의 경우는 사실 정리를 잘하는 편이 아니라 생각보다 어지러울 때가 많다. 티비에서 보면 하나같이 먼지 하나 없고, 흐트러짐 없는 모습에 정말 경이롭다는 생각을 자주 하곤 했다. 몇 번씩 대청소를 하면 내 작은 원룸은 나름 아늑한 보금자리로 바뀌기도 하지만, 일이 바쁘다는 핑계로 며칠만 청소를 미뤄도 작은 공간에 흐트러진 옷들은 금방 방을 어지럽히곤 했다. 그런 탓에 집을 평수가 더 큰 곳으로 갈까도 고민했다. 그럼에도 처음 이 집을 왔을 때 느꼈던 감회를 잠잠히 생각해 보곤 한다.


내가 처음으로 자취를 한 곳은 5평 원룸인 이곳이다.

그전까지는 대학교에서 시커먼 남자 3명이서 기숙 생활을 했고, 그다음은 군대에서는 더 시커먼 남자들 열댓 명과 생활했다. 제대하고는 학사에 들어가서 2인 1실 생활을 하며 남들과 함께 살게 되었다. 그러다가 취업을 하고 난생처음으로 나 홀로 사용할 수 있는 공간이 생겼는데, 그게 바로 지금 살고 있는 곳이다. 처음으로 진정한 의미의 자취를 하니 설레는 마음이 가득했다.


5평 원룸, 그곳은 내게 '자유', '독립', '해방감'을 주었다.

나만의 책상과, 나만의 침대를 가지고서, 샤워하는 것도 내가 원하는 시간에 할 수 있다는 것이 너무 즐거웠다. 특히, 책상에서 노트북을 쓰거나 공부를 하고 때로는 책을 읽을 때도 언제나 편하게 스탠드를 켜고 사용할 수 있는 것이 너무 행복했다. 학사에 살 때만 해도, 책을 읽고 싶을 때는 새벽 일찍 나와 학교 도서관에 가야 했는데, 자고 있는 룸메를 위한 배려였다. 그렇지만 지금은 그런 수고를 할 필요가 없으니 얼마나 삶의 질에서 큰 발전을 이루었는가 싶다. 나만의 보금자리에서 눈치 보지 않고 이 많은 것들을 할 수 있는 것이 얼마나 큰 삶의 행복인가 싶다.


청소며 분리수거를 하고, 관리비를 내며 공간에 대한 책임감을 갖는 것도 좋은 경험이다.

 엄연히 내가 스스로 경제적으로 자립한 진정한 성인이 된 느낌이었다. 물론 5평 방은 청결하게 유지하는 것이 마냥 쉽지는 않았다. 원룸에서 사는 해 수가 길어지면서 알게 모르게 짐이 쌓여 갔다. 방은 아주 약간이라도 정리나 청소를 게을리하면 순식간에 방이 어지러워졌다. 어쩌면 핑계지만, 업무가 바쁜 일정에는 좀처럼 집을 돌 볼 여력이 없었는데, 바쁜 업무가 끝나고 돌아본 집은 아주 난장판이 따로 없었다. 그렇지만, 이 또한 돌이켜 보면 내게 청소를 잘할 수 있는 습관을 키울 수 있는 아주 좋은 기회이기도 하다. 나중에는 넓은 집으로 갈 텐데, 그때를 위해서라도 작은 공간이라도 먼저 꼼꼼히 정리하는 것이 좋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가끔 옆 방 방음이 안되고, 심지어 아래층에서 웃음소리가 새벽마다 올라 오더라도 이젠 괜찮다.

처음 몇 일간은 내가 듣는 웃음소리가 또 다른 차원의 존재의 기괴한 웃음소리가 아닐까 생각도 했는데, 결국은 방음이 잘 안 되어 웃음소리가 위층까지 올라온 것이었다. 내가 사는 원룸은 특이하게 아래층의 웃음소리가 배관을 타고 위층으로 올라왔다. 지금은 익숙해서 웃음소리가 나도 아무렇지 않게 잘 수 있고, 이제는 그래도 대로변의 차 소음은 아니니까 더 낫다는 생각도 든다. 그리고 친구분들끼리 재밌는 시간 보내셔서 그런가 싶어 이해가 가기도 한다. 먼가 인류애가 좀 더 생겼달까?... 어쨌든 소음에 대한 면역력이 좀 더 길러졌다.


분리수거를 하고 있을 때면, 집주인 아주머니는 늘 쌍화차를 하나씩 주곤 하신다.

인사를 자주 해서 그런지 집주인 아주머니는 날 참 좋아하신다. 그 때문에 어쩐지 방에 더 정이 든 것 같기도 하다. 남들은 집주인의 눈치가 보여서 그렇다고 하는데, 웬일인지 나는 집주인 아주머니가 참 친근하게 느껴졌다. 그리고 무엇보다 작은 평수만큼 나름대로 월세도 그렇게 비싸지는 않다. 미국에서 생각하면 거의 절반 가격에 비슷한 공간의 크기를 임대하고 있다고 느껴서 그런지, 내가 내는 월세 자체는 정당한 가격이라고 생각한다. 그래서 그런지 아직은 사는 것에는 별 다른 불편함이 없는 것 같다.


나만 조금 더 부지런하게 정리하고, 청소하면 충분히 더 내게 좋은 공간이라는 생각이 든다. 

이곳보다 넓은 오피스텔이 탐 날 때도 많았지만, 5평 원룸이 내게 주는 여러 의미를  생각해 보면 여전히 이곳에서 내 꿈을 펼칠 수 있는 좋은 보금자리라는 생각이 든다. 넓은 공간에서 친구들을 초대하고 싶은 로망도 있지만, 그런 로망은 잠시 미뤄두고자 한다. 아직은 이 공간에서 생활하고, 공부하며, 꿈을 펼칠 수 있는 순간들이 참 감사하기 때문이다.






작가의 이전글 질투와 매력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