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1년 02월 09일 01:30 - 35화 -
다행히도 사고가 났던 젊은 치킨집 배달원 친구에게서 연락이 왔다. 감사하다는 말과 밥한 끼 대접하고 싶다는 마음을 전했다. 그 말을 듣고 다음에 시간 나면 우리 가게에 국밥 한 번 먹으러 오라 했다. 정말 다행이다. 나는 그 친구를 모르지만 심장이 너무 빨리 뛰어서 혹여나 멎을까 봐 그 순간 얼마나 기도 했는지 모른다. 가족이 있을 것이며 꿈이 있을 거다. 그리고 군대를 다녀왔는지 다녀오지 않았는지는 모르겠지만 더 나은 미래와 삶을 위해서 노력하는 사람일 거다. 사회에는 위험한 업종이 무수히 많다. 건설 현장에서 형틀 목수로 일할 때 현장에서 안전교육을 들을 때면 항상 “집에 가족 있으시죠? 집으로 돌아가야 할 것 아니겠습니까?”라는 멘트를 듣고는 했다. 절반 정도가 떨어져서 사망한다. 건설 현장에 종사하는 사람들이 대체적으로 성격은 조금 남다를지 몰라도 그 일을 해본 사람이라면 존경받아야 마땅하다는 것을 잘 알 거다. 아파트가 비싼 이유이기도 하다.
다만, 오늘 우리 가게 골목 맞은편 건설 현장에서 크레인 트럭이 도로 절반 이상을 점령했는데 자동차 한 대가 지나갈 수 있는 정도였다. 고깔로 골목을 갈라놓는 것까지는 상관이 없지만 우리 가게 앞에도 고깔 하나를 놓아둔 게 아닌가? 자동차가 다녀야 하니 오토바이를 거기 대지 말라는 무언의 의미인 거다. 그렇다면 내 오토바이를 어디다가 대라는 말인가? 그래서 공사장 방향으로 고깔을 발로 차 버렸다는 것을 비밀로 하지 않겠다. 존경은 존경이고 피해는 피해기 때문이다. 피해를 말로 표현하기에는 너무 많아서 생략하겠다. 코로나 19로 인한 매장 취식 제한이 21시에서 22시로 늘어났다. 사실 의미가 없다. 우리 가게의 매장 매출 절반 이상은 22시에서 02시가 가장 많기 때문이다. 매장 취식에 시간제한이 생기고 나서부터는 평균 매출 3분의 2 정도가 감소했다. 이 수치는 땡전 한 푼 못 벌어가는 것은 둘째치고 간신히 버텨내거나 적자라는 뜻이다. 국내에 돼지 열병이 터짐과 동시에 가게를 열었더니 머지않아 코로나 19가 온 것인데 매일 느끼는 거지만 ‘무슨 일을 하더라도 쉬운 일은 없다.’라는 거다. 나는 독자들에게 타인에게 피해가 가지 않는 자기 합리화는 오히려 시너지 효과를 불러온다고 말한다. ‘두 배나 오른 돼지고기 가격이지만 원래 이 가격이다.’, ‘배달 장사는 마이너스에 가깝지만 원래 홍보 차원에서 퀄리티 있게 하는 거다.’, ‘돈 못 벌어도 괜찮다. 뿌듯함으로 하는 거다.’ 등처럼 타인에게 피해가 가지 않는 자기 합리화를 유용하게 잘했더니 결정적으로 스트레스에서 해방될 수 있었고 무너질 이유가 없어질 수 있었다. 굳이 이 분야가 아니면 안 된다.라는 관념에 빠져서 허우적거릴 필요가 없다는 것을 알린다. 안 되면 다른 것을 하면 된다. 단지 그 관념을 내려놓고 더 최선을 다하는 것으로 매우 충분하다. 처음에는 아무리 주문이 밀려도 40분 안에는 음식을 전달해야 된다는 관념이 있었는데 내가 불구가 되거나 죽으면 그게 무슨 소용이라는 말인가? 물론, 바쁠 때는 마음이 급해지고 사경을 헤매게 된다. 이곳은 대한민국이고 늦게 가져다주면 좋을 것이 없다는 것을 알고 있다. 그렇지만 빠른 배달을 원하는 손님이 있다면 단칼에 주문을 받지 않거나 취소한다. 기다려주고 이해해주는 손님에게 더 정성을 담아 음식을 보내주는 게 이롭다는 것을 피부로 느꼈기 때문이다. 손님이 돈을 지불한다고 하더라도 팔지 말지는 내가 결정한다. 인간관계를 수평적으로 생각하지 않는 사람에게 굳이 수직적으로 맞추어 줄 필요가 없다. 내가 스트레스받지 않고 당당하게 무너지지 않아야만 그 어떤 분야든지 이어나갈 수가 있다. 또한 말과 글에는 긍정과 부정 두 가지의 힘이 있다. 생각은 같을지 몰라도 ‘사장님 배가 너무 고파서요. 조금만 빨리 가져다주실 수는 없을까요? 그렇다고 위험하게 오시라는 말은 아니에요. 추운데 고생이 많으세요.’와 ‘무조건 빠른 배달 요망’의 차이를 알아야 한다. 자신이 원하는 니즈를 상대방에게 가져오기 위해서는 먼저 배려하고 내어줘야 한다는 것은 기본 아니겠는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