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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주현석 Jan 16. 2024

네가 되는 꿈

영화 <너와 나>


과연 꿈의 가치는 미래를 예견하는 데 있는 것일까? 물론, 그렇지 않을 것이다. 대신 꿈은 과거를 알려준다고 보는 편이 더 정확할 것이다. 꿈은, 어떤 의미에서든 과거를 가리키고 있다. 그렇다고 해서 꿈이 미래를 예시한다는 낡은 믿음에 진실로서의 가치가 전혀 없다고 말할 수는 없다. 꿈은 어떤 소망을 충족된 것으로 보여주면서 우리를 미래로 이끈다.

<꿈의 해석>, 프로이트


우리는 꿈을 꾼다. 자면서 재생되는 영상 속, 우리는 삶에서 마주친 다양한 인연과 상황을 맞이한다. 현실과 환상, 희극과 비극을 자유롭게 넘나들며 꿈은 우리에게 특별한 경험을 선물한다. 한계라곤 없는 세계 안에서 우리는 자유롭게 행동하고 사고하며, 무의식에 감춰둔 내밀한 마음을 꺼내 보이기도 한다. 욕구와 본능, 충동과 갈망 등 자신조차 온전히 이해하지 못하는 심연 속 다양한 형태로 자리한 소망을 우리는 꿈이라는 영화를 통해 상영하고, 또한 관람한다.


<너와 나> 스틸컷. 이미지 출처: 필름영

영화 <너와 나>는 어느 날 세미가 꾼 꿈으로부터 시작한다. 꿈속에서 하은이의 죽음을 목격한 세미는 잠에서 깨어난 후 불안을 느낀다. 하은이에 대한 특별한 감정에서 기인한 이 불안은, 다리를 다친 하은이와 수학여행에 함께 가고자 하는 소망으로 이어진다. 수학여행 하루 전날, 세미와 하은이가 함께 그려가는 하루는 선연한 햇살 아래 눈이 부시도록 밝게 빛난다. 그리고 영화는, 그런 그들을 가만히 따라가며 발길을 옮긴다.


<너와 나> 스틸컷. 이미지 출처: 필름영

영화는 이별에서 출발한다. 세미의 꿈속 하은이의 죽음에서 시작한 영화는 여러 상실의 순간을 지나온다. 하은이의 반려견 '제리'의 죽음과 진돗개 '똘똘이'의 실종, 꿈인 듯한 장면 속 세미의 앵무새 '조이'의 부재. 제리의 죽음에 대해 묻는 세미에게, 하은은 무심하게 대꾸한다. 감정의 진폭이 큰 세미와 달리 시종일관 침착했던 하은의 감정이 터져 나오는 순간은, 진돗개 똘똘이를 되찾은 주인아주머니가 똘똘이를 잃어버렸을 때의 슬픔을 이야기할 때이다. 각자가 지닌 상실감과 그로 인한 상처를 공유할 때, 이별과 슬픔 사이를 경유하던 시간은 비로소 하은의 앞에 도착한다. 더불어, 이는 세미 또한 하은의 슬픔을 진심으로 느끼는 순간이기도 하다.


세미는 마침내 하은에게 사과와 위로의 말을 건넨다. 그간 하은의 마음을 진심으로 공감하지 못했던, 하은을 향한 자신의 마음만을 생각했던 세미는 그제야 하은이를 이해한다. 세미에게 단순히 너였던 하은은 그렇게 너와 내가 된다.


<너와 나> 스틸컷. 이미지 출처: 필름영

수학여행 당일이 다가오고, 세미는 떠나기에 앞서 하은과 작별 인사를 나눈다. 영화 내내 교복을 입고 있는 세미는 그렇게 등 뒤로 보이는 장례식 풍경 너머로 멀어진다. 이별의 순간, 다시 돌아올 거라는 말과 주저한 끝에 나눈 입맞춤은 그 행복과 설렘의 깊이만큼 안타까움과 슬픔으로 다가온다. 멀어지는 세미의 모습을 하은은 자꾸만 확인한다. 마치 그 자리에 계속 있는 듯, 아직 떠나지 않은 채 머물러 있다는 듯.


<너와 나> 스틸컷. 이미지 출처: 필름영

세미는 떠난다. 하은은 남겨진다. 하루는 흘러가고 세상은 여전하다. 영화는 줄곧 세미의 시선으로 하은을 향한다. 영화는 떠난 자의 눈을 빌려 남겨진 이에게 말을 건넨다. 미안하다고, 그리고 좋아한다고. 눈이 부실 정도의 햇살 아래 펼쳐지는 그들의 이야기는 마치 꿈속에 있는 듯 환상적이다. 세미가 하은의 죽음에 관한 꿈을 통해 하은에 대한 감정을 찾아가듯, 우리는 세미와 하은을 비추는 영화라는 꿈속에서 떠난 이와 남겨진 이를 바라보며 우리의 내밀한 상처를 꺼내 보인다. 사랑하는 이들을 허망하게 떠나보낸, 남겨진 이들을 영화는 가만히 감싸 안으며 위로한다. 나 또한 그렇다고. 나도 그립고 슬프다고. 그리고 무척이나 보고 싶다고. 그렇게 너와 나는 우리가 되고, 우리는 비로소 그들을 떠나보낼 수 있다.




그러나 꿈을 꾸는 사람이 받아들이는 이 미래는, 결코 깨지지 않는 소망에 의해 과거와 닮은 모습을 띌 수밖에 없을 것이다.

<꿈의 해석>, 프로이트


세미의 시선으로 하은을 향했던 영화는, 마지막에 이르러 세미를 바라본다. 여행 전 가족과 단란한 저녁 식사를 하고, 반려동물인 앵무새 조이 앞에서 세미는 영화 속 처음으로 이 말을 건넨다. 영화는 남겨진 하은이를, 사랑하는 사람들을 떠나보낸 이들을 위로하며 슬픔을 나누고 사과한다. 진심으로 슬픔을 공유하지 못해서, 정말 힘들고 괴로웠을 마음들을 보살펴주지 못해서 미안하다고. 그러나, 영화는 여기에서 마무리되지 않는다. 세미의 꿈은 끝났지만, 영화라는 꿈속 우리들 앞에는 세미의 모습이 남아있다. 그 모든 기억과 감정을 공유한 채 영원히 가슴속에 남아있을 세미에게 우리는 아직 인사를 건네지 못했기에, 풀밭 위에 평온하게 누운 세미에게 우리는 미처 하지 못했던 말을 건넨다. 영화가 끝나고 꿈에서 깨어나도 변한 건 없을 것이다. 시간은 흐르고 과거는 멀어지며 미래가 다가온다. 하지만, 세미와 함께 했던 그 모든 순간들을 지나 꿈을 꾸는 우리들은, 결코 잊지 못할 소망을 통해 소중했던 과거와 미래를 하나로 연결한다. 영화의 막이 내리며, 세미의 입에서 번지는 단어를 가만히 되뇐다. 영화관 안을 가득 메우는 마지막 인사는 말한다. 세미와 하은이가, 아이들과 우리가 다시 만날 수 있다고. 그리고 미처 하지 못했던 말을 이제는 건넬 수 있게 되었다고.



"사랑해, 사랑해, 사랑해"


<너와 나> 스틸컷. 이미지 출처: 필름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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