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1월 14일, 목요일
방문객
– 정현종-
사람이 온다는 건
실은 어마어마한 일이다.
그는
그의 과거와
현재와
그리고 그의 미래와 함께 오기 때문이다.
한 사람의 일생이 오기 때문이다.
부서지기 쉬운
그래서 부서지기도 했을
마음이 오는 것이다 – 그 갈피를
아마 바람은 더듬어 볼 수 있을
마음,
내 마음이 그런 바람을 흉내 낸다면
필경 환대가 될 것이다.
사람의 인연에 대해 생각하다 정현종 시인의 방문객이라는 시가 떠올랐다.
누군가를 만나 인연을 이어가다 보면 그 사람의 현재와 과거를 알게 되고 그 사람과 함께 보낼 미래도 그려보게 된다. 이것은 비단 남녀의 관계에서만 통용되는 것은 아니다. 사람과 사람의 인연에 대한 얘기이다.
책방을 하며 만나게 된 새로운 인연들이 많다.
우선 이곳 동네 사람들. 깊게 알지도 오래 알지도 않았지만 이 골목길 초입에 책방이 생긴 걸 환영해 주는 고마운 분들.
개업 떡 맛있게 잘 먹었다며 문 열자마자 커피 마시러 와 주신 안경점 사장님.
오늘도 커피와 책을 사러 와 주신 수제 떡 케이크를 만드시는 사장님.
내 가게가 있는 골목길에서 가장 유명한 카페의 사장님. 어제도 책을 잔뜩 사가셨는데 오늘 또 찾아주셨다.
공주뿐만 아니라 전국에서 유명한 나태주 시인님. 공주에 책방을 여니 나태주 시인님을 동네 할아버지처럼 보게 된다. 참 신기한 경험이다. 오늘도 책을 몇 권 사가셨다. 왜 시집은 지난번과 똑같냐며 다른 건 왜 안 들여놓냐고 물으시는데. “시인님, 저는 시가 어려워요. 어렵다 보니 잘 읽지 않아 손님들께 소개를 할 수가 없어요” 하고 솔직히 말씀드린다.
시의 함축적인 의미를 이해하는 게 지금의 나에게는 어렵다. 언젠가는 시를 편히 읽을 수 있겠지, 그게 다만 지금이 아닐 뿐.
그리고 매일 새롭게 만나는 책방을 찾아주는 손님들.
모두 다 소중한 인연이다.
이전의 삶에서는 만날 수 없었을 사람들.
그런 소중한 인연 덕분에 오늘도 책방을 무사히 열고 닫았다.
오늘은 구름 잔뜩 낀 하늘과 함께 시작했다.
조금이라도 더 걷기 위해 차를 평소보다 먼 곳에 주차하고 내가 좋아하는 제민천으로 내려와 물이 졸졸졸 흘러가는 소리를 듣는다.
골목길 앞 떨어진 낙엽을 쓸고,
식물들에 골고루 물을 주고,
방에 달 가림막 천에 양면테이프를 붙이다 모자라 이 작업은 내일로 미뤄두기.
혼자 사부작사부작 움직이고 있으면 이따금씩 손님이 들어오고 그럼 나도 하던 일을 멈추고 손님에게 집중한다. 머무는 시간이 길어질 경우 나는 내 작업을 계속하고 손님은 편하게 책을 보신다. 이제 손님을 맞이하는 게 조금씩 익숙해지는 거 같다.
날씨가 점점 흐려지더니 비가 오기 시작했다.
손님 없는 책방에 앉아 빗소리를 듣고 있으니 낭만 있다.. 생각은 잠시,
쌀쌀해지고 출출하니 컵라면 생각이 너무 난다.
손님이 올까 안 올까 밖에 나가 통행하는 사람들이 없는 걸 확인하고 ‘근처에 있으니 전화 주세요.’ 메모를 붙여놓고 근처 편의점으로 컵라면을 먹으러 갔다.
가게를 비워두고 나갈 때는 손님이 올까 봐 CCTV를 계속 보고 있었는데 라면 뚜껑을 열자 손님이 들어오신다. 책방을 지키고 있으면 안 오시는데 가게를 비워두고 나오면 꼭 오시더라. 머피의 법칙인가.
이미 다 익은 라면을 포기할 수 없어 네 젓가락만에 라면을 다 먹고 (국물은 너무 뜨거워 마시지 못했다. 아까워라) 라면 면발이 위에 도착하기 전에 후다닥 가게로 돌아왔다.
“너무 춥죠? 쌀쌀하고 출출해서 잠깐 라면 먹고 왔어요.”
돌아오는 말이 없던 걸로 봐서 이 말은 하지 말걸 그랬나 보다.
오늘은 집에 가는 길에 만두를 포장해 가서 먹어야겠다.
손님이 없을 때 혼자 있으면 나는 왜 이렇게 먹을 거 생각이 많이 날까.
오늘도 수고했다!
이제 청소하고 마감 준비하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