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방사장의 시간 활용

11월 16일, 세 번째 맞는 토요일

by 책방 잇다

오늘이 겨울이 오기 전 마지막으로 따뜻한 토요일이 될 거 같다.


다음 주부터 영하의 날씨라는데 외풍이 심한 구옥이라 월동준비를 단단히 해야 할 텐데 첫겨울을 앞두고 추위를 많이 타는 나는 벌써부터 근심이 많다. 한동안 추웠을 때 가게에 가만히 앉아 있으면 온 벽에서 한기가 들어왔다. 여기저기 바람이 들어오는 틈새는 또 왜 이리 많은지. 추운 날 손바닥을 벽 사이사이에 대보며 바람 나오는 데를 찾아다니며 발견한 틈은 실리콘으로 전부 막았다. 실리콘으로 막지 못하는 넓은 틈은 우레탄폼을 사용해야 하는데 옆집 카페 사장님이 가지고 계신 물품이 있으니 추워지기 전에 막아주신다고 해서 기다리는 중이다. 계속 재촉할 수는 없어 기다리고 있는데 잊으신 건 아니겠지. 당장 내일모레부터 추워진다니, 언제 슬쩍 다시 말씀드려 봐야지.


어제와 오늘 출근길 하늘이 너무 예뻐 연신 사진을 찍어가며 출근했다. 오늘이 이번 주 5일째 영업일이라 에너지가 많이 소진돼서 그런지, 날씨가 너무 좋아서 그런지 해야 할 일은 있는데 움직이기가 싫다.


더 이상 주 5일 근무에 공휴일의 휴식이 보장된 직장인이 아니라 휴일의 의미가 이제는 달라졌지만 아직은 주말이 되면 괜히 설렌다. 어디 가지도 못하고 가게에만 있어야 하는데도 주말에 설레는 건 왜일까.

따뜻하고 맑은 날씨에 기분 좋았던 아침과는 다르게 시간이 지날수록 내 에너지도 확확 줄어든다. 주 5일 영업이 아직 몸에 익숙지 않은 걸 수도 있고, 사람마다 정해진 에너지 총량이 있다고 생각하는데 나는 에너지 총량이 좀 적은 사람인 거 같다. 오래 운영하기 위해 나도 지치지 않는 선에서 운영하는 방법도 더 생각해 봐야겠다.


가을이 가고 겨울이 오고 있다는 것을 골목길 앞 더 많이 떨어지고 있는 낙엽을 보니 느껴진다. 저 낙엽이 다 떨어지면 추운 겨울이 시작될 테고, 겨울이 되면 사람들 발길이 끊기겠지.

기다림의 시간이 곧 찾아오겠다.

지난주 토요일과 다르게 오늘은 책방을 찾는 발길도 적고 골목길을 통행하는 사람도 많지 않다.


오늘은 아무것도 하지 않지만 더 아무것도 하기 싫은 기분.

기운이 없는 오늘은 기다림의 시간에 해야 할 일이 아닌 하고 싶은 일을 해야겠다. 보고 싶었지만 계속 못 보고 미뤄뒀던 영화 ‘퍼펙트 데이즈’를 보기 위해 무려 5,500원을 결제하고 1분 정도를 보는데 손님이 들어오신다. 이어폰을 한쪽 귀에만 꽂아놓고 계속 보려고 했는데 손님이 묻는 말에 이어폰을 빼고 일시 정지를 눌렀다.


머물던 손님이 돌아가시고 다시 영화를 재생시키려는데 아침에 제일 먼저 열어놓은 명함 제작 사이트가 눈에 들어왔다. 책방을 하며 명함이 필요할까 라는 생각에 명함을 만들지 않았는데 누군가를 만나 인사를 할 때 기본적인 소개를 위해선 필요하겠다는 생각에 ‘명함 만들기’를 매일의 할 일 리스트에 올려놓고 미뤄두고 있는지 3주가 지나가고 있었다.


영화를 다시 보기 전 명함 제작을 먼저 끝내야겠다!


사이트에 있는 기본 템플릿을 사용해 명함을 만들고 있는데 부모님이 오셨다.

직장만 다니던 딸이 가게를 한다고 하니 더군다나 책방을 한다고 하니 부모님도 걱정이 많으시다.

엄마가 가게에 있으면 손님이 불편해하니 오지 말라고 했다가 다시 말을 바꿨다. 엄마 오고 싶을 때 언제든 오시라고. 엄마는 늘 환영이라고.


2020년 7월 26일은 나에게 잊을 수 없는 날이다. 전날 밤에 하루의 일상을 묻던 통화를 했는데 26일 새벽에 엄마가 뇌출혈로 쓰러져 병원 응급실을 가고 있다는 연락을 받은 날이었으니.

병원에서는 가망이 없다고 했다. 수술이 성공적이어도 식물인간이 될 가능성도 크다고. 그래도 수술을 진행하겠냐고. 수술 중에 사망하실 수 있다는 설명을 들었다는 동의서에 사인을 하고 나서 엄마의 수술이 진행되었다.

그 뒤로 지금까지 우리 가족은 긴 터널을 지나왔다. 다행히 엄마는 기적적으로 회복하셨고 지금은 혼자 거동이 가능하신 상태까지 좋아지셨다.


엄마와 보내는 지금은 나에게 생긴 두 번째 기회라고 생각한다. 이별이 언제 또 갑자기 찾아올지 모르니 엄마와 함께 보내는 이 시간에 함께 많은 추억도 만들고 사랑한다 말도 많이 하고 그렇게 보내고 있다. 그래서 엄마의 가게 방문을 막지 않았다. 나중에 큰 후회를 안고 살지 않으려고. 엄마가 가게에 오시는 걸 저렇게 좋아하시는데..

책방에는 엄마가 인지치료 받으러 다니시면서 만든 작품들이 몇 개가 있다. 수업하기 싫어하다가 딸 갖다 준다고 하면 열심히 한다는 엄마. 그때 엄마가 떠나지 않고 나에게 두 번째 기회를 줘서 그 힘든 시간을 잘 이겨내줘서 너무 고맙다.


부모님이 집으로 돌아가시고 진행하던 명함 작업을 마무리해서 명함을 주문했다.

드디어 할 일 리스트에서 하나를 지웠다.


6시가 가까워오고 더 이상 손님이 오지 않을 거 같았는데 두 분의 손님이 들어오셨다.

두 분 중 한 분은 회사 건물 지하에 교보문고가 크게 있고 요즘에는 전자책으로 많이 읽어서 동네책방에 큰 흥미를 느끼지 않았지만 일행분이 가보자 해서 오셨다고 했다. 와보니 동네책방의 매력을 알겠다면서, 교보문고 가면 책 종류가 너무 많아 뭘 읽어야 할지 모르겠는데 책방지기의 큐레이션과 책소개도 좋다면서 집 근처에 있으면 자주 올 거 같다고 말씀해 주셨다. 그렇게 말씀해 주시니 너무 감사하고 한편으로 동네책방의 매력을 느끼게 해 드린 거 같아서 뿌듯했다.


그렇지만 인스타는 좀 배워야겠다고, 공간이 너무 예쁜데 인스타그램에 이 공간의 느낌이 전혀 담기지 않았다고.. 조언을 받았으니 내일부터는 인스타 사진을 신경 써서 찍어야겠다.


가게를 하며 인스타를 처음 하기 시작해 아직 인스타가 어렵고, 평소에 사진도 잘 찍지 않다 보니 예쁘게 찍지도 못한다.

나는 뭐든 책으로 배우는 편인데 인스타그램 잘하는 방법에 대한 책이라도 읽어야 할까.


결국 영화는 1분 재생 상태에서 멈췄다.

오늘 집에 가서 마저 보거나 내일 손님이 없는 시간에 다시 시도해 봐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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