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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임주형 Sep 23. 2021

배달원의 유서 - 59화 -

2021년 09월 22일 23:16

  추석 연휴 월, 화, 수요일을 과감하게 쉬어버렸다. 그동안 퇴근 이후가 아니더라도 시간을 내어서 글쓰기에 도전했으나 실패했다. 

블루투스 무선 키보드를 꺼내 스마트폰과 연결해서 몇 번이나 시도했지만 배달 주문 몇 건에 잊혔다. 예전에는 이럴 때 속상했었다. 머릿속에서 창작된 글귀는 연기 같아서 빨리 받아 적지 못하면 사라진다며 투덜거리고는 했다. 마지막이 될 수도 있는 두 번째 저서를 집필할 때 노트북을 폈다 접었다. 두 자 썼다 세 자 썼다 했었던 기억이 난다. 그러나 지금은 현실을 온전히 받아들였다. 글쓰기를 할 시간이 허락되지 않는다면 안 쓰면 된다. 대부분의 작가는 직업과 본업이 있다. 처음부터 글쓰기가 본업이 될 수 없기 때문에 직업으로 돈을 벌고 남는 시간에 본업에 임하는 거다. 내 필력의 부족함이 많지만 마냥 글 쓰는 게 좋아서 국밥 집을 열고 일 년 넘어 정도는 받아들이지 못했었다. 날아오는 담배꽁초를 얼굴에 맞고 그것도 모자라 그 사람에게 멱살까지 잡히면서도 밀린 배달 주문 7건 때문에 물러섰고 아파트 단지 관리자가 단지 내에서 릴 케이블 콘센트를 내 오토바이 앞바퀴에 걸어 넘어뜨리려 했을 때도 밀린 배달 주문 때문에 돌아섰을 때쯤 비로소 현실과 타협하게 됐던 것 같다. 1분 1초 자신과의 싸움 중 다툼 때문에 그들이 개입할 수 있는 시간은 0.1초도 없었기 때문이다. 너무 억울하고 화가 나지만 고객과의 시간 약속이 정해져 있고 도착 시간이 지나서 음식이 전해진다면 악성 리뷰에 시달려 더 괴로워해야 하니까 말이다. 글이라는 것은 힘들고 괴로울 때 가슴에 와닿는 글이 만들어지고 편안하고 여유가 있을 때 읽기 좋은 글이 만들어진다고 생각한다. 써 놨다가 편안할 때 수정하면 되는 거다. 가끔 쓰면 되는 거고 시간이 허락되면 더 쓰면 된다. 내가 스트레스를 받지 않는 방법이고 위와 같은 방법으로 합리화했다.      

  

  요즘 배달원의 안타까운 사고가 언론에 퍼지게 되면서 지인들의 전화가 제법 많이 걸려왔다. 아무래도 걱정돼서 운전 조심해라는 내용이었다. 속으로는 고마운 마음이 들었는데 현실은 그게 아니다. 우리 같은 배달원을 ‘딸배’라고 부른다는 사실을 여러 콘텐츠 댓글을 보며 알았고 대부분은 배달원을 혐오한다는 것도 알게 됐다. “아, 두 번째 저서가 생각보다 기대에 미치지 못한 까닭이 책 제목을 《삶의 향기도 배달해 드립니다》라고 정해서 그런 걸까?”라는 생각까지 들었다. 내가 아무리 신호를 준수하고 신사답게 운전해도 그냥 나는 같은 배달원이다. 내가 죽는다고 해도 나와 가까운 사람과 목숨을 중요시 여기는 사람을 제외하고는 잘 죽었다고 생각할 거다. 어쩔 수 없는 사실이다. 여기서 우리가 깨달아야 할 것은 내가 대통령이 되어보지 못했고 판사가 되어보지 못했고 의사가 되어보지 못했고 전화상담사가 되어보지 못했고 택시기사가 되어보지 못했고 상인이 되어보지 못했고 배달원이 되어보지 못했다면 그 어떠한 일이든지 그 사람을 판단할 자격이 없다는 거다. 나는 이 맥락을 깨닫지 못한 다수의 사람이 안타까울 뿐이다. 철부지 자식으로 태어나 부모가 되어 봐야 부모 마음을 이해하듯 내 가족 중 누군가가 배달원이 되어 봐야 비 오는 날 주문을 삼가고 혹여나 주문할 때면 마음 담은 작은 간식거리를 건네며 고층일 경우에는 엘리베이터 앞에 마중을 나가 기다리듯, 치아가 썩어 이가 시려야만 치과에 가는 것과 같이 피부로 와닿아야 우리는 깨닫는다. 그래서 나는 모든 사람을 미워할 수가 없다. 깨닫지 못한 게 죄가 될 수 없기 때문이다. 그들이 나를 모르고 나도 그들을 모르니까 말이다. 어떠한 상황에서도 타인과 대립될 때 한 번쯤은 그 사람을 온전히 이해하려고 노력해봐야 한다. 이해를 하지 않았기 때문에 오해가 생겨난다. 이것이 인간의 본성이라면 이 또한 조금은 받아들이는 연습이 필요할 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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