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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임주형 Mar 17. 2021

배달원의 유서 - 42화 -

2021년 03월 17일 02:19

지난 화이트 데이 때 그녀에게 자그마한 꽃다발과 막대사탕 하나를 선물했다. 아주 어린 날에 그녀에게 제대로 된 선물을 해준 적이 없어서 사실 마음에 걸렸었다. 내가 바라는 것은 서로에게 존속되는 것이 아니라 지난날 미처 해주지 못한 것들을 해주는 거다. 요즘 그녀는 꿈을 위해 공부하고 어른답게 오후에는 아르바이트를 한다고 했다. 두 마리의 토끼를 잡기도 벅찰 텐데 소중한 시간에 끼어들 생각은 안중에도 없다. 그나저나 꽃 한 송이 가격이 오천 원이라는 사실을 듣고 조금 많이 놀랐다. 안개꽃을 한 가득 선물하고 싶었는데 그날따라 아무리 찾아봐도 구할 수 없었다. 우리는 멀지는 않지만 다른 지역에 살고 있고 서로가 제법 바쁜 편이라 그냥 이대로가 좋다기보다는 편하다. 연락이 오면 연락하고 가끔 볼 수 있으면 보고 결국 다른 남자의 품으로 가면 당연히 붙잡을 이유도 없을뿐더러 행복을 진심으로 기원하면 그뿐이다. 더군다나 그녀가 연락하고 지내는 남자들 중에 내가 한 사람일 수도 있다. 나는 눈치가 없는 편이 아니라서 어떠한 순간에도 알면서 모르는 척을 잘한다. 사실 요즘 ‘배달원의 유서’를 빼먹은 이유가 글을 써야 할 시간에 그녀와 연락을 주고받아서다. 두 가지 일을 한 번에 못하기 때문에 거의 다가 반쯤 쓰다 중단되어 있다. 또 며칠은 연락이 뜸할 것 같은 느낌이 든다. 아무튼 얼마 전 기존에 타던 오토바이 엔진이 퍼졌는데 엔진을 고치려면 3일 정도가 소요된다고 해서 새로 한 대 샀다. 그 시간을 기다릴 수 없기 때문이다. 안전을 기원하는 마음에 고사도 지냈다. 2월 27일에 쓴 ‘배달원의 유서’를 보면 꿈을 꿨다고 적혀 있다. 자주 다니던 도로에서 배달원이 죽어 갔고 내 차례를 기다리는 것 같았다.라는 내용이다. 말도 안 되지만 내 오토바이가 마음의 준비를 하라고 암시를 해주는 것이 아니었을까? 하는 생각을 했다. 엔진에서 들려오는 소리가 심해지자 마지막 배달 두 건 중 한 건은 손님에게 전화를 걸어 왠지 모르게 곧 오토바이 엔진이 퍼질 것 같다며 상황을 설명하고 주문을 취소했다. 장거리였기 때문인데 아니나 다를까 가까운 거리의 마지막 배달을 완료하고 돌아오는 길, 가게에 거의 다 와갈 쯤에 엔진이 멈췄다. 멈추는 순간 느낄 수 있었고 목돈이 들어가겠다.라는 생각보다는 오토바이에게 감사하다는 마음만 감돌았다. 지난 일 년 간, 사람으로 비유하자면 폐가 터지도록 우리 가게를 위해 달려줬고 큰 사고 없이 지금의 나를 있게 해 줬기 때문이다. 하루에 적게는 200km 많게는 400km를 거의 쉬지 않고 거의 매일 달려줬던 오토바이에게 끝으로 감사함을 표한다. 3월의 이야기가 많이 없다. 그러나 말이 필요 없는 계절 아니겠는가? 예쁜 꽃들이 아주 많이 피고 또 지고 향기가 나고 자연의 힘만으로 마음껏 설렐 수 있는 계절, 봄이 왔다. 그렇지만 운전할 때는 정신을 바짝 차리기를 바란다. 오늘만 해도 신호를 기다리던 차량이 초록 불로 바뀌었음에도 멍 때리며 출발하지 못한 경우를 수없이 봤다. 평소보다 다른 차를 더 의심하고 안전거리를 조금 더 유지하고 경계를 잘했으면 좋겠다. 또 휴일에는 낮은 산이라도 등산을 가서 나무와 꽃, 구름과 햇살, 곤충의 아름다움과 새소리를 느껴봤으면 좋겠다. 코로나 19 바이러스로 인해 매장 손님들의 발길이 약속이라도 한 듯 뚝 끊겼지만 어쨌든 봄이 왔고 내 마음이 감사하고 설레지 않는가? 가끔은 알 수 없는 것을 억지로 알아내려고 하는 것보다는 될 대로 되라며 모르는 그대로 넘어가는 것이 마음 건강에 이로울 수도 있다. 밥 잘 챙겨 먹고 커피도 한 잔 하며 다음에 읽을 책은 어떤 책이 좋을지에 대해 고민해 볼 수 있도록 하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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