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파벨만스>(2023) 리뷰
기억은 있었던 것을 그대로 다시 눈앞에 떠오르게 해주는 단순한 복원의 기관이 아니다. 있었던 것은 기억 속에서 끊임없이 변화한다. 기억은 앞으로 나아가는 살아 있는 서사적 과정이며, 이 점에서 데이터 저장 장치와 구별된다.
<에로스의 종말>, 한병철
기억은 완전하지 않다. 과거를 회상하는 주체는 현재에 실재하며, 예속된 세계를 통해 끝없이 받게 되는 영향은 과거의 기억에도 힘을 미치게 된다. 기억은 주체의 사고에 의해 삭제되고 추가되며, 재배치와 편집, 훼손이 이루어진다. 그렇게 형성된 기억은 원래의 것과는 다른 모습을 지니게 되며, 그렇기에 같은 과거를 공유하였더라도 각자가 지니는 기억은 서로 차이가 발생한다.
이러한 기억의 불완전성은, 회상을 통해 기억을 재조직하는 과정에서 주체의 주관적 영향력이 발현되기 때문에 발생하는 현상이다. 과거는 시간이 지날수록 마모된다. 중간중간 공백으로 남은 기억을 주체는 현재의 사유로 채운다. 그 과정에서 현실의 욕망, 과거에 대한 후회, 현재의 관심사 등이 틈입한다. 과거를 기억하는 행위는 옛 문화재를 발굴하는 것과는 다르다. 오히려, 기억은 과거의 편린들을 토대로 현실의 자아가 이야기를 직조하는 예술적 형식에 더욱 가깝다.
이러한 점에서, 영화를 만드는 일은 기억하는 행위와 비슷한 양상을 띤다. 기억이 과거의 일들을 분석 후 재배열, 삭제, 추가 및 훼손 등을 통해 재구성하는 것과 마찬가지로 영화는 카메라로 담아낸 이야기를 편집한다. 크리스토퍼 놀란의 <메멘토>(2001), 데이비드 린치의 <멀홀랜드 드라이브>(2001) 등과 같이 복잡하고 정교한 편집은 촬영한 이미지에 서사를 부여한다. 영화가 단순히 카메라의 촬영에 그치지 않고 연출가의 행위를 통해 예술적 결과를 성취하듯, 기억 역시 분절된 과거의 편린들을 주체가 조합, 재구성하여 그 안에서 어떠한 의미를 만들어낸다.
스필버그 감독의 <파벨만스>(2023)는 이러한 영화와 기억의 관계에 대해 다룬다. 영화는 주인공인 소년 파벨만이 영화감독의 꿈을 꾸는 과정을 보여준다. 카메라는 소년을 담백하게 따라가며, 그가 겪는 따돌림, 차별과 가족의 비극 등의 어려움을 스스럼없이 보여준다. 시종일관 소년의 발자취를 따라가는 영화는 우리로 하여금 온전히 이야기에 집중하도록 한다. 영화 말미에 소년이 영화감독을 만나기 전까지.
마지막 즈음에 소년은 영화감독을 만난다. 그는 소년에게 영화 속 내용이 아닌 카메라의 시선에 집중하라고 조언한다. 깨달음을 얻은 소년을 보며, 관객 역시 영화 바깥에서 소년을 비추는 카메라를 바라보게 된다. 그 뒤에는, 어린 시절 자신의 모습을 바라보는 영화계의 거장이 있다. 40여 편에 육박하는 장편 영화를 연출한 할리우드의 대표 감독은, 과거 감독을 꿈꿨던 어리숙했던 자신을 영화라는 방식을 통해 기억해 낸다. 스필버그의 기억 역시 불완전하며 과거 자체를 그대로 담을 수는 없다. 편집과 재구성, 추가와 삭제를 거치며 거장의 시선에서 재탄생한 기억은, 그렇기에 우리에게 어떠한 울림을 준다. 그리고 그 울림은 단순히 그가 살아온 세월만이 아닌, 그 흐름 속 곳곳에 자리한 감독의 마음을 통해 발현된다.
기억은 누구에게나 소중한다. 시간은 언제나 곁을 스쳐가며, 현재는 필연적으로 과거의 질료가 된다. 그렇기에 우리는 필사적으로 지금을 잊지 않으려 한다. 행복한 순간을 기억이라는 어항에 가두고서 오래오래 간직할 수 있도록. 그러나, 과거 안에 존재했던 감정들을 현재에 그대로 가져올 수는 없다. 아무리 기술이 발달하더라도 갓 태어난 아이를 직접 안았을 때의 감동과 사랑을 그대로 다시 느낄 수는 없다. 기억은 소실과 변형을 반복하기 마련이며, 끝없이 과거로서 추가되는 순간은 온전한 기억을 더욱 어렵게 만든다. 기억은 영원할 수 없다.
하지만, 기억의 불완전성이 기억의 소중함을 부정할 수는 없다. 주체는 기억이라는 행위를 통해 나 자신의 과거를 돌아보며 그 속에서 의미를 찾는다. 순간마다 느꼈던 감정들과 지나온 어려움들, 또한 그로 인해 얻게 된 용기와 힘은 발 딛고 서있는 지금을 더욱 잘 살아내기 위한 재료가 된다. 그 모든 일들의 증인이었던 주체는 기억을 통해 지나온 삶의 의미를 발견하고 스스로를 위로한다. 잘 지나왔다고, 그리고 잘 해냈다고. 기억은 오늘이라는 토양에 내리는 단비와 같다. 비록 물이 순환하는 과정에서 유실되고 변형되었을지라도, 닿는 감촉에서 잠시 잊고 있던 순간들을 양분 삼아 오늘은 더욱 단단해진다.
기억이 과거 속에서 의미를 찾는 현재의 노력이라면, 영화는 세상 속에서 의미를 찾는 예술의 노력이다. 기억을 통해 우리는 과거를 반추하며, 그 안에 담긴 의미를 지닌 채 앞으로 나아간다. 마찬가지로, 영화를 통해 우리는 삶을 돌아보며, 그 안에서 오늘을 살아갈 의미를 얻는다. 그렇기에, 기억의 완전함은 중요하지 않다. 스필버그가 자신의 기억을 편집하고 재구성하였듯이, 그렇게 소년의 꿈을 따라가며 유년 시절의 희망을 다시금 꺼내어 펼쳐 보였듯이 우리가 간직하는 그 모든 기억들 속에는 우리의 삶이 의미 있었다는 증거가 존재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