배달원의 유서 - 57화 -
2021년 08월 04일 01:16
뭘 할 시간이 없다. 배달 주문이 비수기인 여름에 갑자기 과도하게 늘었다. 아무것도 할 수가 없다. 책을 읽을 시간도 없을뿐더러 퇴근하고 집에 와서 잠깐이나마 글을 쓰기 전에 잠들어버리고 있다. 배달 주문이 늘어서 좋다고 볼 수 없는 게 마진율이 거의 없다고 봐야 하기 때문이다. 나는 돈을 좇는 사람이 아닌데도 매장에서의 매출이 받쳐주지 않는다면 이 싸움은 매우 힘든 싸움이라는 생각이 든다. 코로나 사태가 너무 길어지고 있다. 결론이 나왔다. “방법이 없다.” 희망의 말과 위로의 말을 무수히 해왔지만 방법이 없다. 답이 없다. 배달 장사를 하지 않는 상인들이 우리 가게를 보고 이 시국에 돈을 쓸어 담겠거니 생각하겠지만 적어도 나는 배달 장사로 돈을 만드는 상인이 아니므로 똑같은 처지에 있다고 말하고 싶다. 달리 생각하면 어머니와 내가 과도한 섬세함으로 만들어낸 성과라고 볼 수 있겠지만 어쨌든 마진율이 없기 때문에 퀄리티가 살아난 거다. “고춧가루 한 톨이 장사를 좌우하고, 한 번의 실수는 용납이 안 된다.” 이 장사 철학은 아직도 변함이 없다. 사람을 대하는 모든 업종은 섬세함의 차이가 성공과 실패의 차이로 나뉘기 때문이다. 대충 하는 만큼 망할 확률이 높고, 나를 괴롭히는 만큼 성공할 확률이 높아진다. 그래서 나는 소량을 고집한다. 소량을 정성껏 만들어 퀄리티를 높이고 재료가 소진되면 문을 닫는다. 미래에 내가 후회를 한다면 대충 어떠한 후회를 할지 조금은 예상되지만 어머니 인건비만 나오면 만족이 된다. 얼마 전 브런치에서 업로드 좀 해라고 알림이 왔다. 얼마나 글을 안 썼으면 그런 알림이 왔나 싶은 생각이 들어 며칠 동안 마음이 편하지 않았다. 요즘 들어 내가 글을 많이 못 쓰는 필자구나라는 생각이 종종 든다. 한마디로 필력이 약한 필자 말이다. 오늘 업로드하면 57화가 되는데 흥행하지 못했고 인스타그램에서의 반응도 현저히 줄어들었다. 아주 예전에는 자칫하면 자만할 정도로 반응이 좋았는데 왜 이렇게 된 건지 생각을 조금 해봤다. ‘여유’다. 2년 가까이 손님과의 배달 예상 도착 시간에 쫓겼다. 그래, 1초가 너무 귀했다. 1분 때문에 엘리베이터 내려오는 시간을 단축하고자 아파트 꼭대기 층을 전속력으로 뛰어올랐다. 좋은 글감들이 떠올라도 스마트폰 메모장에 남겨두지 못했고 조금은 신경질적으로 변했다. 여유가 없으면 마음이 급해지는 건 당연한 거다. 따라서 당연히 섬세할 수가 없다. 즉 독자를 배려할 수가 없어진다는 말이다. 단 3줄짜리 짧은 글귀를 쓰더라도 썼다 지웠다. 오랜 시간에 걸쳐 끊임없는 수정을 해야만 글이 완벽해지는데 그럴 수가 없었던 거다. 그동안 데스크톱에 앉게 되면 들려주고 싶은 이야기가 정말 많았는데도 지금은 기억이 안 난다. 아, 8월이다. 1월 1일에 시작해서 아메리카노가 꽁꽁 얼었다며 사진을 첨부하기도 했는데 지금은 너무 더워서 숨을 못 쉬겠다. 여름 겨울은 아무래도 계절이 바뀔 때마다 적응하기가 어렵다. 특히나 야외에서 업무를 보는 사람이라면 더더욱 그럴 거다. 지금 쯤 다음 책을 준비해야 할 시즌인데 온전히 내려놓지 않고서는 본업에 집중할 수 없는 단계에 이르렀기 때문에 무기한적으로 미루기로 했다. 동화, 미스터리 소설, 에세이 다 써보고 싶었는데 언젠가 그럴 시간이 허락될 거라 믿고 있다. 두 번째 저서가 인터넷에서 베스트셀러에 아주 잠깐 올랐었지만 그래도 서점 베스트셀러 칸에 오를 수 있는 작가가 한 번쯤은 돼보고 싶다. 때문에 아무리 바빠도 내가 크게 다치거나 죽으면 안 된다. 브런치 알고리즘을 공부하지 않아서 그런지 몰라도 구독자가 그리 많지는 않지만 실용적이지도 않고 그리 재밌지도 않은 이 내용을 읽어주는 독자들에게 감사하다는 말을 전하고 싶다. 기회가 되면 흥미진진한 내용을 가지고 돌아올 것을 약속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