풍선 주고받기

by 주현석

1학년 안전 시간, 학기 말에 이르러 진도가 다 끝난 탓에 활동 중심으로 수업을 이어가던 어느 오전이었다. 그날 수업의 메인은 ‘풍선 주고받기 활동’이었다. 방법은 단순하다. 2인 1조, 3인 1조로 풍선이 땅에 떨어지지 않도록 주고받는 것. 풍선은 두둥실 떠다니며 느리게 움직인다는 점에서 저학년 협동 활동으로 제격인 아이템이다. 이를 위해, 오전에 일찍 학교에 출근하여 대략 20여 개의 풍선에 쉬지 않고 바람을 넣었다. 무언가 잘못됐다는 걸 인지한 시점은 10개 정도의 풍선을 입으로 불었을 때였다. 얼굴이 비전(마블)처럼 새빨개진 채 거친 숨을 내쉬던 순간, 노란 바구니 안에 담긴 수상한 물체가 시야에 들어왔다. 순간 머릿속에 야릇한 생각이 스치며 휘적휘적 바구니를 향해 걸음을 옮겼다. 노란 바구니 안에는 풍선용 공기 주입기가 약 10개 정도 가지런히 놓여 있었다. 형형색색의 주입기를 멍하니 바라보며, 학기 시작할 때 교감 선생님 말씀을 듣고 품의를 올렸던 사실을 떠올렸다. 역시 머리가 나쁘면 몸이 고생하는구나. 그래도 절반 정도는 도구의 도움을 빌릴 수 있다는 사실을 위안 삼으며 한층 진보적인 방법으로 남은 풍선을 재빨리 완성했다.


수업 준비가 완벽하게 끝이 난 후, 시계가 9시임을 알렸고 곧이어 우당탕탕 몰려오는 아이들의 발소리가 들렸다. 한쪽으로 치워진 책상과, 교실을 자유롭게 떠다니는 풍선들을 목격한 아이들은, 옆에서 진이 빠진 채 사색이 된 교사는 안중에도 없다는 듯 축제 분위기를 열렬히 즐겼다. 겨우 아이들을 진정시킨 후, 규칙을 설명하고 2인 1조가 되어 풍선을 주고받도록 안내했다. 평소 무표정으로 수업을 듣던 아이들도 이번 시간만큼은 어느 우등생 부럽지 않았다.


활동 안내를 마친 후, 2명씩 짝을 짓기 전 학생들에게 강조할 사항이 있었다. 짝을 선생님 임의로 정한다는 것. 곧이어 탄성이 터져 나왔다. 아이들은 결연한 표정으로 불만을 토로했다. 교사가 뭔데 학생의 관계 계약에 멋대로 개입하려 드는가! 민주주의 사회에서 이는 개인의 자유를 무시하는 불법적 행위이다! 아이들의 부릅뜬 두 눈은 원하는 짝에 대한 결연한 의지를 빛내고 있었다. 예상했던 반응에 잠시 목청을 가다듬고, 이 정도 성토는 아무렇지 않다는 듯 눈동자를 빛내며 또박또박 말을 이어나갔다. ’선생님도 너희가 원하는 대로 짝을 짓는다면 좋겠어. 하지만, 그렇게 되면 모두가 원하는 짝을 얻지 못하는 일이 발생할 거야. 누구는 하고 싶은 친구랑 활동을 하고, 누구는 조금 어색한 친구랑 활동을 한다면 그건 공정한 일일까?‘ 마지막 멘트에 힘을 싣고서 일격을 날리자 쓰나미 같던 학생들의 대꾸가 잠잠해졌다. 아직 가슴속에 스멀스멀 타오르는 불만은, 그러나 ‘공정’이라는 단어 앞에서 입 밖으로 나오지 못한 채 맴돌다 스러지는 것이었다. 결국 입이 부리처럼 삐죽 나온 아이들은 (막상 활동 시작하면 신나서 할 거면서) 가만히 내가 짝을 정해주는 걸 들으며, 자기 이름이 호명되면 긴장한 표정을 지었다. 그렇게 10쌍의 짝이 정해지고, 드디어 길고 긴 준비 끝에 풍선 주고받기 활동이 시작되려는 찰나, 왼쪽 맨 끝에 앉은 아이의 표정이 어째 심상치 않았다. 불현듯 뭔가 불길한 예감이 들었지만, 일단 활동 시작을 알리고 짝마다 풍선을 1개씩 전해주었다. 각자 충분한 거리를 유지한 채로 활동이 이루어지자 몸에 긴장이 풀리려는 찰나, 방금 전 표정이 묘했던 아이가 부루퉁한 채로 앉아있는 게 보였다. 그 옆에 있는 아이 역시 불만 가득한 표정으로 나를 애타게 찾고 있었다. 아, 무언가 잘못됐구나. 부랴부랴 아이에게 가서 상황을 물었다. 나를 부르던 아이는 거침없이 불만을 쏟아냈다. ‘아니, 쟤가 자기 하고 싶은 애랑 한다고 고집 피우잖아요!’ 눈앞이 아득해져 왔다. 아까 그렇게 이유를 설명했건만! 옆을 돌아보니, 과연 아이의 표정에 단호함이 깃들어 있었다. 뒤통수가 쑤셔오는 걸 느끼며, 일단 서 있는 아이를 다른 친구들과 3인 1조로 붙여주고, 앉아 있는 아이를 데리고 교실 뒤로 나왔다.


한쪽 무릎을 꿇어서 아이와 시선의 높이를 맞춘 후, 보이콧을 외친 이유를 천천히 정리했다. ‘그러니까, OO이는 친한 친구랑 둘이 하고 싶었는데, 선생님이 다른 친구랑 짝을 시켜서 마음이 아팠던 거야?‘ 아이는, 여전히 굳은 표정으로 위아래로 고개를 도리질했다. 일단 이유는 알았고, 어차피 답은 정해져 있다. 이제 문제는, 어떻게 눈앞의 상대를 설득하느냐. 나는 크게 숨을 들이마시고, 천천히 설득에 이르는 미로를 복기했다. ’선생님도 OO이가 친한 친구랑 짝을 했으면 좋겠어. 친한 친구랑 같이 하면 더 재밌잖아, 그치?‘ 아이는 이번에도 위아래로 도리질을 했다. 일단 공감해 주기는 성공했다. 나는 다음 단계로 걸음을 옮겼다. ‘그런데, 만약 선생님이 OO와 같은 반 친구야. 그런데, OO와 짝이 되어서 풍선 주고받기를 하기로 했어. 선생님은 OO와 같이 할 수 있다는 생각에 신이 난 채로 하려 하는데, 갑자기 OO가 다른 친구와 하고 싶다면서 가버리는 거야! 그럼 혼자 남은 선생님 마음은 어떨까?’ 나는 최대한 비참하고 불쌍한 표정을 지으며, 레치타티보를 하듯 극적인 리듬으로 마지막 물음표를 강조했다. 아이의 표정이 풀어지며, 점차 골똘해지는 게 보였다. 조금 고민하던 아이에게 나는 마지막 한 방을 날렸다. ‘그럼 선생님은 상처를 받겠지?’ 회심의 일격. 아이는 인정의 도리질로 납득을 표했다. 됐다. 소동은 잘 마무리가 되었고, 이제 아무 일 없었다는 듯 활동을 이어가기만 하면 될 것이다. 나는 적이 안심하며 여유로운 미소를 지은 채 말했다. 자, 이제 가서 같이 활동을 해 볼까?


누그러졌던 아이의 표정이 별안간 다시 굳으며, 이번에는 수평으로 도리질을 했다. 성공을 확신했던 나는, 월드컵에서 추가시간에 골을 먹힌 팀처럼 어안이 벙벙해졌다. 여유로운 미소는 온데간데없이 사라졌고, 당황한 나머지 말이 더듬거리며 빨라졌다. 아니, 분명 아까 다 인정했잖아. 그런데, 왜..

아이는 여전히 단호했다. 그건 그거고, 저는 좋아하는 친구와 같이 하고 싶어요. 아이의 철벽 같은 마음을 보며, 나도 더 이상 설득을 감행할 의지를 잃어버렸다. 장렬한 패배를 인정한 채, 아이에게 원하는 다른 방법을 물었다. 결국 아이는, 잠시 쉬다가 마음이 바뀌면 참여하기로 합의를 본 후 의자를 향해 발길을 돌렸다. 망설임 없이 걸어가는 아이의 뒷모습을 보며, 나는 왠지 모를 무력함을 느꼈다.


수업이 끝나고 아이들을 반으로 보낸 후, 힘이 빠진 채 교탁에 털썩하고 앉아 수업을 복기했다. 과연 뭐가 문제였을까. 분명, 완벽히 설득했다 여겼는데. 아이도 내 생각을 잘 따라갔는데.. 지난한 이해의 과정을 거친 후 결말은 바뀌지 않았다. 여전히 아이는 짝 지정을 거부했고, 더 이상의 설득은 불가능했다. 아이는, 머리로는 이해했지만 이를 가슴으로 받아들이지는 못한 것이었다.

나는 아이에게 규칙의 이유를 설명했다. 이성적인 논리를 동원하여, 아이가 이해할 수밖에 없게끔. 합리적인 설명으로 인해 아이는 규칙을 수긍할 수밖에 없었다. 하지만, 머리로 이해했다고 해서, 설명이 가슴으로 와닿는 것은 아니다. 행동을 추동하는 것은 감성이며, 감성을 건드리는 것은 감정이다. 원하는 짝을 향한 아이의 감정은 여전히 굳세었고, 이를 해결하기 위해 10여 분동안의 설명은 턱없이 짧은 것이었다. 아이의 행동에 변화가 있기를 바라는 것은, 어쩌면 턱없는 바람이었을지도 모를 일이었다.


흔히 충분히 이성적인 설명은 상대방의 공감을 이끌어낼 것이라는 기대를 품곤 한다. 그 대상이 아이들일 경우에는 특히 더. 그렇기에 우리는 뜻대로 행동하지 않는 아이들에게 답답해하며 화를 내기도 한다. 그러나, 가슴 깊숙이 자리한 감정의 실타래를 풀어내는 것은 상대방에게도, 그리고 스스로에게도 어려운 일이다. 그날, 나와 아이 모두 서로를 이해하기 위해 최선을 다했을 것이다. 그리고, 서로의 달라지지 않은 결말 역시 최선의 마무리였을 것이다. 끝내 아이는 활동에 참여하지 않았고, 그렇게 수업은 마무리되었다. 하지만, 언젠가 아이의 마음속에 그날의 기억이 맴돈다면, 그리고 그 기억이 아이의 행동의 변화를 이끌어낸다면 조금의 시차가 있을지라도 그날의 대화는 유의미한 것이 아니었을까. 통통 튀어 오르는 형형색색의 풍선을 바라보며, 저 풍선을 타고 아이의 마음속에 조금 더 가볼 수 있지 않을까 하는 생각으로 다사다난한 오전을 흘려보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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