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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임주형 Jun 06. 2021

배달원의 유서 - 53화 -

2021 06월 06일 02:45

  일단 데스크톱 앞에 앉았다. 정신 상태가 온화하지 못하고 붕 떠있고 산만하다. 요즘 배달 주문이 많아서 그런 것 같다. 몸이든 마음이든 회복이 늦어지고 있다. 매장 매출은 거의 없다고 봐도 과언이 아닐 정도로 하락했고 배달 매출은 1.5배가량 상승했다. 며칠 전에는 몇 분 사이에 배달 주문이 정확히 14건까지 밀렸다. 배달 대행 기사님을 메인으로 운영하는 가게가 아닌 내가 직접 다 하는 가게이기 때문에 굉장히 난감하고 난해했다. 끊임없이 한계를 만났고 넘어서려 발버둥 쳤고 가능한 한 위기를 기회로 바꿔보려 애를 썼다. 어쨌든 그 하루가 지나갔고 비슷한 하루가 이어지고 있다. 체력이 매일 바닥이 나게 되면서 운동과 글쓰기를 할 수가 없었다. 나를 추스를 수 있는 유일한 것들인데 말이다. 지금도 붕 떠있다. 아무 말이라도 써보려고 찬물로 샤워를 하고 머리칼이 아직 덜 마른 상태지만 키보드에 손을 올리고 어떤 이야기를 들려줄지 기억 창고를 살피는 중이다.     

  요즘 막무가내로 부재중인 고객이 상당수 늘었다. 내가 유일하게 불친절할 때가 있다면 두 가지의 경우인데 한 가지는 독촉 전화고 다음 한 가지는 막무가내 부재중이다. 즉, 잠수다. 주소를 잘못 입력하는 고객은 이제 대수롭지도 않지만 잠수는 정말 속상한 일이다. 만약 현명하게 대처하는 방안이 있다면 문 앞에 두고 문자를 보내거나 공동현관이 있는 아파트라면 경비원에게 호출하여 상황을 설명하고 들어가도 된다. 또한 원룸이라면 공동현관 앞에 두고 문자를 남겨놔도 되겠지. 또 후불 결제면 나중에 계좌 이체로 받으면 된다. 그러나 나는 그 방법을 잘 알면서도 잠수 타는 고객에게는 음식을 팔지 않는다. 회수해 가게로 들고 와서 내가 먹거나, 어머니가 먹거나 실고 다니다가 단골에게 줘 버린다. 이유가 있다면 자신의 시간이 소중한 만큼 타인의 시간 또한 소중하다는 것을 모르는 사람일뿐더러 배달원을 무시하는 행위라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예전에도 말한 것 같지만 인간 취급을 하지 않는다고 말했다. 화장실에서 변을 봤는지 샤워를 했는지 잠이 들었는지 상관없다. 개인의 인성인 거다. 한참 있다가 전화가 걸려 와도 단호하게 말한다. “손님, 저는 10분 이상 기다렸고 전화와 문자까지 드렸습니다. 주문은 취소해 드릴 것이고 이러한 행동은 굉장히 잘못된 행동입니다. 결정적으로 저는 지체된 시간을 줄이기 위해 남은 배달 주문에 대하여 신호 위반을 해야만 합니다. 저희 가게에 다시 주문을 해주실지 모르겠으나 반드시 주의해주시길 바랍니다. 제 기분도 손님 기분도 손해를 봤습니다. 원인이 무엇인지 곰곰이 생각해주셨으면 좋겠습니다.”라고 말이다. 내가 시간에 쫓기면서도 10분가량 기다려보는 이유가 이러한 손님은 주소 또한 잘못 입력할 확률이 높은데 두고 가더라도 주인 없는 음식이 되고 나아가 결정적인 내 실수와 잘못으로 이어지기 때문이다. 되레 음식이 없다고 우겨대면 나는 할 말이 없다.     

  그렇지만 내가 버텨낼 수 있었던 이유 또한 좋은 고객 덕분이다. 위와 같이 서로를 괴롭게 하는 고객이 솔직히 많이 늘어나는 추세지만 소수에 가깝고 아직은 마음 따듯하고 감명 깊은 고객이 더 많다. 얼마 전 어떤 고객은 배달이 늦어졌음에도 자그마한 간식거리를 건네줬는데 돌아서면서도 감사함을 잊지 못했고 나무젓가락을 포장하고 있는 종이 포장 겉면에 귀여운 그림까지 그려서 사진 리뷰를 남겨줬는데 너무 고맙고 감사할 따름이었다. 우리가 알아야 할 ‘배려’라는 것은 ‘이유’가 없는 것이고 ‘돌려받는’ 것도 아니고 ‘조건’이 있는 것도 아니다. 솔선수범으로 타인에게 영향을 주며 전파하는 것이며 비로소 기억의 향기를 남기는 것이다. 내 모습을 어떻게 생각하고 기억하는지에 대한 자유는 타인 어느 누구에게나 있다. 악취를 남길 것인지 향기를 남길 것인지 자각해 볼 수 있다면 허락될 미래의 자신에게 많은 변화가 있을 것으로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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