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y
life storyteller
Dec 11. 2020
우연히 한 커뮤니티에서 미국 백인 빈민층의 삶이 영화 <힐빌리의 노래>에 잘 그려져 있다는 짧은 댓글을 보고 시간이 날 때 한 번 봐야겠다는 생각을 했다. 퇴근 후 집에서 저녁을 먹고 1시간 반 정도 뒹굴거리다 보면 이 아까운 시간에 뭐라도 생산적인 것을 해야 할 것 같은 한국인 특유의 정서를 나 역시도 피할 수 없었는데 그때 마침 넥플릭스를 켰더니, 힐빌리의 노래가 목록에 보였다.
좋았어. 현대 미국 자본주의의 현실에 대해 공부해보자.
주요 배우들 중에는 누구 하나 날렵하게 다듬어진 외모를 가진 사람이 없었다. 특히 영화 <컨텍트>에서는 지적인 언어학과 교수로 분했던 에이미 아담스가 살을 찌우고 가발을 써가며 울퉁불퉁한 삶만큼이나 굴곡진 몸을 가진 백인 빈민층 여성이 희망을 잃고 발버둥쳐가며 쓰러지는 모습을 열연했는데 그녀는 이 역할로 내년 아카데미 영화상의 여우주연상 수상자로 유력하게 거론되고 있다.
에이미 아담스를 제외하고는 아마 일반 한국 사람들이 알만한 배우는 없는 것 같았다. 게다가 우리가 잘 알고 있는 히어로들이 가득 찬 세계 평화의 수호자 미국이 아니라, 무료 식량 배급을 받고, 돈이 없어 수업에 필요한 계산기를 사지 못하고, 분노를 조절하지 못해 아이와 함께 죽자며 이성을 잃는 사람들의 미국은 굉장히 낯설었다.
하지만 무엇이 현실일까? 지구의 파괴로부터 세계를 지키는 히어로들의 미국이 정말 있긴 할 것일까? 그런데도 히어로물 산업은 많은 돈을 벌고 있다. 다른 글에서도 한번 언급했듯이 레비스트로스에 따르면 이 사회는 귀중하다고 여기는 것에 지불을 한다고 했다. 실제로 존재하지 않는 히어로들이 실제로 존재하는 미국의 백인 빈민층들보다 귀한 대접을 받고 있다는 현실을 부정할 수가 없다.
이야기는 예일대학교 로스쿨에 재학 중인 주인공의 인터뷰 주간이 시작하면서부터 시작한다. 우리나라의 드라마나 영화라면 아마 어려운 환경의 주인공이 아마 로스쿨에 입학하면서 끝났을 것인데 거기서부터 시작이라는 것 자체가 이 영화가 얼마나 현실적인 이야기를 하려고 마음을 먹었는지 알 수 있다. 아무리 역경을 헤치고 예일 로스쿨에 진학했더라도, 사회에서 중요한 선택을 받기 위한 순간에 갑자기 "부유층과 빈민층 간의 문화적 유산", 즉 "그들 가족의 역사"의 차이가 그 영향력을 발휘하기 시작한다. 그건 한순간에 내가 정신을 차린다고 해결될 성질의 문제가 아니다. 온몸으로 단단한 벽에 부딪혔을 때의 막막함 앞에서 당신은 어떻게 할 것인가?
끔찍한 과거 따위 모두 버려버리고 훨훨 날고 싶은 주인공의 마음이 이해가 가면서도
우리가 과연 자신의 역사를 버릴 수 있는지, 그러기엔 너무 많은 기억과 행동과 관계가 얽혀버려 있는 게 아닌지 돌아보게 하는 영화의 흐름은 나 자신의 역사에 대해서도 내 관점이 아니라 다른 사람의 관점으로 바라보는 것이 어떻겠냐고 묻는다.
물론 그렇게 멋진 사람이 되고 싶지만,
현실은 힐빌리라는 것을 부인할 수 없는, 나는 평범한 사람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