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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임주형 May 21. 2021

배달원의 유서 - 52화 -

2021년 05월 21일 01:19

  매장에서의 취식 제한이 계속해서 연장이 되고 있다. 주로 술을 좋아하는 사람들이 집 밖에서 음식을 먹는데 국밥집 같은 경우는 보통 술자리를 하더라도 1차보다는 2차 이후로 찾게 된다. 앞서 다루었듯 우리 가게의 매장 매출 절반 이상은 밤 10시 이후에 만들어진다는 결정적인 이유다. 그럼 뭐하나. 밤 9시 이후로 영업을 하지 못하는데 말이다. 주로 술꾼들이 매출을 만들어주는데 이러한 손님들은 술은 마셔야 하겠고 대체로 밥집이 아닌 고깃집이나 횟집, 아니면 술집으로 가서 밤 9시 이전까지 빠른 템포로 술을 마시고 해산하는 분위기가 오래 지속됐다. 매장 매출은 더는 떨어질 단계가 없는 상황까지 이르렀다. 매출이 없다고 봐도 과언이 아닐 정도다. 배달 매출이 현상 유지를 시켜주고는 있지만 큰 단점으로 마진율이 거의 없다. 폐업하는 점포가 더 증가하고 있다는 것을 나날이 느낀다. 이제는 버티라는 말을 쉽게 못 하겠다. 가망이 없으면 빨리 접고 다른 삶을 연구해야 한다. 적자라는 것은 늪지대와 같아서 빨리 벗어나지 못하면 더 깊이 잠기게 되고 대미지가 증폭되기 때문이다. 문을 닫았다가 다시 여는 방법도 좋은 방법이 될 수 있을 것 같다.     


  요즘 쉬지 않고 비가 쏟아지고 있다. 저서 《삶의 향기도 배달해 드립니다》 중에 비 오는 날 신발이 젖는 것을 두려워 말고 마냥 걸으면 복잡한 생각을 씻겨줄 거라는 내용을 담았었다. 그 말이 맞는 말이다. 그간 다루고 싶은 소재가 제법 많았는데도 전부 다 씻겨 나갔다. 그리고 몸이 고단해서 데스크톱 앞에 앉아 키보드 자판에 손을 올리는 게 쉬운 일이 아니었다. 비가 언제까지 이어질지 모르기에 오늘은 눈에 힘을 주고 앉았다. 아무튼, 머리가 복잡하면 우산을 쓰지 말고 저렴한 우비를 입고 마치 비를 피하지 못한 사람인 것처럼 1시간 이내 정도 비를 쫄딱 맞아라. 폭우일수록 좋다. 어지간한 잡념은 진짜 다 씻겨 나간다. 저렴한 액션 캠을 알아보고 있다. 오토바이에 장착해서 언젠가 비 오는 날의 풍경 영상을 담아볼 수 있으면 담아보겠다.     


  작은 소화기와 비상용 망치를 구입했다. 내 죽음이 두려워서 브런치에 작가 등록을 하고 《배달원의 유서》를 쓰기 시작했지만 하루 평균 적게는 200km에서 많게는 400km를 도로에서 지내다 보니 사고 현장과 장면을 많이 목격하게 됐고 관여하게 됐다. 사실 다루지 못한 이야기도 제법 있다. 다친 사람을 자주 대했더니 조금은 긴박한 상황에서도 침착하고 담담하게 됐다. 며칠 전에는 4초 이상 미끄러지는 브레이크 소리에 이끌려 소리를 따라 가봤다. 택시 한 대가 가드레일을 뚫고 반대편 차선을 넘어 사람들이 다니는 인도 보도블록까지 걸쳐 있었다. 주변에 많은 사람들이 모여들고 있었다. 갔더니 택시 기사님의 상태를 살펴야 하는데 운전석 문 손잡이가 파손되어 문을 열 수 없었고 남자 3명이서 힘으로 문을 열어보려 안간힘을 다해도 열 수 없었다. 나는 밖에서 열지 못하면 안에서 열면 된다는 판단을 했고 먼저 파손된 유리창을 퉁 쳐서 조심해서 깨트리고는 창문 안으로 손을 넣어 운전석 문을 열었고 운전석 시트를 뒤로 젖혀서 운전자의 상태를 살폈다. 다행히도 숨을 쉬고 있었고 외상은 없어 보였으며 곤히 잠들어 있는 모습이었다. 나이는 70대 남자로 보였다. 기도 확보가 가장 중요하다는 것을 몸소 알고 있기 때문에 기도확보부터 했다. 그리고는 구급차가 시야에 들어오자 가던 배달을 마저 갔다. 모든 일이 1~2분 이내에 이루어졌다. 여기서 내가 말하고 싶은 것은 사고에 대한 게 아니다. 배달원을 너무 미워하지 말라는 말을 하고 싶다. 저서에도 다루었지만 까부는 배달원은 아마도 군대도 다녀오지 않은 철들지 못한 어린 청년일 거다. 나이가 제법 있는 배달원은 어쩔 수 없이 위법을 하더라도 피해 가지 않는 최선의 이타심을 가지고 일에 임한다. 적어도, 비가 쏟아지는 날에도 책임감을 가지고 일에 임하는 배달원에 대해서는 그 노고를 인정해주기를 바랄 뿐이다. 개인적인 의견이지만 내가 목격한 수많은 사고 중에 최초 목격자 겸 신고자의 대다수가 배달원이었다는 것을 알린다. 일반 자동차 운전자와는 시야의 폭 자체가 다르기 때문에 사각지대에 혼자 쓰러져 있는 환자까지도 발견하는 경우가 많았다. 또한 주소와 지리에 능함으로 설명 전달에서 시간을 앞당길 수 있었다. 내가 신고를 했을 때도 다른 배달원이 신고를 했을 때도 말이다. 이쯤 되니 골든아워를 위해서라도 소화기와 비상용 망치를 구비하게 된 거다. 유리창이 깨져있지 않았더라면 만약 차량에서 불이 났더라면 단언컨대 위험했을 수도 있기 때문이다. 횡단보도를 뚫고 차도를 건너 반대편 횡단보도를 건너간 김여사 할머니 이야기까지 다루려 했지만 다음번에 다루도록 하고 생존 보고를 마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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