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1년 01월 05일 01:26 - 5화 -
고기 업체가 너무 늦게 도착했다. 재고 부족으로 10시쯤 조기 마감했다. 요즘은 겨울철이라 국밥 배달이 많이 늘었다. 솔직히 말하자면 체력적으로 부담이 큰 편이다. 주로 배달 앱을 통해서 주문이 들어오는데 배달 앱에 등록된 주소를 잘 확인해서 주문해야 한다. 직장에서 시켰는데 집으로 배달되거나 지인의 집으로 배달될 수도 있다. 바쁘지 않은 시간 때에 이런 일이 발생하면 아무리 먼 거리라도 다시 해주는 편이다. 반면 바쁠 때 이런 일이 발생하면 모든 것이 엉망진창이 되고 하루의 기분이 통째로 날아간다. 항상 주문 전에는 현 위치의 주소가 배달 앱에 등록된 주소와 동일한 지부터 확인했으면 좋겠다. 일찍 집으로 와서는 황정민 주연의 ‘남자가 사랑할 때’라는 영화를 다시 봤다. 시한부 선고를 받은 황정민의 이야기다. 죽음을 앞둔 황정민이 조금은 부러웠다. 그를 사랑해주는 배우 한혜진이 있어서다. 황정민은 영화에서 진짜 죽는다. 영화가 끝날 때 한혜진이 마을버스 기사인 황정민의 아버지 버스를 타고 서럽게 홀로 우는데 아버지는 실내조명을 끄고 라디오에서 흘러나오는 슬픈 노래의 볼륨을 조금 올린다. 나도 눈물이 났다. 알고 있는 내용이었지만 시간이 흘러 이 영화를 보니 또 다른 감정으로 밀려왔다. 지금 내 나이가 29살인데 과연 장가를 갈 수 있을까? 이성을 만나 사랑할 시간이 있을까? 울고 싶고 위로받고 싶을 때 나를 위로해 줄 사람이 있을까? 많은 생각이 들었다. 영화에서 나온 대사처럼 별 것 아닌 “그냥 걷고 얘기하는 정도”의 인연을 만날 수 있을까? 우리 가게의 휴무일은 둘째, 넷째 일요일인데 늦잠 한 번 자고 일어나면 저녁이 된다. 연애를 오래도록 하지 않게 되면 외로운 감정도 많이 줄어들게 된다. 그러다 보면 필요성을 느끼지 못하게 된다. 나는 내가 내일 당장 죽는다면 오늘 무엇을 하지 못해 후회를 할까?라는 생각을 매일 한다. 이 생각은 잊고 있던 것과 알아야 할 것들을 스스로 깨닫게 하며 하루를 감사하게 해 준다. 가족이 떠오를 때도 있고 누군가에게 뒤늦게 용서를 구하기도 한다. 오늘 하루는 어제의 연장이며 내일 하루는 오늘의 연장이다. 오늘 하루가 당연한 것이 아닌 거다. 사고가 없는 날은 감사한 날일 수밖에 없는 거다. 작년에도 느꼈지만 새해가 떠오르고 01월 03일, 01월 05일이 순식간에 다가오더니 그냥 다음 새해가 떠올랐다. 일 년은 빠르다. 조금 더 부지런하게 움직여야 하는 이유다. 지금 내 상태는 몽롱하다. 아무런 말이 떠오르지도 않는다. 그만큼 지쳐있기 때문이다. 사실 오늘 유서는 그냥 넘어가고 싶었지만 영화를 보고 잠들지 못하고 몇 자 적어보는 거다. 나는 내 부모님과 하나뿐인 누나 그리고 매형과 조카, 누나 뱃속에서 자라나고 있는 늦둥이 조카까지 그들이 항상 행복하기를 바란다. 자랑할 수 있는 아들이 되고 싶고 착한 동생이 되고 싶고 멋진 삼촌이 되고 싶을 뿐이다. 식도염 때문에 너무 아파서 글에 집중을 못하겠다. 하루의 유서를 한글 문서 기준으로 글자크기 10 정도로 한 페이지 분량은 써야 한다고 생각한다. 그렇지만 확실한 것은 억지로 쓴 글은 읽는 사람이 느끼기에 지루하고 재미없게 느끼게 된다. 영화를 보는 내내 한 페이지 분량의 감명 깊은 문장들이 떠올랐었는데 영화가 다 끝난 후에 글을 쓰기 시작하고 나서부터는 갑자기 수증기처럼 증발해 버렸다. 글 쓰는 사람들은 종종 이 상황에 대면할 거다. 분명 좋은 문장이 떠올랐었는데 잠깐 다른 생각을 하는 사이에 사라지는 문장 증발 현상 말이다. 처음에는 아무래도 일을 하면서 글을 쓰다 보니 이러한 현상을 만나게 되면 굉장히 속상했다. 또 머릿속으로 문장을 생각하다가 하고 있는 일을 제대로 진행하지 못하고 실수하기도 했다. 결과적으로는 글을 서서히 내려놓게 되었다. 만족할만한 좋은 문장을 놓치더라도 다른 문장을 쓰면 그걸로 그만이다. 운이 좋으면 언젠가 머릿속을 떠돌다가 다시 나타날 수도 있다. 그게 아니라도 상관없다. 아쉬움에 얽매이면 그야말로 스트레스다. 그렇게 되면 글 쓰는 게 행복해질 수 없지 않겠는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