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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임주형 Apr 02. 2021

배달원의 유서 - 47화 -

2021년 04월 02일 02:42

처음으로 시간이 멈추었으면 좋겠다는 생각이 들었던 순간은 스물한 살, 군 시절 첫 휴가 때 부산 태종대 앞바다에서 어머니를 두 손으로 번쩍 들어 올리며 반려견과 함께 누나가 사진을 찍어줬던 순간이다. ‘아, 이것이 소중함이구나. 소중함을 잊고 살았던 게 아니라 애초부터 몰랐던 거구나.’ 그 후로 9년이라는 시간이 흘렀다. 까맣던 우리 집 반려견 콩이는 얼굴부터 온 몸 구석구석 흰털이 많이도 자랐고 나이에 비해 흰 머리칼보다 검은 머리칼이 유난히도 많았던 어머니는 흰 머리칼이 더 많이 자라 이제는 내가 염색을 해주지 않으면 머지않아 백발이 될 것처럼 늙으셨다. 논산훈련소에 입대하기 전날 아버지께 큰절을 올렸는데 “군대에 입대하고 난 후로 부터는 시간이 기하 급속도로 갈 거다.”라는 말을 해주셨던 기억이 난다. 그 말을 작년쯤 이해했다. 지금껏 아무것도 자각하지 못하고 남들과 다름없이 바쁘게만 살아왔던 것 같다. 목이 말라 냉장고에 마실 것을 가지로 가는 길에 기력이 예전 같지는 않지만 아직도 살아 있는 콩이와 어머니의 잠든 숨소리를 듣고 나서야 다시 생각났다. ‘아, 시간이 멈출 수는 없는 거겠지.’ 그리고는 콩이를 한참 쓰다듬었다. 2021년 01월 01일부터 ‘배달원의 유서’를 쓰기 시작했지만 벌써 4월이다. 세상에서 가장 신비롭고 알면서도 믿을 수 없는 것은 시공간의 흐름일 거다. 2019년부터 장사를 본격적으로 시작하면서 배달 약속 시간을 지키기 위해 매일 시간에 쫓기다 보니 내가 느끼기에 시간이 몇 배는 빨리 흘렀다. 내 손목에 차고 있는 손목시계가 아닌 배달 앱에 떠있는 다음 배송지의 남은 시간이 내 기준이 된 거다. 《삶의 향기도 배달해 드립니다》에 수록된 ‘무엇 하나라도 점을 찍듯 기억에 남는 하루를 살라.’라는 글귀를 독자들에게 해놓고서는 나 자신도 그것을 쉽게 지키지 못했다. 유교 사상의 덕목 중에 하나인 효도는 부모님이 자랑할 수 있는 자식이 되는 거라고 알고 있지만 어느새 어머니께 잔소리만 늘어놓는 아들이 되어서 어머니를 괴롭게 한 것만 같다는 생각을 종종 피할 수 없다. 잔소리는 우리 가게를 무너지지 않게 그리고 나아갈 수 있게 해 보려는 태도에서 왔을 거다. 어머니와 나는 아무래도 세대 차이가 있고 현시대 자체가 야박하고 각박하기 때문이다. 즉, 시대의 흐름을 간파하지 못하면 결국 장사는 망하게 된다. 나는 오래전에 유명했던 식당이 망한 이유를 시대의 흐름을 간파하지 못하고 아무런 변화를 이륙하지 못했기 때문이라 확신한다. 또한 요즘 손님을 대할 때는 오래전처럼 감성을 기반으로 둔 이성적 사고로 대할 것이 아니라 이성을 기반으로 둔 감성적 사고로 손님에게 다가가야 한다. 내가 원하는 니즈를 손님께 어필할 것이 아니라 손님이 원하는 니즈를 정확하게 주고 난 다음에 대화를 이어가야 한다. 다시 말하자면 인간이 보다 이기적이게 변해간다는 말이다. 내 탓은 어디에도 없고 남 탓만 하는 세상이기 때문에 남 탓할 때에 그 남이 되지 않기 위해 조금의 노력을 더 기울여야 한다. 장사뿐만이 아니라 현시대 인간관계의 접목될 단상이다. 또한, 한 가지의 방법을 가진 사람이 두 가지의 방법을 가진 사람에게 패 한다는 것은 21세기의 결정적 원리 같은 셈이다. 그러니 여러 가지를 섬세하게 잘해야 중점으로 두고 있는 분야를 지켜낼 수 있는 능력을 때때로 발휘할 수 있다. 그래서 내가 어머니께 종종 잔소리를 늘어놓는 이유인 거다. 그렇지 않아도 내 성향 자체가 아날로그 한 사람인데 나라도 스마트해지지 않는다면 이미 가까운 미래의 답이 나왔다고 볼 수 있다. 내 바람이 있다면 망할 때 망하더라도 돼지 열병과 코로나 19 사태가 온전히 영향이 되지 않을 시기에 망하고 싶다. 몇 년간 지속되니 사실 이 고통은 말할 수 없이 괴롭다. 버티고 싶다면 먼 미래를 볼 것이 아니라 내일을 준비하고 분석하는 것뿐이다. 오늘은 어찌 되었든 지나갔지 않는가? 그것에 감사하고 만족하며 내일이 오면 좋은 것만 남기고 오늘을 과감하게 잊어야 한다. ‘태정태세문단세예성연중인명선광인효현숙경영정순헌철고순’ 나라를 다스리던 왕들도 결국은 다 죽었다. 그러니 불행감 따위에 삶을 소비하지 마라. 그냥 무조건 즐겨라. 내일은 비가 예보되었지만 나는 그 비를 신나게 맞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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