배달원의 유서

2021년 01월 06일 02:45 - 6화 -

by 임주형

우리 가게의 오픈 시간은 12시 정각이다. 어머니가 음식을 준비하는 시간이 빠듯하기 때문에 더 일찍 문을 열 수 없다. 완벽한 준비가 끝나야만 비장한 마음으로 하루 장사를 시작한다. 오늘은 오전 11시 30분쯤 자그마한 젊은 여경찰관님이 국밥 여덟 그릇을 포장하러 가게에 찾아왔다. 어머니의 대답은 “안 됩니다. 12시부터 영업 시작합니다.”였다. 고생 많으신 경찰관이라 하더라도 그 30분으로 인해 하루가 엉망이 될 수 있어서다. 그랬더니 경찰관님은 “12시에 찾으러 올 테니 해주실 수 있나요?”라고 물었고 어머니는 승낙했다. 사실 그 경찰관님은 내게 호되게 호통을 당한 적이 있었다. 예전에 파출소 앞 골목에서 큰 도로로 진입하려고 좌회전 신호를 받고 신호에 맞게 가려는데 큰 도로에서 비보호 좌회전으로 들어오는 트럭과 시비가 생겼었기 때문이다. 트럭은 그냥 밀고 들어와 좌회전을 못하게 막았고 나는 “아저씨 제 신호인데요? 뒤로 좀 빼주세요.”라며 기싸움을 펼쳤다. 다짜고짜 트럭 운전사는 내게 십 원짜리 욕을 쏟아부었었다. 내 입장에서는 내 신호에 욕 가지 들어먹으니 기분이 상당히 좋지 않았다. 배달통에 음식이 실려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골목길에 오토바이를 세우고 트럭 운전사에게도 세워 라고 호통을 쳤다. “아니, 아저씨 방금 내보고 뭐라 했는가? 진짜 미쳤습니까? 내 신호에 내가 간다는데 왜 십 원짜리 욕을 한 바가지 먹어야 합니까?” 그러던 중에 하필 파출소 앞이었던지라 경찰관 다섯 분이 뛰어나왔다. 더 거들어 말했다. “경찰관님들 내 신호에 내가 간다는데 십 원짜리 욕을 먹는 게 맞는 일입니까? 나도 비보호 좌회전인 거 누구보다 잘 아는데요. 너무 열 받네요.” 나이가 있으신 경찰관님께서 입을 열었다. “젊은 양반이 조금 참아봅시다.” 그 말을 듣고는 다른 네 명의 젊은 경찰관에게 물었다. “경찰공무원 준비하면서 배달 아르바이트해보신 분 있습니까? 나는 배달원이라고 해서 사회적 약자가 아닙니다. 어느 정도 법을 알고 있는 사람입니다. 내 주변에도 경찰공무원 몇 년째 준비하면서도 아직 경찰이 되지 못한 정의로운 사람들이 제법 많아요. 그들을 대신해서라도 아무리 별 것 아닌 일이라 해도 이렇게 묵살시켜서 될 일입니까?”와 같은 말들로 정말 호되게 호통을 쳤다. 그 와중 식어 가는 음식을 동료 배달원에게 전해주고 결국에는 트럭 운전사에게 먼저 사과했다. “선생님 젊은 제가 화를 낸 건 죄송합니다. 그래도 십 원짜리 욕은 좀 심하셨으니 그 부분에 대한 거는 저도 사과를 받아야겠습니다.” 트럭 운전사는 “그 부분은 나도 잘못이 있어 나도 죄송해요.” 서로 사과를 하고 일은 해결이 됐는데 돌아와서 생각해보니 경찰관님들에게 내가 조금 심했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래서 커피를 여러 잔 사서 다시 파출소로 갔다. “아까는 제가 화가 좀 많이 나서 마음에도 없는 말을 했는데요. 죄송해서 커피라도 좀 사 왔어요.” 그랬더니 여경찰관님이 “저희는 이런 거 받으면 안 돼요. 그럼 이거라도.”라며 내게 아이스크림 하나를 줬다. “커피는 잘 마실게요. 다음번에는 이러시면 진짜 안돼요.” 커피를 전해주고 돌아온 후로 몇 개월간 그 골목길로 다니지 않았다. 한참이 지나서 지금은 다니고 있지만 그 날 이후로 비보호 좌회전 진입 차량을 매우 잘 살피는 습관이 생겼다. 아주 좋은 습관이다. 아마 그날 화에 대한 글귀를 인스타그램에 다루었던 것 같은데 분노에 못 이겨 화를 내게 됐을 때는 언젠가 사과하라는 내용이었을 거다. 화가 나면 딱 한 가지만 생각하면 된다. 이후에 어떻게 사과할지 “사과할 수 있는 화를 내라.”는 말이다. 그렇다고 폭력과 기물파손은 절대적으로 참아야 한다. 차라리 복심 호흡을 통해 고함을 크게 지르는 게 뒤탈이 없다. 오늘 우리 국밥을 먹고 입맛에 맞아 경찰관님이 언젠가 다시 찾아온다면 맛보기 수육이라도 넉넉하게 썰어주고 싶다. 우리 동네에는 정상적이지 않은 사람들이 정말 많기 때문에 하루하루가 전쟁일 것이며 고될 것이기 때문이다. 나 하나라도 정상적인 사람이 되기로 다짐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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