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정주호 Oct 05. 2017

액땜은 없었다. (캐나다에서 있었던 재밌었던 에피소드)

많은 경험들은 사람을 여유 있게 만든다고 믿습니다.

액땜은 없었다.  정주호


  2015년 6월, 24살에 어학연수를 하러 캐나다 밴쿠버에 도착했다. 나의 목표는 영어를 잘하는 것도 있지만, 한국에 돌아가기 전 까지는 다양한 사람들을 만나고 싶었다.


  그중에 어학원에서 만난 소중한 인연이 총 3명이 있다. 그중 한 명은 성찬이 형이다. 형은 28살인데, 전형적인 한국인이다. 그 말은 즉 영어 문법은 누구보다 잘았는데, 스피킹은 문법만큼 잘하지 못했다. 그래서 항상 영어로 말을 하다가 말이 안 통하면 나를 쳐다봤다. 다음은 형수형이다. 나보다 한 살 더 많고 털털한 성격이어서 그런지 처음 보자마자 “주호야 말 놓을게 친하게 지내자” 라며 말을 놨다. 처음엔 친해지기 어렵다고 생각했지만 만나면 만날수록 끈끈해졌다. 마지막은 다성이형이다. 형수형이랑 동갑이고 나랑 6개월 동안 룸 메이트였다. 하지만 친해 질려면 멀어 보였다. 6개월 동안 같이 붙어 있었는데도 우리는 마지막까지 서로 존댓말을 했다. 존경받는 느낌인지 친해지고 싶지 않은 느낌인지 헷갈렸다. 그렇게 우린 넷이 항상 같이 다녔다.

  밴쿠버 에서의 삶은 재미있었지만, 6개월 동안 똑같은 일상생활을 하다 보니 지루해지기 시작했다. 그래서 우리는 밴쿠버를 떠나 토론토로 가기로 했다. 밴쿠버에서 다녔던 어학원이 토론토에도 있기 때문에 학업을 연장하는데 전혀 문제가 없었다.


  우리의 계획은 토론토에 도착하고 몇 일뒤  몬트리올과 퀘백을 여행하는 것이었다. 그러기 위해선 토론토에서 머물을 숙소와 기차 예약을 해야 했다. 생각했던걸 행동으로 옮기려 하니 많이 복잡했지만, 차근차근 하나씩 하기로 했다. 그중 제일 중요한 부분은, 돈을 아껴 써야 했다.


  밴쿠버를 떠나기 3일 전, 형수형을 뺀 나머지 (성찬이 형, 다성이형)는 우리 집에 모여 기차 티켓을 예매하기로 했다. 안타깝게도 형수형은 밴쿠버에 남아있고 싶다고 했다. 그래서 우리는 몬트리올에서 퀘백으로 가는 기차 티켓 3장만 예약을 하기로 했다.


  성찬이형이 우리 집에 들어왔을 때, 나는 일을 가기 위해 서둘러서 집을 나 가는 길이었다. 성찬이 형과 문 앞에서 마주쳤다. 그리고 성찬이 형이 자신 있게 말했다.

 “주호야 오늘 토론토에서 몬트리올로 가는 기차 티켓 하고 버스 티켓 다 예약할게”

성찬이 형이 말하는 걸 들었는지, 다성이형이 거들면서 “아 이제 진짜 떠나는 건가”라고 말했다. 나는 나가면서 말했다.

“형들 티켓팅 잘 부탁드릴게요 이따가 봬요”.


  알바를 하고 있던 중 갑자기 다성이 형한테 연락이 왔다. 24년을 산 경험을 통해서 딱 촉이 왔다. 왠지 기쁜 소식은 아닐 것 같았다. 일을 잠시 중단하고 뒷문으로 나가 전화를 받았다. 다성이형이 허탈한 웃음을 내면서 말했다.

“주호야 어떡하지 티켓팅을 잘못했어. 11월 26일 14:00시에 퀘백으로 가는 걸 예약했는데, 모르고 11월 26일 19시:00로 돌아오는 티켓을 예약했어”

  원래 계획은 1박 2일 동안 퀘백에서 머무는 것이었다. 하지만 퀘백에 도착하자마자 5 시간 놀고 다시 몬트리올로 가야 했다. 예를 들면 계곡에 가기 위해서 렌터카도 빌리고 음식 준비도 했는데 발만 담그고 집으로 돌아가는 꼴이었다.

하지만 나는 다성이형을 진정시키기 위해 괜찮다는 듯이 말했다.

“형 하는 수 없죠 티켓 다시 사면돼요! 돈이 중요한 게 아니라 여행이 중요한 거죠! 그래서 기차 가격이 얼마예요?”

다성이 형이 머문 거리면서 말했다.

“좀 비싸긴 한데.. 15만 원 이야”.

나는 조금 당황해서 다시 말했다.

“형.. 제가 형한테 15 만원 드려야 돼요? 형이 실수하셨는데..”

다성이형은 자기 실수를 인정하면서 “ 그.. 그런가.. 아 이따가 와서 이야기해보자”라고 말했다.


  전화를 끊은 후 싱크대 앞에 섰다. 1~2분이 지난 것 같은데 그릇은 산더미처럼 쌓여있었다. 사장님은 그릇이 없다며 빨리 설거지를 하라고 보챘다. 정신없이 그릇을 닦아 보는데 이상하게 15 만원이 눈 앞에 아른거렸다. 갑자기 욱 했다. 이상하게 설거지하는데 엄마 생각이 났다. ‘이래서 내가 실수하면 엄마가 설거지하면서 잔소리를 했나 보다.’ 하지만 다성이형을 이해하려고 노력했다. 다성이형은 약간 덜렁거리는 성격이었는데 , 그걸 누구보다 더 잘 아는 나였기 때문이다. 그렇기 때문에 고양이에게 생선을 맡긴 꼴이었다. 하지만 나에게도 잘못이 있었다. 내가 티켓을 사달라고 부탁을 했고, 남 탓을 하고 싶진 않았다. 집에 돌아가면 바로 15만을 주기로 생각했다.


  집에 도착하자마자 다성이형에게 15만 원을 주었다. 다성이 형은 미안하다는 표정을 지으며 15만 원을 받았다. 사실 나는 내심 15만 원의 반은 주겠지 라는 생각을 했지만 다 챙겨갔다. 기대를 한 내가 바보였다. 하지만 여행하기 전에 ‘약간의 액땜은 있겠지’라는 마음으로 넘겼다.


  드디어 토론토로 가는 날이 왔다. 집을 떠나기 전에 깨끗해진 방을 보니 가슴이 뭉클했다. 그리고 지난 6개월 동안 기억들이 새록새록 하나씩 지나갔다. 가만히 서서 방을 둘러보니 시계가 보였다. 시간을 보니 지금 바로 떠나야 했다. 캐리어를 들고 1층으로 내려가 문 앞에 섰다. 그리고 생각했다. ‘기차표 15만 원의 액땜을 빌미로 오늘만큼은 조용히 지나가겠지?’


  밴쿠버에 남아 있기로 한 형수형은 아침 일찍 나와 공항까지 우리를 데려다준다며 집 앞 대문에 서 있었다. 그리고 우리의 캐리어를 끌고 공항으로 가는 버스를 같이 탔다. 공항에 도착한 후, 바로 보안검색대로 들어가기엔 형수형에게 조금 미안한 감정이 있었다. 그래서 카페테리아에서 간단히 음식을 먹기로 했다. 느낌상 지금 바로 들어가야 할 것 같았지만 빨리 먹기로 했다. 그래서 난 빠르고 간단히 먹을 수 있는 샌드위치를 골랐지만, 성찬이형은 그렇게 안 먹던 뜨거운 우동을 주문했다. 주문하는 성찬이 형에게 말을 할까 말까 했지만 말하지 않았다. 음식을 먹는 동안은 재촉하고 싶지 않았다. 다 먹고 나서 재촉하기로 했다. 형들이 다 먹을 때까지 기다렸다가 다 먹고 나서 빨리 가야 한다며 보챘다.


  우리는 보안검색대에 들어가기 전까지 웃으면서 형수형에게 손을 흔들었다. 형수형을 쳐다보느라 우리는 앞을 보지 못했다. 고개를 돌려 검색대 안으로 들어가니 엄청 많은 인파들이 보안검색을 하기 위해서 기다리고 있었다. 아까 웃으면서 형수형에게 손을 흔들던 모습과는 전혀 다른 상황이었다. 고개를 빼꼼 내밀어 앞을 보는데 앞이 안보였다. 시계를 보니 30분이 남았다. 이미지 트레이닝을 해보니 지금 보안검사를 해야 했다. 등에서는 천천히 식은땀이 나기 시작했고 초초 해졌다. 우리는 아무 말도 하지 않았지만, 눈동자가 심각하게 흔들렸다.


  도저히 가만히 서있기엔 뭐라도 해야 할 것 같았다. 나는 앞사람에게 티켓을 보여주면서 “앞으로 가도 되나요?”라며 말했다. 앞사람은 티켓을 보더니 가라고 길을 내주 었다. 성공이었다. 이대로라면 비행기를 탈 수 있을 것 같았다. 하지만 산 넘어 산이라고 30~40명에게 설명을 해야 할 판이었다. 하지만 나는 포기하지 않았고 입에 단내가 날 정도로 앞사람에게 말을 했다. 사람들은 친절하게도 양보해주었다. 뒤를 보니 형들은 애기 오리처럼 나의 뒤 꽁무니를 잘 쫓아왔다. 다행히 10분 일찍 보안대에 도착했지만, 서둘러야 했다. 최대한 빨리 가방을 열어재꼈다. 거의 가방 안에 있는 내용물을 쏟아낸다는 것이 맞는 표현이었다. 나와 다성이형은 문제없이 보완 검색에 통과했다.


  달리려고 하던 순간 갑자기 성찬이 형이 나를 쳐다봤다. 성찬이형의 얼굴은 경직돼있었고 불안해 보였다. 나는 속으로 ‘형제 발 아무 말하지 말고 뛸준비하세요’ 라며 눈동자로 이야기를 했다. 하지만 성찬이 형은 나에게 말했다.

 ”주호야 보안검색 대원이 나보고 옆으로 빠지래, 나버리고 빨리 가” 라며 다급하게 말했다. 나는 순간 어쩔지 몰라하면서 말했다.

“형 제가 먼저 비행기 잡을 게요 빨리 뒤 따라오세요”

그리고 죽어라 달렸다. 앞사람 30~40명에게 설명한 것이 무용지물이 되고 싶지 않았다. 그리고 기차표도 15만 원에 날렸기 때문에 비행기까지 놓치면 나는 공항 식당에서 설거지를 해야 한다는 심정으로 달렸다.


  혼자 죽어라 뛰어 도착해보니 다성이형이 먼저 도착해있었다. 여기 나 말고 두 번째 배신자가 또 있었다.  하지만 다성이형은 비행기를 타지 않았고, 의자에 앉아서 기다렸다. 말은 안 했지만 눈물 나게 감동이었다. 나는 공항직원에게 다가가 비행기를 탈수 있냐고 물어보았다. 공항 직원을 말했다.

“10분 전에 비행기 이미 떠났어요, 저기 비행기 놓친 안경 쓴 사람 옆에 앉아있어요”

안경 쓴 사람은 다성이 형이었다. 다성이형은 기다린 게 아니라 비행기를 놓친 거였다. 나랑 다성이형은 말없이 의자에 앉아 있었다. 우리를 발견하지 못한 성찬이형이 공항직원을 향해 정말 열심히 뛰어가고 있었다. 그리고 공항 직원에게 우리가 했던 똑같은 질문을 마지막으로 했다. 내가 멀리서 성찬이형을 불렀다. 그리고 여기 앉으라는 사인을 보냈다. 성찬이형의 얼굴에는 땀이 흘러내렸고, 표정은 굳어져있었다. 10분 후, 공항직원이 우리에게 말을 건넸다.

 "다음 꺼 비행기 예약해 줄테니까 우선 신용카드로 한 사람당 10만 원 먼저 내고, 비행기는  오늘 저녁에 탈 수. 있을 거예요.”


  10만 원을 내기 전에 나는 마지막으로 지푸라기 라도 잡는 심정으로 공항직원에게 말했다.

“우리가 늦고 싶어서 늦은 게 아니라 점심 먹다가 늦었어요. 돈내기는 약간 억울한 거 같아요”

공항 직원들 중 한 명이 대단하다 면서 박수를 쳤다. 괜히 말했다. 창피하였다.

나는 신용 카드가 없어서 다성이형에게 부탁을 했고, 나중에 현금으로 주기로 했다. 운이 좋게도 1시간 후에 자리가 난다며 탈 준비를 하라고 했다. 의자에 앉아 있는데 아무 생각 없이 형수형 생각이 났다. 형수형이 웃으면서 손을 흔드는 모습이 잔상에 남아 잊히지가 않았다.


  토론토에 도착한 후에 우리는 형수형에게 비행기 놓쳤단 말을 안 했다. 공항 직원에게 창피당했으니 마지막 자존심이라 믿고 싶었다. 우리는 형수형에게 그냥 잘 도착했다는 메시지만 보냈다.


  말없이 가만히 있자 너무 얼간이 삼 형제 같아 보였다. 그래서 내가 먼저 말을 꺼냈다.

 “국내 항공이라 다행이지, 만약에 국제항공이었으면 10만 원보다 더 내야 했을 거예요. 우리 긍정적으로 생각하며 넘겨요” 옆에 있던 성찬이형은 “그래 맞아, 국내선이라 다행이야”


  2016년 가을에 우리는 모였다. 그리고 비행기 놓쳤단 말을 형수형에게 말했다. 속이 후련했다. 그날은 잠을 잘 잤다.


작가의 이전글 자전거 타고 서울에서 부산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