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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임주형 Apr 24. 2021

배달원의 유서 - 49화 -

2021년 04월 23일 23:09

얼마 전 내 글을 읽어 주시던 작가님이 최근 콘텐츠에 댓글을 달았다. 아무래도 제목이 ‘배달원의 유서’다 보니 한동안 글이 업데이트되지 않아서 일거다. 개인적인 일기와 비슷한 이 공간에서 내 글을 읽어주는 사람이 있다는 것에 큰 감동을 했다. 그 작가님은 항암 치료를 하며 병동에서의 생활을 다룰 만큼 대단한 분인데 죽음에 대한 섬세함이 아마도 남과는 달라서였을 거다. 잘 이겨내는 모습이 정말 멋있는 사람. 최근 들어서 내 뇌가 쉬고 싶어 하는 느낌을 받았다. 그래서 창작 활동을 중단했었다. 잠재적으로 스트레스를 많이 받아서인지는 모르겠다. 퇴근 후 집으로 가면 아주 잠시 만들어진 창작품을 감상할 뿐이다. 그동안 이런저런 일들이 많았다. 봄철이라 나른해진 것 때문인지 교통사고가 정말 많았다. 얼마 전 늦은 밤에는 쓰러진 사람과 오토바이를 발견했는데 헬멧은 저 멀리 날아가 있고 몸이 굳은 채로 코피만 줄줄 흘리고 있는 상황이었다. H사의 대기업 점퍼를 입고 있었고 얼핏 보기로는 곧 퇴직을 바라보고 있을 나이였다. 먼저 발견한 배달원이 구급차를 불렀고 구급차가 도착한 것을 보고는 가던 배달을 마저 갔다. 그다음 날 낮에는 전날 사고의 500m 지점에서 젊은 배달원이 차량과 사고가 났는지 목부터 깁스를 두르고 구급차에 실리고 있었다. 이틀 내내 마음이 좋지 않았는데 다음 날인지 다 다음 날인지 비가 와서 더 조심해야겠다는 생각을 하고 있었을 때였다. 그때 마침 가게 앞 코너에 불법주차를 하고 내리는 사람을 발견하고는 “아저씨 거기 주차하면 큰 도로에서 골목길로 진입하는 차량의 시야와 골목길에서 큰 도로로 나가는 차량의 시야를 가리기 때문에 사고의 원인이 됩니다. 다른 곳에 주차해주세요.”라고 쏟아지는 비를 맞으며 말했다. 그랬더니 적어도 아버지뻘쯤 돼 보이는 차주가 차에서 내리더니 다짜고짜 개 xx야 씨 xx놈아 라며 욕부터 내리는 비만큼 쏟아부었다. 나는 참지 않았다. 바로 다가가서 내 머리로 그 차주에 머리를 쿵쿵 박으며 말했다. “위법은 위법이고 그따위로 살면 머지않아 주변에 아무도 남지 않게 된다. 정신 똑바로 차리고 살아라. 진짜 한 방 주려다가 참는다. 보아하니 우리 가게에 식사하러 온 것 같은데 그냥 당장 꺼져라.”라며 존대도 하지 않고서 응징했다. 나는 그러한 어른은 취급을 하지 않는다. 아니나 다를까 그다음 날 낮에 다른 차량이 그 코너에 주차를 하는 순간 오토바이와 사고가 났다. 우리 가게 앞이고 내가 이 길을 가장 많이 다니기 때문에 알 수 있는 거다. 어쩔 수 없이 차량 과실이 많을 테고 죄 없는 배달원만 다치고 괴로워졌다. 아무튼 결론은 봄철 운전 시 정신을 몇 배로 바짝 차려라는 말이다. 

그리고 가장 최근 주말 낮에 배달 주문이 8건이 밀려있는 상황에서 공사현장 도로를 지나다가 형틀 목수가 사용하는 단 하나의 핀을 밟고 타이어가 찢어지면서 큰 사고로 이어질 뻔했다. 초고도의 집중을 해야 할 만큼 극도로 바빴는데 파르르르 하는 소리와 함께 타이어의 바람이 모두 빠지고 말았다. 주말도 주말 나름인데 토요일이 아닌 일요일이었다. 오토바이 센터도 모두 문을 닫았고 정해진 배달 약속 시간이 흘러가고 있었다. 우선 오토바이를 세워두고 배달통에 실려 있던 음식을 들고 죽어라 뛰었다. 뛰어서 두 가구에게 전해주고는 나머지 6건은 배달 대행 동료 기사를 호출했다. 배달 앱 중지를 했고 생각을 잠시 했다. 해답이 나왔다. 친한 야식 배달 사장님께 전화를 걸어 오토바이 좀 빌려달라고 말했더니 어서 빌려가라고 대답해줬다. 다행이었다. 안 된다고 했으면 가게 문을 닫고 조기 퇴근할 생각이었으니 말이다. 빌린 오토바이로 다음 날 점심까지 배달하고는 오토바이를 수리받고 공사현장 소장님에게 수리비도 청구받았다. 긍정적으로 받아들였다. 더 조심하고 살피고 저속 운전을 해야겠다는 경각심을 얻었으니 말이다. 올 초에 예언했듯 요즘 매장에서의 취식 22시 제한이 다시 걸려있는 상태지만 배달 주문도 그다지 늘지 않았다. 오히려 조금 줄었다. 소상공인이 된다는 게 어려운 것을 떠나 힘든 일이라는 것을 새삼 느낀다. 5월에 있을 종합소득세 신고 준비를 하면서 문득 드는 생각이 “아니 내가 소득이 없는데 종합소득세 신고를 하는 게 맞는 일인가?”였다. 앞으로는 소상공인이 확연히 줄어갈 거다. 그에 따른 대책이 필요 한데 소상공인이 나라 자금의 대책일 테니 방법이 없다고 봐야 한다. 지금껏 당당하게 달려왔으니 우선 조금은 더 버터 볼 계획이다. 물가가 고깃값부터 두 배 가량 올랐으니 생각을 하지 않는 게 나로서는 현명한 해답이다. 가게가 조용하니 오늘은 가게에서 ‘배달원의 유서’를 썼다. 집으로 가면 아무 생각 없이 자버릴 것 같아서다. 다만, 아직은 조금 더 마음을 추슬러야 할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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