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고 싶다. 하고 있어도 하고 싶다.
"제가 이상한 거예요?"
심리상담사에게 물었다.
감정노동자를 위한 심리상담인데 생뚱맞은 대화가 오간다. 다행히도 상담사는 어떤 것이라도 상관없다며 이야기에 귀 기울여 줬다.
"수요일은 독서모임에 가야 되고, 캘리그래피 수업도 있어요. 하아... 주말에 보강을 할 수도 있는데... 앗. 토익도 접수를 해서 영어책도 다시 봐야 하고, 맞다... 워드 실기도 접수를 했어요."
하고 싶은 일인지, 해야 하는 일인지 모르겠다. 무엇에 쫓기는 것도 아닌데 스스로를 못살게 구는 듯싶다. 늘 시간이 없다. 심리적인 시간이 없기도 하고, 물리적인 시간이 없는 것도 맞다. 그래서 본의 아니게 아침형 인간이 되었다.
새벽 4시에 눈을 뜬다. 책 한자 볼 시간이 없어서다. 예전엔 퇴근하고 나면 내 세상이었다. 애국가가 나올 때까지 TV를 틀다 자도 상관없었다. 주말에 허리가 아파서 일어날 만큼 늘어지게 잠을 자도 생활에 지장이 없었다. 그러나 지금은 다르다.
퇴근을 하고 집에 오면 아이와의 시간이다. 집에 도착하자마자 밥을 챙기고, 손을 잡아끌어다가 씻긴다. 숨바꼭질은 한번 시작하면 백번은 해야 되고, 얼마 전 가르쳐준 가위바위보는 천 번을 해도 부족하다. 밤 11시가 돼도 아이 눈은 말똥말똥하다. 에라 모르겠다 하고 방에 들어가면 밉다고 아우성치며 쫓아와 억지로 아이가 잠들어야 쉴 수 있다. 그즈음 되면 다 같이 잠을 잘 수밖에 없다. 나이는 먹고 에너지는 부족하다. 그러다 보니 갈수록 '홀로 시간'이 필요했었나 보다.
무리하게 캘리그래피 수업을 등록했다. 한 달에 3번 있는 수업이지만 제때 참여할 수 있을지는 미지수다. 책도 읽고 싶었다. 불특정 다수와 책에 대해 이야기 나누고 싶었다. 그래서 독서모임도 신청했다. 일주일에 한 번은 참석 알림 카톡이 날아온다. 여기에 직장인이니 자기 계발을 빼놓을 수 없다. 가장 만만해 보이는 컴퓨터 자격증부터 신청했다. 일단 접수하면 의욕이 생기겠지라는 마음으로 결제를 한다. 밤이 깊어갈수록, 해가 뜨는 시간이 다가올수록 마음은 더 조마조마하다. 내일 이만큼의 시간을 또 쓸 수 있을지 미지수 이기 때문이다.
새벽 4시에 일어나서도 시간에 쫓긴다. 유독 새벽 시간은 빠르게 간다. 영어책도 펴고, 캘리그래피 붓펜도 집어 든다. 구독 중인 유튜브 강의도 1.5배속으로 들어본다. 책상은 머릿속만큼이나 지저분하다. 가끔은 이렇게 아등바등 사는 모습이 끔찍이도 싫다. 벌려는 놓지만 성과가 없어서다. 그럼에도 아이를 키우는 직장인이 되고 나니 뭐라도 하고 싶다. 하면서도 또 다른 무언가를 하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