배달원의 유서

2021년 01월 28일 01:45 - 27화 -

by 임주형

‘배달원들 하반신 장애인이 되기를 간절히 기원합니다.’, ‘차로 처야 합니다.’, ‘위반하는 배달원은 총을 쏘거나 발로 차서 넘어뜨려야 합니다.’, '다 사형시켜야 합니다.' 등의 댓글을 유튜브에서 봤다. 셀 수도 없이 더 많지만 더는 타이핑을 할 수 없을 정도라서 이 정도로만 그친다. 법을 어기고 경찰관이 잡으려 해도 도망가는 영상이었는데 이것이 배달원의 인식이라면 내가 그렇게도 아껴 입는 배달 대행 조끼를 당장이라도 갈기갈기 찢어 버려야 한다. 맞다. 맞는 말이다. 나는 죄인이다. 신호위반, 보행자 도로 침입 등을 가끔 나도 하니까. 두 번째로 출간했던 《삶의 향기도 배달해 드립니다》의 표지를 보면 배달원인 내 모습이 보인다. 어쩌면 책이 많이 팔리지 않은 결정적인 까닭일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든다. 내가 배달원이라는 이유로 말이다. 댓글 중에서도 배달일을 접해본 사람들은 달랐다. ‘아무나 할 수 없는 일입니다.’, ‘빨리 가져다 달라고 하도 재촉해서 그만뒀습니다.’, ‘지금은 다른 일을 하고 있지만 진짜 해보면 왜 저러는지 알 수 있습니다.’ 등 어느 정도 이해하는 반응이었다. 저서에서도 다루었지만 머플러가 요란한 것과 난폭 운전을 하는 것은 아직 군대도 다녀오지 못한 철들지 않은 청년일 것이다.라고 설명한 적이 있다. 배달원 개개인이 아무리 악순환을 바꾸어보려 노력해도 이미 배달원은 사회의 악이 되어 버렸다. 바람에 날려 도로에 널브러진 박스나 커다란 쓰레기, 죽은 고양이의 시체를 아무리 치워도 나는 직업적으로 좋은 사람이 될 수 없다. 그렇기 때문에 평소에도 배달원을 혐오하는 사람은 그냥 배달원이라는 이유만으로 미워하게 되는 거다. 댓글을 보고 실감했지만 하루에 내가 받는 아무 이유 없는 수차례의 보복 운전이 이해가 된다. 나는 철든 청년이 되고 싶은데 그 조끼를 입고 아무리 선행을 해도 인정받을 수 없는 거다. 이해라는 것은 경험해보지 않고서는 불가능하다. 오롯이 직접 경험해본 사람만이 ‘이해’를 할 수 있기 때문이다. 따라서 나는 ‘이해심은 저마다 광범위하다.’라고 말하는 편이다. 자동차 난폭운전을 보면 ‘저 사람은 게으른 사람이거나 많이 바쁜가 보다.’라며 다르게 생각할 수 있고 자주 가던 친절한 카페 직원이 갑자기 불친절하다면 ‘오늘 안 좋은 일이 있었거나 내가 불편한가보다.’라며 생각할 수 있는 거다. 아름다움이라는 것은 나 혼자만 아름답다고 해서 이루어질 수 있는 게 아니다. 내가 아름답게 볼 수 있어야 비로소 아름다운 세상에 사는 아름다운 사람이 될 수 있는 거다. 나 자신 스스로 스쳐가는 매 순간마다 상대방의 견해적 시각에서 생각해볼 수 있는 능력을 키워야 한다. 만약 ‘배달원들 하반신 장애인이 되기를 간절히 기원합니다.’라는 댓글을 쓴 사람의 주변인 중에 한 사람이라도 배달원이었다면 저러한 댓글은 꿈에서 조차도 쓰지 않았을 거다. 인간은 원래 이기적인 생물이다. 또한 편파적이다. 내 말만 우리말만 맞는 말이며 나머지는 다 틀렸다고 생각하는 거다. 나는 저러한 댓글을 봤고 마음이 속상해졌지만 그 사람 또한 당연히 좋지 않은 사연이 있었을 거라 생각했다. 물론 욕을 해대던 사람들이 단 하루 만이라도 폭우가 내리는 날 수없이 밀려드는 배달 주문과 그 압박감을 느끼며 지하주차장에 미끄러운 우레탄을 밟고 미끄러져 뼈가 부서지고 엉망이 된 음식을 보고 발을 동동 굴러봤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했다. 또한, 더는 청년 실업 이야기를 거론하지 않았으면 좋겠다. 건설 현장에는 이미 외국인 노동자들이 늘어나고 있고 배달원 또한 턱없이 부족하다. 힘든 일은 아무도 하지 않으려 하면서 게으른 청년들이 입만 살아 나불대는 세상인 거다. 나는 부모님 세대가 찢어지는 가난과 어려운 환경 속에서 내 자식은 힘들게 키우지 않아야지 라며 죽자고 노력하신 것의 폐해라고 생각한다. 그 강인함을 물려주지 못하고 게으름과 겉멋만 남았으니 말이다. 오묘하게도 위의 댓글들을 보고 얼마 안 돼서 배달원의 사고를 봤다. 오토바이는 박살이 났고 경찰차 한 대와 엠블런스 한 대, 동료 기사로 보이는 배달원들 사이로 도로에 주저앉아 일어서지 못하고 다리를 부여잡고 있는 모습이었다. 배달 가던 음식은 도로에 흩어져 음식물 쓰레기가 되어 있었다. 나도 초보 배달원 시절에 저런 사고를 겪어 봤기 때문에 안다. 얼마나 서러운지 모를 거다. 비가 오던 날이었는데 나는 3차선에서 달리고 있었고 2차선에서 신호를 받으며 멈추어 있던 차량이 3차선이 텅텅 비어있다는 이유로 갑자기 차선을 옮기는 바람에 놀래서 브레이크를 잡았는데 정말 한참을 미끄러졌었다. 그리고는 그 운전자는 아직 빨간불인데도 내 모습을 봤는지 신호위반과 함께 엔진 rpm 소리를 울려대며 멀리 떠나갔다. 오늘 그 배달원의 사고 원인은 돈을 더 벌기 위한 것도 있겠지만 시간이 오래 지체된 주문이었을 확률이 높다. 음식점에서 고객에게 40분을 도착 시간으로 띄워 보냈을 거고 사고가 난 기사는 전체적으로 음식점에 밀린 배달 탓에 30분이 흘러서야 픽업했을 거다. 10분 안에 가져다줘야 하니까. 조금 더 속도를 냈을 거다. 늦으면 다른 배달 대행업체에게 음식점을 빼앗길 거고 늦으면 죽기보다 싫은 악성 리뷰를 그 음식점 사장은 받아야만 하니까 배달원에게 독촉을 했을 거다. 단언컨대 배달 앱 평균 배달 도착 예상시간이 짧은 음식점일수록 좋은 사장이 아니라는 것을 알린다. 만약, 배달 도착 시간이 짧은데 조끼를 입은 배달 대행 기사가 배달을 왔다면 그 음식점에 대해서 다시 한번 생각해 볼 필요성이 있다. 오늘 이야기는 한눈으로 보고 한눈으로 흘려보냈으면 좋겠다. 나는 배달원에 대한 자격지심이 절대적으로 없는 사람이다. 안 해본 일이 없을 정도로 전문 분야가 많다. 따라서 어떠한 다른 일을 하더라도 당당하게 먹고살 수 있을 정도는 된다. 다만, 이해심은 저마다 광범위하다는 것을 오늘 유서로 남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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