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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임주형 Apr 07. 2021

배달원의 유서 - 48화 -

2021년 04월 07일 01:27

신나게 비를 맞겠다고 다짐을 했지만 다음 날 주말은 폭우가 끊임없이 쏟아졌다. 시야가 흐릴 정도로 많이 쏟아졌지만 그래도 바빴기에 왕복 2차선 도로를 저속보다는 정속으로 달리고 있을 때였다. 뒤에서 클락션 소리가 마구 울려댔다. 새로 산지 얼마 안 된 까만색 지프 차량이었다. 내 오토바이 꽁무니까지 바짝 조여 오길래 너무 놀란 나머지 반대편 차선에서 차량이 오지 않는 것을 확인한 후 역주행으로 비켜줬다. 그리고 머지않아 어차피 그 차량과 내가 신호에 걸리려고 했다. 그리고는 옆길로 빠져나가면서 차량의 창문 안쪽을 한 번 확인했다. 어떤 사람일까? 너무 궁금했던 거다. 그랬더니 그 차주는 차량으로 보도블록까지 나를 몰아세우더니 창문을 열었다. 나도 길이 막혔으니 멈췄다. 콧수염과 턱수염이 짙었고 인상을 쓰며 나를 바라봤다. 그리고는 내가 먼저 말을 꺼냈다. “저기요. 혹시 클락션을 왜 울리신 건가요?” 그랬더니 “퀵 하시는 분 맞아요? 퀵을 하시는데 왜 이렇게 늦게 다녀요? 나 퀵 사장이에요. 저도 차로 배달하고 있는데 그렇게 늦게 가면 남한테 피해 간다고요.”라고 앞뒤가 하나도 맞지 않는 말을 늘어놓는 게 아닌가? 그래서 “퀵 사장을 하시는데 저를 모르신다고요? 저를요? 아무튼 진짜 너무 하시네요. 빗길이니까 천천히 가죠. 일단 비켜보세요. 아무래도 제가 더 바쁜 것 같네요. 수고하세요.”라고 더는 다툼을 만들지 않고 배달을 이어갔다. 우선, 차주는 퀵 사장이 아닌 게 확실하다. 설령, 나를 모른다고 해도 폭우가 쏟아지는 날 동료들은 맨몸으로 비를 맞으며 업소의 콜을 빼고 있을 텐데 심지어 차로 배달을 하면서 오토바이 배달원의 뒤를 쫓아 클락션을 울렸다? 인간이 아니고서야 말이 안 되는 거다. 또한 ‘퀵’이라는 단어는 10년 전에 쓰던 단어고 요즘에는 ‘콜’이라는 단어가 주로 쓰인다. 그렇다면 뭐하는 사람일까? 두 가지로 예측해 볼 수 있다. 첫 번째는 배달 장사를 시작한 지 얼마 안 된 음식점 사장님일 수가 있다. 오토바이는 생에 단 한 번도 타보지 않았을 테고 폭우가 와서 배달이 밀리자 본인이 직접 나섰을 경우다. 두 번째는 쿠팡 이츠 배달 파트너일 경우인데 나는 두 번째라고 생각한다. 배달원끼리는 암묵적인 예절이 있다. 단언컨대 저 차주는 아무것도 모르는 생초보다. 물론, 나도 도로에서만큼은 보복을 당했을 때 무조건 짚고 넘어가는 성향의 소유자지만 성격을 드러내지 않았던 결정적인 이유가 차주가 전자든 후자든 초보라는 것을 직감했고 초보 배달원의 조급함을 매우 잘 알기 때문이었다. 시간에 쫓기며 멘털이 와장창 깨지는 그 순간이었을 거다. 조급해지니까 기분이 난폭해지고 모든 차량과 타인이 미워 보이고 난폭운전과 난폭한 태도로 타인을 대하게 대니까 말이다. ‘쿠팡 이츠 배달 파트너’라면 차량의 번호판과 인상착의로 주변 업소 사장님 몇 명에게만 물어봐도 바로 알아볼 수 있지만 내버려 뒀다. 언젠가 만나가 될 테니 말이다. 그리고 다음 날 쿠팡 이츠 영업사원이 우리 가게를 찾아왔는데 인사와 동시에 한 마디 했다. “쿠팡 이츠 배달 파트너들의 에티켓이 활성화되면 그때 등록하겠습니다. 빠른 배달요? 그 말은 로봇이나 드론이 배달할 수 있는 시대에서나 할 수 있는 말 아닌가요? 당신네들 덕분에 배달 앱들도 빠른 배달에 눈이 돌아가고 있잖아요. 돌아가세요.” 내 기준일지는 모르겠지만 ‘빠른 배달’은 있을 수 없는 일이다. 오늘도 점심에 빵집에서 주문이 들어왔었는데 가져다주자마자 “왜 이렇게 늦게 왔어요. 다 식은 거 아닌가?”라며 손님이 투덜거리는 게 아닌가? 그 말을 듣고 바로 한 마디 했다. "같은 장사하는 사람끼리 할 말이 따로 있지 뭐요? 왜 이렇게 늦게 왔어요? 와, 말 안 하려고 했는데 내가 이 집에서 빵만 100만 원 돈 넘게 사 먹었어요. 그거 아세요? 배달 앱 공지 사항에 빠른 배달을 선호하시는 손님은 뒤로 가기를 눌러달라는 문구 봤습니까? 안 봤습니까? 식었으면 전액 환불해줄게요.” 그러나 중요한 것은 그렇게 큰소리쳤는데 세 그릇이 가야 할 국밥이 실수로 두 그릇밖에 가지 않았던 거다. 당황했지만 한 마디 더 했다. “보세요. 우리 집이 이렇게 실수가 많은 집입니다. 현금으로 돈 다 돌려줄 테니 두 그릇으로 알아서 하세요.”라고 말하고는 돌아섰다. 내가 과민 반응한 것도 있지만 할 말과 하지 말아야 할 말 사이에서 무조건 숙여야 하는 것은 옳지 않다고 생각한다. 물론, 내가 먼저 고개를 숙이고 손님을 납득시켜야 할 일이 더 많겠지만 이러한 경우는 예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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