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제 7살이 된 딸과 제법 대화다운 대화가 이루어지고, 본인 소신을 나름 뚜렷하게 말하다 보니 최대한 그 아이의 눈높이에서 하루의 일정을 짜 봤다.
물론 유튜브에서 검색한 간단한 아침으로 나온 '황금볶음밥'을 만들며, 귀로는 아이의 목소리를 듣고, 남는 한 손으로는 스케치북에 일정을 적으며 이미 내 몸은 세 개로 나뉘어 멀티플레이를 시작했다.누가 다급히 날 쫓는 건 아니나 일단 늦은 아침이 되어 점심을 건너뛰거나 애매하게 배가 불러서 끼니를 건너지 않으려고 부단히 노력하며 아침 만들기에 애를 썼다. 어른은 하루 두 끼만 먹어도 될 것 같으나, 아이만큼은 삼시 세끼를 안해주면 안될것같은 느낌같은 느낌이랄까. 요리는 도통 늘지도 않고 맛에 대해 추호의 일가견도 없는 내가 이런 일을 해내려니 벌써 지쳐왔다.
"엄마는 안 먹어?"
"일단 너부터 먹어."
이유식을 줄 때처럼 어른 밥과 밍밍한 아이 밥을 따로 만들지는 않아서 좋으나 늘 먹다 남은 아이 밥과 반찬을 아까워서 먹다 보니 자꾸만 늘어나는 뱃살 때문에 일단 아이가 다 먹기를 기다리게 됐다. 혹시라도 밥이 남으면 그 밥에 따로 식사를 했다. 단 몇 분이라도 '편하게', '적당히' 먹어보려고 말이다.
아이를 키우는 건 정말 지치고 고되지만 이상하게 살은 찐다. 물론 그만큼 먹기에 그렇겠지만 치친 기색 없이 꿀렁꿀렁 찌는 살이 괜히 야속하다.
점심식사 전 일정은 '체육'이다. 말은 거창하나 놀이터에 나가서 원없이 노는 게 전부다. 그네는 천 번은 타는 것 같은데 질려하지 않고 미끄럼틀도 오르락 내리락만 백번을 하는 것 같은데 지치지 않는다. 아이가 놀 때 홀로 줄넘기라도 할라치면 백번을 넘기도 전에 아이가 날 찾는다. 코로나 때문에 놀이터는 대부분 비어있기 일수고 놀아줄 사람은 오직 나다.
그래도 이렇게 한바탕 놀고 나면 기분은 좋다. 이어지는 점심도 입맛이 돌아 뭘 줘도 잘 먹는다. 오늘의 점심은 '라면'이다. 있는 반찬 꺼내서 먹으면 그만이나 그마저도 귀찮고 싫어서 저녁은 밥을 주면 된다는 생각에 일단 인스턴트로 결정했다. 아침에 해준 황금볶음밥보다 더 잘 먹는다.
독박 육아는 오후가 더욱 힘에 부친다. 오전에 기력을 다 쓴탓에 내가 지치니 아이랑 놀기도 귀찮아진다. TV도 보고 싶고 책도 읽고 싶고 글도 쓰고 싶다. 그럼에도 주말만이라도 있는 힘껏 아이와 찐하게 놀아줘야 하기에 다시 힘을 내본다.
"나가자."
육아는 '돈'이다. 살면서 가장 필요하면서도 치사스러운 '돈'이라는 녀석이 빛을 발한다. 코로나만 아니었어도 주말 독박 육아는 각종 문화센터나 비싼 놀이공원에 돈을 투척하여 각종 서비스와 시설만 이용하면 아이도 나도 어럽지 않게 행복할 수 있었다. 지금은 문구점에서 색종이와 클레이, 슬라임 등 아이들이 좋아할 만한 장난감으로 그것들을 대체하고 있다. 구경하는데 한 시간 정도고 오며 가며 30분 정도를 쓸 수 있으니 이만한 게 없다. 쌓여가는 카드값과 띵동 띵동 울리는 문자 알림이 마음을 무겁게하는 만큼 육아는 한결 편해진다. 장난감을 사고 오는 길에 편의점에서 장난감보다 더 비싼 사탕과 젤리도 샀다.
"눈치껏 젤리 한 개만 사"
"눈치가 뭐야?"
눈치가 뭔지 설명하느니 그냥 사는게 낫겠거란 생각에 흔쾌히 원하는 걸 몽땅 사줬다. 그렇게 오후도 버티고 저녁을 먹었다. 집에 있던 시금치 된장국에 파김치에 우엉조림, 계란 후라이 등으로 밥을 줬다. 난 입맛이 없다. 그저 아이 입에 밥이 넘어가는 걸 보며 하루가 끝나간다는 희망을 찾을 뿐이다.
저녁 열시는 무조건 잠이다. 하루 종일 열심히 놀아준 덕분에 일단 누우면 금방 잠이 든다. 슬그머니 방에서 나와 TV를 켰다. 내가 좋아하는 OCN에서 드웨인존슨이 나오는 속이 뻥 뚫리는 액션 영화가 나왔다. 술이라도 마실 줄 알면 시원하게 드링킹 하고 싶지만, 손에는 아침에 내려놓은 다 식은 커피가 전부다. 혹시라도 아이가 깰까봐 커피를 우아하게 내려마실 수도 없다. 그럼에도 차디찬 커피가 그렇게 달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