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회사 그만두겠습니다.”

by 책방 잇다

"저, 회사 그만두겠습니다.


10년이 넘는 시간 동안 직장인으로 살면서 이 말을 몇 번쯤 했을까. 퇴사를 결심하는 것도 그 말을 하는 것도 모두 쉽지 않다. 쉽지 않기에 많이 고민하고 그래도 그것이 나에게 최선의 선택이라 생각하며 퇴사를 하고 이직을 하며 직장생활을 계속해왔다.

이번의 퇴사는 여느 것과는 달랐다. 다른 곳으로의 이직이 아닌 그동안 해오던 업과의 이별이었다.


국제회의 기획 일도 처음에 하고 싶어 시작한 일이기에 쉽게 끝내지 않기 위해 부단히 노력해 왔다.

‘일은 힘들지만 그래도 재밌어’라고 말하던 나였는데 어디서부터 지쳤던 걸까.


퇴근하지 못하고 회사 간이침대에서 자던 거,

밤새 일하다 회사 앞 사우나에서 씻고 와 다시 일하던 거,

평일, 주말 구분 없이 다녔던 출장들…

이런 육체적인 피로들은 시간을 갖고 쉬어 주면 회복이 된다.


회복되지 않는 건 정신적인 피로들이었을지도.

밤새 일하다 씻지도 못하고 미팅에 갔을 때 느꼈던 모욕감,

온갖 인간 군상을 만나봤다 생각했는데 계속해서 더 무례한 사람을 만나게 되는 거,

프로젝트 디데이가 다가올수록 숨쉬기조차 버겁다 느껴지는 압박감..

이런 것들은 좀처럼 회복되지가 않았다.


그만두고 싶었던 순간은 무척 많았지만 쉽게 포기하고 싶지 않아 계속 이 일을 이어가기 위해 내 나름의 노력도 했다.

다른 사람들과 마찬가지로 나 역시 커리어 사춘기가 찾아온다는 3년 차 때는 ‘이 길이 맞는 길일까’ 고민이 깊어졌고, 나의 경우 다른 일을 경험해 봐서 비교대상을 만들기로 결론지었다.


결과는 네일아트 자격증을 취득해서 네일숍에서 3개월 일해봤으며, 그다음은 웨딩드레스 제작을 배워 웨딩샵에서도 3개월 일했다. 그때의 나는 새로운 일이 나에게 맞는지 아닌지 최소한 90일은 해보자 라는 어설픈 기준이 있었다. 지금 생각해 보면 그 90일로 정말 판단할 수 있었던 건지 아니면 그냥 그 일도 못하겠는 핑계를 찾았던 게 아닐까 싶다.


그렇게 돌다가 다시 원래 하던 일로 돌아왔지만 애초에 이 일을 떠나게 만든 요소가 해결되지는 않았기에 업무 환경이라도 바꿔보기 위해 제주도에서도 1년 넘게 살며 일해보고, 기존에 하던 학술대회에서 정부행사로 나중에는 제약행사로 프로젝트의 성격을 조금씩 달리하며 이 업을 계속해보려 했다.


더 이상의 노력이 되지 않을 때 정말 이 업을 떠날 때가 되었다 생각했다.


“나 언젠가 나만의 책방을 하고 싶어”

속마음을 내비칠 때마다 돌아온 반응은 모두 비관적이었다.


요새 누가 책을 봐.

너 그냥 일이 하기 싫으니까 현실도피 아냐?

이상과 현실은 달라.

책방도 언젠가 하기 싫어지면 그때는 어떻게 할래?


응원의 말도 있었지만 마음에 박히는 건 날카로운 말들이었다.


나 역시 책방으로 먹고산다는 것이 자신이 없었기에 항상 ‘언젠가’라는 전제가 붙은 막연한 꿈에 불과했다.

‘언젠가’를 떼어 버리고 지금 책방을 해야겠다 결심을 굳히게 된 건 나이가 들어가면서 안정적인 생활에 익숙해질 때였다.


경력이 쌓이며 연봉이 조금씩 오르고, 매달 정해진 수익이 있다는 건 정말 뿌리치기 힘든 유혹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 안정감을 버리고 책방 창업을 결심한 건 나이가 들면서 하루하루 지나가는 시간이 아깝게 느껴져서. 이토록 빠르게 흘러가는 시간을 한 달 고정 수익만 바라보며 오늘을 꾸역꾸역 버티며 살기엔 너무 숨이 막혀서.

그리고 지금 나에게 가장 소중한 사람인 엄마. 4년 전 뇌출혈로 쓰러지시고 더 이상 예전의 모습으로는 회복이 어렵게 된, 내가 가장 사랑하는 사람. 엄마의 남은 시간이 얼마가 될지 알 수 없지만, 알 수 없기에 가깝게 있고 싶은 마음.


빠르게 흘러가는 서울에서 바쁘게 일하며 나도 돌보지 못하고 내가 가장 사랑하는 사람도 챙기지 못하며 사는 삶에 어떤 의미도 느끼지 못했다.

그래서 ‘언젠가’를 떼어 버리고 지금 책방을 열기로 결심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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