배달원의 유서

2021년 01월 26일 01:27 - 25화 -

by 임주형

글을 써야 할 소재가 많이 고갈됐다. 고작 하루를 쉬었을 뿐인데 월요일의 하루는 몽롱하기만 하다. 어제는 뒤척이다 새벽 늦게 잠들었는데 잠드는 순간부터 깨는 순간까지 쫓기는 꿈에 시달렸다. 어떤 여자가 내 주변 사람들을 모두 죽이고 마지막 남은 나를 끝까지 쫓아왔다. 꿈자리가 뒤숭숭하다고 느껴져서 배달하는 내내 조심했는데 첫 배달에 국물이 쏟아져서 다시 음식을 새로 만들어서 가져다줬었다. 다시 가져다주는데 하필이면 반찬이 쏟아졌다. 이런 경우는 처음이다. 깊이 생각할 필요도 없이 손님에게 전액 환불해드렸다. 어머니께 이 사실을 알렸더니 다툼 끝에 눈물을 보이셨다. “나도 고생하고 니도 고생하는데 어떻게 환불을 해 줄 수가 있노?” 자그마치 61,500원짜리 주문 건이었다. 나머지는 멀쩡했는데 한 그릇 때문에 일어난 일이다. 어머니께 설명했다. “아까운 건 맞는데요. 어머니가 똑바로 포장을 못한 것은 1차적인 실수라서 넘어갈 수 있지만 다시 가져다주면서 저도 반찬 팩을 엎었어요. 우리 가게는 인정이 넘치는 가게잖아요. 길게 보고 장사를 해야 해요.” 그랬더니 재료 준비 시간이 되자 어머니는 나를 보고 잠깐 사라졌다가 오라며 서운함을 나타내셨다. 어제 영양크림을 사드려 놓고는 주름은 내가 다 만든 거다. 그래서 가능한 어머니와 다투지 않으려고 노력을 많이 하는 편이다. 결국은 같이 일하는 사람이 우선이며 사이가 좋아야 일을 행복하게 할 수 있다. 가까이에 있는 사람에게 잘하지 못하는 사람은 결국 타인에게 좋은 사람이 될 수가 없다. 성공한 사람들은 ‘완벽함과 멀어져라.’고 말한다. 맞는 말이다. 내가 완벽해지려고 할수록 가까이에 있는 사람이 힘들어지기 때문이다. 결과적으로 주변 사람들이 다 떠나게 되면 성공은 시너지 효과에서 오므로 혼자서는 성공과 멀어지게 되는 거다. 나는 항상 어머니께 잔소리를 하는 아들이지만 어머니는 반대로 “엄마가 아들한테 잔소리하는 집보다는 차라리 아들이 잔소리하는 집이 낫다.”라고 말씀하신다. 거짓말인지는 모르겠으나 일할 때 힘내시라고 어머니가 좋아하는 헤이즐넛 커피나 대추차처럼 마실 것들은 매일 사드리고 있다. 또, 웃겨 드리려고 많이 노력한다. 그러다 보니 같이 식사를 하다가 밥풀을 많이 맞았다. 밥풀을 맞더라도 어머니의 웃음을 볼 때면 다행이라는 생각이 든다. 쫓기는 꿈이 궁금해서 검색해봤더니 심리적으로 불안하거나 말 그대로 무언가에 쫓길 때 이런 꿈을 꾼다는데 곰곰이 생각해보니 휴무일이 짧다고 느껴져서 이런 꿈을 꾼 것 같다. 혼자 식당에 가서 밥 먹는 것도 좋아하고 영화관에서 영화를 보는 것도 좋아하는데 문화 활동을 못한 지 제법 오래되다 보니 나도 모르는 새 쌓여왔던 것 같다. 코로나 19 바이러스가 종식되는 날이 오면 휴무일을 둘째, 넷째 일요일에서 매주 수요일로 변경할 계획이다. 지금으로써는 오히려 휴무일을 없애야 할 정도로 나라 경기가 좋지 않기 때문에 한 달에 두 번 쉬는 것도 감사해야 한다. 그리고 날씨가 많이 풀려서 배달하기에는 무리가 없는 요즘이다. 얼마 전까지만 해도 오토바이 물통 거치대에 아메리카노 커피를 고정시켜두면 곧바로 얼어 버리고는 했었는데 고글을 벗고 달려도 눈이 시리지 않은 온도가 됐다. 다음 계절이 오고 있음을 느낀다.

KakaoTalk_20210126_025521301.jpg 오리지널 아이스 아메리카노

늦더라도 올봄에는 21시 이후에도 매장에서 취식이 가능해졌으면 하는 바람이다. 진짜 재밌는 에피소드는 매장에서 많이 일어나는데 유서에서도 다루어보고 싶다. 음식을 주문해 놓고 잠든 손님도 있었고 노숙자로 보이는 사람이 음식을 먹고 메뉴를 추가 주문하며 도망간 적도 있었다. 그렇지만 정신적으로 문제가 많은 손님들은 21시 이후에 많이 찾아온다. 이상한 손님들이 그립기도 하다. 아무튼 지금은 가능한 지혜롭게 잘 버티고 가까이에 있는 사람에게 잘해야 하는 시기다. 얼마 전에 써 놓았던 짧은 시 한 편을 덧붙여 본다.


<단골>

임주형


올 때 돼서 안 오면

기다려지는 사람이 있다.

당신이 그런 사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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