변하지 않은 것이 주는 위로

by 책방 잇다

오늘은 탄천 초등학교 학생 10명이 책방을 찾아주었다.



어제 선생님 두 분이 책방에 들르셨는데 오늘 있을 현장학습에서 내 책방을 동선에 넣어도 될지 답사 오셨다고 했다. 책방에 아이들이 읽을 만한 책이 있어야 하는데, 내 책방에는 내가 그림책을 좋아하는 까닭으로 그림책도 많이 들어와 있다. ‘이 책은 누가 읽으면 좋겠다.’ 대화하시며 아이들 한 명 한 명 생각하시는 모습이 보기 좋았다.

워낙 밝은 에너지를 내뿜으시던 두 분이라 그분들이 가르치는 아이들은 어떨까 궁금해졌다.


책방에 머무시는 동안 내내 너무 좋다며 책방이 잘됐으면 좋겠다고 말씀해 주시는데 그 마음의 진심이 느껴져 너무 감사했다.


아이들이 방문하기로 한 시간은 11시 30분.

10시 30분에 책방에 도착했는데 아이들이 오기 전까지 나 왜 바빴지….?

아! 어제 말썽을 부려 AS 받아 교체해 온 전등이 또 불이 들어오지 않아 그거 어떻게 해보겠다고 시간 보내고, 아이들이 오기 전 조명 가게에 다녀올까 말까 망설이다 골목길까지 나갔다 시간 맞춰 못 올 까봐 다시 발길을 돌려 책방으로 돌아왔지.

그리고 간식을 사러 갔다 왔다. 처음으로 단체 방문해 주는 초등학생 손님이라 뭐라도 주고 싶은 마음이었다.

원래 계획은 아침에 마트 들렸다 출근하는 거였는데 늦장 부리다 마트는 들르지 못했고 편의점에서 편의점 사장님의 조언을 받으며 아이들이 좋아할 만한 짜 먹는 젤리 몇 개 사 오고. 행사 준비 하던 버릇으로 쟁반에 예쁘게 디스플레이해 놓고 보니 11시 30분.


다행히 조금 늦으신다는 연락을 받고 나도 한숨 돌리고 있으니 어린아이들 목소리가 골목길에서 들려왔다.


친구 애들 세명만 모여도 정신없음을 경험해 봐서 10명이 모이면 얼마나 정신없을까 생각했는데 선생님 말씀에 따라 다른 손님들 방해되지 않게 조용히 해주는 모습은 또 얼마나 예쁘던지.


각자 원하는 책을 선택하기 전에 선생님이 나를 소개해주셨다.


이 공간을 지키는 책방지기라고.

오래된 것이 사라지지 않게 지키는 사람은 영웅인데 나는 저 멀리 서울에서 이곳을 지키기 위해 온 사람이라고.


그 말을 듣는데 속으로 안절부절.

(저는 여기를 지키겠다는 생각보다 그저 이 동네 분위기가 너무 좋아서 제가 그냥 좋아서 왔어요.)

오래된 것을 지켜야 한다는 말에는 동의하지만 그런 마음을 가지고 온 것은 아니라 듣고 있는데 민망해서 괜한 손가락만 꼬집었다.


말의 무게는 참으로 무겁다.

내가 애초에 그런 마음으로 온 것은 아니지만 그렇게 소개를 받고 나니 왠지 모를 책임감이 생긴다.


반씩 나눠서 책을 하나씩 고르는데 어떤 아이가 방 안에 있는 문은 뭐냐고 물었다.

그 문은 밖으로 나가는 문이고 밖에 나가면 마당이 있는데 그 마당은 나는 사용하지 못한다, 그래서 사람들이 나가지 못하게 커튼을 달아 놓은 거라고 설명하니 공평하지 않다고 여기를 쓰는데 왜 마당을 못 쓰냐고 아이들끼리 얘기하는데 어떻게 현명하게 대답해줘야 할지 몰라 아이들의 대화만 듣고 있었다.

뭐라고 대답해 줘야 했을까… 지금도 할 말을 찾지 못했다.


모든 아이들이 각자 원하는 책을 한 권씩 선택하고 한 명 한 명 줄 서서 원하는 책을 계산하고 받아가는데 질서 정연한 모습에 또 감탄.

내가 초등학생에 대한 편견이 있었던가. 통제되지 않고 시끄러울 거라 생각했는데.

편견을 가지고 바라봐서 미안해 얘들아.


그렇게 아이들이 책과 함께 돌아가고 오래된 것 중 변한 것과 변하지 않은 것에 대해 생각해 봤다.

내가 저 아이들 나이였을 때부터 지금까지 변하지 않고 남아 있는 것이 얼마나 있지...?


기억 속에 떠오른 건 태어나 22년간 살았던 집이다.


나는 태어나 22년간 같은 집에서 살았다.


꽃을 활짝 피우며 봄을 제일 먼저 알리던 커다란 목련 나무와 봄만 되면 찾아와 집을 짓던 제비들, 마당에 있던 감나무의 감으로 만든 겉은 쫀득쫀득하고 속은 부드러운 곶감의 맛, 여름이면 마당 평상에서 먹던 음식들, 혼나면 서러워 울곤 했던 마당 한구석 등 그곳에는 그 집에서 보고 자란 풍경들과 22년의 추억이 축적되어있는 곳이다.


집 주변에는 논이 있었는데, 초등학교 시절 나에게 그 논은 계절마다 모양이 바뀌는 놀이터였다. 봄이 다가오는 2월 정월대보름이 되면 동네 어른들이 쌓아놓은 볏짚을 태우며 동네를 돌아다니며 구한 깡통으로(분유통이 최고였다.) 오빠와 함께 쥐불놀이를 했었고, 여름에는 친구들과 개구리를 잡으러 다녔다. (고백하자면 이때 개구리 뒷다리 튀김도 먹어봤고 그 맛은 아주 좋았던 것으로 기억한다.) 가을에는 수확으로 바빠 놀 수는 없었고, 겨울이 되면 쌓아 올려진 볏짚을 미끄럼틀 삼아 타고 올라가 놀곤 했다.


지금은 부모님도 더 이상 그 집에 살고 있지 않지만, 고향에 내려가면 가끔 예전에 살던 동네를 가보곤 한다. 집 주변에 있던 논 위로 시멘트가 덮여 건물이 올라가고 뛰어놀던 골목이 사라지고 도로가 생기는 등 주변은 옛 모습을 짐작조차 못하게 변해버렸지만 지금도 그대로 남아있는 그 집을 보면서 어릴 적 추억에 잠기곤 한다.


그래서 가끔 일부러 그 동네에 가서 아직도 그 집이 잘 있는지 보고 온다.

주변의 많은 것이 옛 흔적을 찾을 수 없게 변했는데 아직도 예전 모습으로 그 자리를 지키고 있는 그 집을 보면 괜스레 마음이 따뜻해진다.

사라지지 않고 남아 있어 줘서 고맙다고, 추억이 가득 담긴 곳인데 그 추억을 떠올릴 수 있게 해 줘서 고맙다고.


어릴 적 추억이 있던 장소, 물건들은 다 사라지고 건물과 음식점과 도로가 그 장소를 대체해가고 있다.

그래서 그런지 변하지 않고 남아있는 것들을 보면 그 자체로 위로를 받을 때가 있다. 변하지 않은 것은 때론 우리에게 위로를 준다.


지금 내 책방이 있는 곳은 내가 중학교 다니던 시절 유명한 떡볶이 가게가 있었다고 한다.

책방을 찾아온 손님이나 밖에서 지나가면서 하시는 얘기들을 많이 들었다.

“여기 떡볶이 가게였는데, 어릴 때 진짜 많이 왔었는데” 하는 얘기들.

떡볶이 가게를 추억할 수 있게 건물이 그대로 남아 있어서 다행이라는 생각을 했다.


떡볶이 가게를 추억하는 어른들처럼 오늘 책방을 찾은 아이들이 시간이 훌쩍 흘러 내 나이가 됐을 때 다시 이 동네에 와 추억을 떠올리며 변하지 않은 것에 마음의 위안을 받았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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