배달원의 유서

2021년 01월 07일 01:27 - 7화 -

by 임주형

길고양이의 죽음을 봤다. 집에서 키우는 반려 고양이는 옆으로 누워 깊은 잠을 자는 모습을 종종 볼 수 있겠지만 길고양이는 모든 것을 경계해야 하므로 그 모습을 쉽게 볼 수 없다. 생에 단 한번 옆으로 누워 편하게 잘 수 있는 순간이라면 아마도 하늘나라로 가는 마지막 잠일 거다. 오늘 하늘나라로 간 고양이는 옆으로 누워 잠을 잤다. 내게는 피 한 방울 없이 제법 통통한 뒷모습만 보였는데 뒤통수가 아직도 귀여운 모습 때문에 짧은 신호를 기다리는 동안 눈물을 감출 수 없었다. 하얀 몸통에 황색 큰 반점이 섞인 일반적인 그 길고양이에게 밀린 배달과 짧은 신호 탓에 먹으면서 가라고 배달통에 실린 스틱형 간식을 던져줄 수 없었다. 운전 능력이 둔한 운전자가 감속 없이 고양이를 쳤을 거다. 다만 그 사실을 자신이 알기를 바란다. 내가 미안한 것은 도로변으로 옮겨 놓지 못한 거다. 내일 가게에 출근하면 커다란 봉지와 위생장갑을 배달통 모퉁이에 넣어둘 계획이다. “야옹아. 부디 하늘나라에 가서는 초록 들판에서 예쁜 나비들과 장난치며 추위에 떨지 말고 행복하게 지내렴.” 우리 가게에도 단골 길고양이가 한 마리 있다. 어머니는 그 길고양이를 ‘깜돌이’라고 부른다. 종종 가게 앞을 지키기도 하고 간식이나 고기 덩어리를 달라는 눈빛을 보내기도 한다. 처음 봤을 때는 곧 죽을 것처럼 앙상한 몸에 숨조차 제대로 쉬지 못했었는데 보일 때마다 먹을거리를 넉넉히 나눠줬더니 통통하게 살이 올랐다. 그 녀석은 가끔 아예 가게 안으로 들어와 버리고는 하는데 경계 때문인지 사람 손은 타지 않으려고 한다. 표정이 있는 고양이다. 별을 보며 사색에 잠기는 것처럼 보일 때도 있고 크레인 자동차를 보며 놀란 표정을 지을 때도 있다. 며칠 내도록 나타나지 않으면 보고 싶은 고양이다. 나도 유서를 쓰는 입장이지만 길고양이는 무엇을 남기겠는가? 이런 날은 의도치 않게 두려움이 등골을 타고 밀려올 때가 있다. 버스가 내 옆을 빨리 지나갈 때는 “저기 부딪히면 튕겨져 나갈까? 아니면 깔릴까? 조심하자 조심해야 돼!”라는 생각들로 경각심을 만들어낸다. 이 글들이 쌓여 산문이 되고 책이 되기를 소망할 뿐이다. 새해를 보며 빌지 못한 소망. 날짜 옆에는 소제목이 들어가는 게 보기에는 좋겠지만 날짜와 시간만 기록하는 게 ‘배달원의 유서’라는 제목과 심플하게 잘 어울린다고 생각한다. 원래는 새해가 밝으면 생각해둔 소설이나 분노를 다룬 자기 계발서를 집필할 계획이었는데 코로나 19 여파로 배달 주문이 급증함에 따라 다음으로 미뤘다. 몸이 피로하고 지쳐서 독서도 제대로 못하고 있을 정도다. 얼마 전 가게 근처에 자그마한 서재를 만들었다. 보증금 100만 원에 월세 15만 원짜리 주택 모퉁이에 있는 단칸방이다. 그동안 간간히 독서나 짧은 낮잠은 잤었는데 여기서 글은 처음 써본다. 인터넷도 없어서 노트북에 스마트폰 핫스폿을 연결해둔 상태다. 앞서 말했지만 유서를 매일 쓸 자신은 없다. 나는 독자에게 일기라는 것을 매일 쓸 필요는 없지만 아주 가끔이라도 쓰는 것을 권한다고 말한다. 내 마음이 하는 소리를 글로 받아 적는 행위라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즉, 자신과의 소통이다. 복잡한 마음의 상태를 정렬해주고 무엇보다 나도 몰랐던 나를 알게 해주는 수단이 분명하다. 우울하거나 괴로워질 때, 걱정이 되거나 두려울 때처럼 마음이 심란할 때 독자들은 종종 나를 찾았다. 그럴 때면 “단 한 시간만이라도 장문의 일기를 써보세요. 그냥 쓰고 하고 싶은 말을 써보세요. 무엇이 문제인지 그 문제가 얼마나 많은지 얼마나 중요한지 나아가 해결책까지 이미 자신 안에 있답니다. 그 후에 하루가 지나도 괜찮으니 다시 저를 찾아 주세요.”라는 말을 전한다. 다음 날쯤이 되면 한층 더 긍정적인 모습을 내게 보인다. 잘 찾아보면 결국 자신 안에 있는 거다. 그나저나 고양이의 뒷모습이 기억에서 잊히지 않지만 내일은 잊어내려 한다. 이틀 정도만 그 도로를 피해서 배달할 예정이다. 가장 다루고 싶지 않았던 내용을 다루고야 말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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