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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정주호 Feb 02. 2019

#2017.09.27. 드디어 북인도 탈출. 첸나이도착

북인도를 떠나 남인도에서 있었던 첫 번째 이야기입니다.

# 인이: 인도 이야기의 줄임말. 다음(daum) 포털사이트에 '인이' 또는 '정주호'를 검색하면 글이 나옵니다.

감사합니다.

 

 첸나이의 첫인상 


     ‘무엇이 나를 북인도에서 첸나이로 이끌었을까?’ 가장 큰 이유는 실망감이었다. 인도 여행 카페나 책에서 인도 유의사항을 열심히 읽었음에도 불구하고 나는 사기를 당하기 바빴고, 사기꾼들을 따라다니기 바빴다. 안 좋은 일보다 좋은 일이 많았음에도 불구하고 안 좋은 일들이 머릿속에 강하게 남았다. 그래서 북인도를 떠나 남인도에서 새롭게 여행을 하고 싶었다.    


     드디어 기차가 멈췄다. 가슴이 두근거렸다. 벗고 있었던 신발을 다시 신고 기차에서 내릴 준비를 했다. 34시간 만이었다. 기차에서 내리자 모든 게 처음부터 시작되는 기분이었다. 양옆을 보니 첸나이가 대도시임을 실감했다. 사람들은 5M 정도 되는 기차 위로 올라가 짐을 꺼내기 시작했다. 그리고 기차 플랫폼에는 상인들은 소리를 질러가며 물건을 팔고 있었다. 그보다 더 대단한 사람들은 기차를 기다리면서 바닥에 누워 낮잠을 자는 사람들이었다.



      역에서 빠져나오자 날씨는 습했고 하늘은 화창했다. 눈 앞에는 버스정류장이 있었고 사람들이 길게 줄을 서 있었다. 사람들은 길거리에 가판을 세워놓고 길거리에서 물건을 팔고 있었다. 가판 옆에는 길거리 미용실이 있었다. 길거리에서 머리를 자르는 사람, 턱에 거품을 바르고 수염을 다듬는 사람까지 북적북적했다. 기차역 주변이라 그런지 식당들이 많았고, 사람들은 식당 안에서 밥을 먹기 바빴다.


          제일 커 보이는 호텔 건물에 들어갔다. 호텔 1층은 우리나라 옛날식 목욕탕처럼 되어있었다. 예를 들면 티켓을 주면 수건과 사물함 키를 주는 카운터 공간이었다.  조금 한 공간에는 철조망이 쳐져있었고, 나이가 지긋하신 할아버지가 들어가 있었다.

“나마스떼 (안녕하세요), 오늘 방 있을까요?”

“미안하지만 오늘 방이 없어”

난 숙소 사진과 위치를 보여주면서 말했다.

“그러면 혹시 어떻게 가는지 아세요?”

내 핸드폰을 들고는 180도 돌리고 다시 360도를 돌려 보더니 모른다고 하셨다. 카운터 옆에는 젊은 인도 남자가 팔을 걸치고 서있었다. 내 핸드폰을 건네받은 뒤 한번 보고는 건물밖에 같이 나갔다. 그리고는 길을 알려주고 다시 들어갔다. 나는 건물 안에 있는 할아버지를 보고 손을 모았다. 그리고 말했다.

“감사합니다”


     알려준 데로 걷자 호텔촌으로 들어왔다. 네이버에서 봤었던 호텔촌이었다. 100m 정도 되는 골목 양옆에 호텔과 모텔들이 줄지어 나란히 있었다. 떠본다는 생각으로 첫 번째 호텔에 들어갔다.

“혹시 방 있나요?”

“미안한데 방이 오늘은 없어”

“그럼 가격 좀 알려주세요, 여기 얼마 정도 하죠?”

“음 한 1000루피 정도 할 거야”

엄청 비쌌다. 나는 절반 가격도 안 되는 300~400루피 (4000원~6000원)를 찾고 있었다. 약간의 희망을 갖고 다음 숙소로 들어갔다. 역시나 가격도 가격이지만 방이 없다고 했다. 점점 불안해졌다. 세 번째 숙소도 방이 없었다. 네 번째, 다섯 번째 다 들어가 봤지만 방이 없었다. 다른 호텔 직원은 나를 계속 응시하며 여기저기 들어가는 날 보고 있었다. 


      오늘만큼은 숙소 가격을 신경 안 쓰기로 했다. 숙소 가격이 중요한 게 아니었다. 길바닥에서 돌아다니는 소들이랑 강아지들이랑 비비고 잘 판이었다. 바로 부킹닷컴 어플을 켰다. 다행히도 방이 몇 개가 있었다. 하지만 본능적으로 손가락은 필터를 눌러 ‘가장 저렴한 순’을 클릭했다. 다행인지 불행인지 모르게 모든 숙소들은 3km나 떨어져 있었다. 오늘만큼은 돈 생각을 안 하기로 했는데 ‘3km면 걸어갈 수 있을까?’라는 생각이 먼저 들었다. 하지만 툭툭이나 우버 (택시) 타고 이동하기로 마음을 먹었다.



     ‘툭툭를 어디서 타야 하지?’라는 생각을 하면서 계속해서 걷는 나 자신을 발견했다. 그냥 걷기로 하고 지도를 따라갔다. 길을 건너기 위해서 육교 위로 올라왔는데 더 이상 걸을 용기가 없었다. 바로 육교를 밑에는 ‘불가 천민족’ 동네가 있었다. 인도 여행 가이드 책에서 보면 불가 천민족 동네가 보이면 바로 우회를 하라고 했다. 난 망설였다. 여기만 통과하면 앞으로는 문제는 없었다. 그리고 이미 1km를 걸은 상태였다. 육교 위에서 망설이고 있었을 때 40대로 보이는 아저씨가 육교 밑을 내려가려고 했다. 아저씨에게 다가가 숙소 위치를 보여주면서 말했다.

“나마스떼, 여기 가려고 해요. 어떻게 가야 돼요?” 

“육교 밑에 지나가야 돼.”

오 마이 갓!! 이 길이 아니기만 바랬지만 이 길을 지나야 했다.

아저씨는 말을 이어나갔다.

“나 따라와”


     아저씨가 누군지도 모르지만 일단 따라가기로 했다. 육교 밑을 내려와 조금 한 입구로 보이는 곳으로 들어갔다. 입구에 들어가 주변을 살펴봤다. 사람들은 텐트보다 더 허름한 천막에서 살고 있었다. 뛰어다니는 어린아이들은 바지도 입지 않은 채 동네를 뛰어다녔다. 마치 내가 어렸을 때 사진으로만 봤던 6.25 전쟁터 같은 느낌이었다. 현지 사람들은 나를 신기하게 쳐다봤다. 어른들과 아이들은 가만히 서서 고개를 돌리며 나를 쳐다봤다. 어색한 웃음을 지으며 손을 흔들었다. 아이들과 어른들은 누런 이를 보이며 나에게 손을 흔들어 줬다.


     문제는 여기서 터졌다. 고개도 숙이면서 인사하고, 너무 반갑게 맞이 했던 탓에 아이들이 나를 따라다니기 시작했다. 전방에 30m 앞에는 초등학생 자전거 족까지 보였다. 아이들과 자전거 족은 내 주변을 맴돌기 시작했다. 가방도 한번 두들겨보고, 내 얼굴을 뻔히 쳐다보고, 악수를 하자며 손을 내밀었다. 아이들을 좋아하는 나였기에 반갑게 맞이 했는데 10분 20분 정도를 쫓아올 줄은 몰랐다. 내심 걱정했던 건 내 물건을 훔쳐가고, 나에게 해를 입힐까 생각을 했지만, 그렇지 않았다. 너무나 순수하고 착했던 친구들이었다.


     다행히 안전하게 벗어났고 아저씨는 간다며 손을 흔들었다. 감사하다는 말을 전한 뒤 우리는 헤어졌다. 아이들 또한 더 이상 쫓아오지 않았다. (사실은 여행 가이드에 적혀있는 데로 따라야 한다. 그때는 좀 더 색다른 경험을 하고, 많은 것을 보자며 선택한 일이지만 [30% 돈 아끼려고] 지금 보면 위험한 판단이었다.) 그리고 사람의 경제적인 환경을 보고 판단을 하는 것은 전혀 옳은 방법이 아니었다.


     30분을 더 걷자 드디어 부킹닷컴에서 봤던 호텔에 도착했다. 예약을 통해서 안 하고 직접 컨택을 하자 50루피를 할인해줬다. 가격을 지불하고 키를 받고 방으로 들어갔다. 하지만 이 방은 돈을 받고도 자고 싶지 않았다. 화장실을 개조해서 방으로 만들었는지 벽에는 화장실 타일이 붙어있었고 더욱 심한 건 방 안에서 오줌 찌린내가 났다. 침대도 목욕탕 가면 때 미리 침대가 있었고 침대 또한 축축했다. 


처음에 배정받은 방, 지금 생각해도 끔찍하다


처음 배정받았던 방


     바로 카운터에 갔다. 카운터 직원은 나랑 눈이 마주치고 약간은 얼굴이 굳어졌다. '이럴 줄 알았어' 하는 얼굴이었다. 키를 주고 다른 방을 보여달라고 했다. 카운터 직원은 친절하게도 다른 방을 보여줬다. 다른 방도 나쁘진 않았는데 대신 창문이 없었다. 방마다 문제가 하나씩 꼭 있었다. 일단 방이라도 있으니 감사한 마음에 키를 받고 짐을 풀었다. 


두 번째로 배정받은 곳, 그나마 괜찮았다. 처음에 이상한 걸 보여줘서 다음 꺼를 좋게 만든 건지.

     짐을 풀고 호텔에 들어가기 전에 봤던 여행 에이전시에 갔다. 엄청 조금 한 사무실이었다. 사무실 안에는 살집이 있고 인상이 좋은 남자가 앉아있었다. 이름은 쿠바랜 이었고 애기가 3명이나 있고 30대 중반의 남자였다. 쿠바랜은 나에게 물어봤다.

“어느 나라에서 왔어?”

“Korea에서 왔어”

“North Korea? South Korea?”

북한에서 왔다고 장난치고 싶었지만 “South Korea”라고 말했다.

말하자마자 쿠바랜은 “뚱땡이 김정은”이라고 말했다.


    그 이후 티켓을 가격 확인만 하고 한 시간 정도 수다를 떨었다. 쿠바랜은 말했다.

“밥 먹었어? 안 먹었으면 같이 가자, 맛있는 곳 소개해줄게”

“밥 먹진 않았는데, 그냥 여기 옆에서 대충 먹으면 돼”

“그러지 말고 10분 후에 나 문 닫으니까 기다렸다가 같이 가자. 오토바이도 있으니까 너 뒤에 타면 돼.”

약간의 의심은 있었지만 믿고 싶었다. 그리고 말했다.

“아 그래도 돼? 알겠어 같이 가자”


     사무실 셔터를 내리고 쿠바렌은 오토바이에 키를 꽂고 앉았다. 뒤에 타려고 생각을 하는 순간 갑자기 차가운 기운이 느껴졌다. ‘혹시 나를 이상한 곳에다가 데려가는 게 아니겠지?’ ‘밥 사고 티켓 안사면 해코지를 하려나?’ ‘괜히 탔나?’ 수만 가지의 생각이 머릿속에 가득했다. 하지만 믿을 수 있었던 건 우리의 대화였다. 대화를 통해서 좋은 사람이라고 믿었기에 오타바이 뒤에 탔다.  


쿠바 랜 사무실

     오토바이가 출발하고 몸을 오토바이에 맡겼다. 머리가 휘날렸고 가슴에 응어리가 다 날아가는 듯한 기분이었다. 10분 정도 달리자 엄청 큰 식당 앞에서 내렸다. 자리를 잡고 주문을 하고 손을 씻었다. 모든 사람들은 나를 쳐다봤다. 주변을 두리번 보고 있을 때 쿠바랜은 말했다.

“첸나이에 온 걸 환영해, 음식 맛있게 먹자”

“고마워"


첸나이의 첫인상이 결정되는 순간이었다. 너무 좋았다.


     음식이 나오고 맛있게 먹었다. 약간의 의심을 한 게 조금은 미안했다. 밥을 먹고 숙소까지 데려다주고 내일 보자는 약속과 함께 떠났다. 참으로 괜찮은 친구였다.


쿠바랜이 사진 음식, 맛있었다.


     자기 전에 카톡을 확인했다. 인도 카톡방 안에는 첸나이에서 함피(인도 도시)로 같이 갈 사람을 찾고 있었다.  사실 계획이 없었던 나에게는 좋은 기회인가 라는 생각도 하면서 카톡을 보냈다. 그때 만난 게 영화였다. 영화는 나보다 동생이었고, 동남아 여행을 끝나고 인도로 넘어오기 전에 여행 같이할 사람을 찾고 있었다. 둘이 이동을 같이 하기로 하고 침대에 누워 잠을 청했다. 근데 갑자기 핸드폰이 울리면서 다른 한분도 같이 가자고 카톡을 했다.  그게 바로 현주 씨였다. 짧은 카톡을 하고 나서 침대에 누워 잠을 청했다.


마음속으로 간절하게 기도를 했다.


  ‘모두 좋은 분들 이였으면 좋겠고 내일은 아무 일 없기를 간절히 빌었다.’


 From. Toronto

Instagram : Jooho92

- 인스타그램에 인도 사진, 기록들 많이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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