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해하지 않아도

by 주현석

“담임쌤 개짜증나요.”


초등학교 6학년, 만 12세 소녀의 일갈이 교실 벽면에 퉁기며 안을 가득 메운다. 순간 교사로서 나의 입장을 머릿속으로 재빨리 정리한다. 첫째, 선생님에게 지켜야 할 예의를 엄하게 가르친다. 둘째, 왜 그렇게 생각하는지 이유를 물으며 대화를 이어나간다. 교과 담임이기도 하고, 비교적 학생들과 비슷한 나이인지라 래포 형성이 나름 견고하게 축조된 현재의 관계에서 첫 번째와 같은 대처는 되려 역효과를 자아낼 수 있다. 그렇다면, 자연스레 두 번째 방안을 선택한다. 왜 그렇게 생각하니? 아이는 별 고민 없이 대답한다. 아니, 나한테만 뭐라 하잖아요. 명쾌하게 대답을 완료한 아이는, 수업 시간에 임박했음을 알리는 시계를 확인한 후, 미련 없이 자기 교실로 발걸음을 옮긴다. 그리고 그 뒤에는, 올바른 대답을 고민하던 도중 대화할 상대를 잃어버린 풋내기 교사가 우두커니 앉아 있다.


얼마 후, 교내 회식 자리에서 그 아이의 담임 선생님과 함께 자리했다. 잦은 말썽과 갈등 사안들로 스트레스를 받을 만큼 받은 선생님은 회식 내내 한숨과 함께 답답한 마음을 이야기하신다. 당최 애들을 이해할 수가 없어. 물끄러미 선생님을 바라보던 도중, 아이와 나눴던 대화 내용이 머리를 스친다. 서로의 입장은 하늘과 바다처럼 아득하면서도, 또한 묘하게 닮은 구석이 있다. 양 극단에 서 있는 둘을 연이어 마주하니 머릿속이 중간놀이 시간 복도처럼 혼란스럽다. 대체 누구의 말이 맞는 건가. 둘의 이러한 생각 차는 대체 어디에서 시작한 것인가.


회식 후, 집에 돌아가며 곰곰이 생각했다. 애초에 10대 소녀와 40대 남자가 서로를 이해한다는 전제 자체가 잘못된 게 아닐까. 선생님이 초등학생이었을 때는 90년도이다. 당시에 김영삼 총재가 대통령으로 선출되고, 문민정부가 들어섰다. 사람들은 삐삐로 소통하며, 서태지가 문화 대통령으로 군림하고 있었다. 초등 교육 기관 명칭은 ‘국민학교’였으며, 체벌과 폭언이 당연시되는 분위기 속 교육이 이루어졌다.


그러나, 2023년의 초등학생이 살아가는 곳은 그와 판이하게 다르다. 대통령도 탄핵을 당할 수 있는 사회에서 민주주의는 이제 자연스러운 개념이 되었다. 대부분의 초등학생들은 스마트폰을 가지고 있고, 곳곳에서 틱톡 찍는 모습을 어렵지 않게 볼 수 있다. 체벌과 폭언은 아동학대의 대표적인 케이스가 되었고, 수업은 지식 전달의 범주에서 벗어나 ‘어떻게 전달할 것인가’에 대한 고민을 마주한다. 강산이 세 번 바뀔 동안 세상은 너무나도 많이 변했고, 각자 보고 들은 것이 다른 두 사람이 서로를 온전히 이해하기는 불가능한 것이다. 그러니 티격태격할 수밖에.


며칠 후, 점심시간에 아이들이 피구를 하고 있었다. 가만히 앉아 아이들을 보고 계시던 선생님이 게임에 참여하자 아이들의 반응이 뜨거웠다. 특히 신난 그 아이는 누구보다 열심히 경기를 뛰었다. 웃고 소리치며 활기찬 분위기 속 즐거운 경기가 이어졌다. 수업 시간에 가까워지자, 아쉬워하던 아이는 내일도 하자며 선생님을 조른다. 담임 선생님의 등 뒤로 아이들이 힘차게 교실로 향한다. 그 모습만큼은 영락없는 이상적인 스승과 제자다. 그리고 그 뒤에는, 역시 풋내기 교사가 멍하니 서 있다.


해가 바뀌고, 학생들은 졸업을 하였다. 그 학생과 선생님을 가만히 생각한다. 둘은 결국 서로를 이해할 수 있었을까. 장담컨대, 절대 그럴 수 없었을 것이다. 나이, 성별, 자라온 과정 등 수많은 요소들의 차이는, 아무리 스승과 제자라는 관계로 이어져 있다고 해도 결코 넘을 수 없는 벽을 만든다. 그 벽을 무리하게 부수려 하다가는, 오히려 더 큰 재앙을 불러일으킬 수도 있을 것이다. 그렇게 둘은 때로는 부딪히고 때로는 적당히 타협하며 1년을 보냈다.


그러나, 이해의 결여가 교사와 학생이 함께 보낸 1년의 시간 자체를 부정할 수는 없다. 서로 답답하고 투덜거렸을지라도, 1년이라는 시간 동안 스승과 제자는 울고 웃으며 학교생활을 함께했다. 가르치고 배우며, 함께 밥을 먹고 소풍을 가기도 하면서. 교실이라는 세계에서 교사와 학생들은 그렇게 함께 지내왔다. 서로 나누고 채우며, 더불어 살아갔다.


흔히 공생은 이해를 수반해야 하는 것으로 여겨진다. 하지만, 각자 다른 환경에서 나고 자란 이들이 서로를 온전하게 이해하는 것은 어쩌면 불가능한 일일지도 모른다. 그 속에서 우리는 서로에게 실망하기도 하고, 가끔 부딪히기도 한다. 그러나, 그 모든 몰이해에도 불구하고 결국 우리는 함께 살아간다. 하루하루 흘러가는 시간을 같이 마주하며 의지하고 타협한다. 아마도 서로에 대한 이해는 아득한 미래에 이루어질 수도, 혹은 영원히 불가능할 수도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서로가 함께 했던 날들은 봄날에 떠오르는 아침 해처럼 항상 밝은 채로 남아있다. 이해는 공생의 전제조건이 아니다. 이해는, 더불어 함께하는 삶의 존재 이후의 영역인 것이다. 중요한 것은, 서로 다른 우리가 함께 살아간다는 사실이다.


졸업식 날, 1년 동안의 영상이 스크린을 통해 재생되며 이를 본 아이들의 눈가가 촉촉해진다. 졸업식 노래가 끝나고, 아이들과 선생님이 한데 모인다. 그 모든 날들의 끝에서, 기억들은 하나의 추억이 되어 졸업 앨범과 함께 손안에 담긴다. 그리고 그 추억은, 다사다난했던 날들에도 불구하고 그동안 함께 했다는 사실 하나만으로도 충분히 가치가 있다.


이젠 안녕, 015B