밀란 쿤데라 《참을 수 없는 존재의 가벼움》 1편
어떤 분야든 고수의 반열에 오른 이들은 늘 "힘을 빼라"고 말합니다. 하지만 힘을 빼기 위해 안간힘을 쓰는 것조차 결국 또 다른 힘이 들어가는 법이죠. 우리는 때로 자유로워지겠다는 신념에 사로잡혀, 그 신념 자체에 짓눌린 채 살아갑니다.
WNM(FOCUS)는 밀란 쿤데라의 <참을 수 없는 존재의 가벼움>을 통해 삶의 역설을 들여다봅니다. 주인공 토마시는 가벼움을 수호하려 분투하지만, 역설적으로 그 자유는 그를 지배하는 강박적 의무가 됩니다.
평생 쥐고 있던 '가벼워야 한다'는 짐을 내려놓을 때 비로소 시작되는 진짜 자유. 나이 듦이 상실이 아닌 해방이 되는 지점은 어디일까요? 우리를 짓누르는 '신념이라는 무거움'을 걷어내고, 존재의 참된 평온을 조립해가는 과정을 함께 시작해보고자 합니다.
Q. 토마시는 테레자를 위해 성(性)적 태도를 ‘무겁게’ 바꿀 수는 없었을까?
토마시가 테레자의 무거움을 ‘존중’할 수는 있어도, 그 무게를 자기 삶의 기준으로 내면화하는 순간 그는 더 이상 토마시가 아니게 된다. 적어도 그는 그렇게 믿었을 것이다. 토마시에게 ‘가벼움’은 타인을 소유하지 않기 위한 윤리적 태도이자, 삶을 거짓된 의미(키치)로부터 보호하려는 방어 기제였다.
그에게 성적 자유를 통제당하는 것은 세상을 탐험하는 존재론적 감각을 구속당하는 일이며, 자신의 삶이 박제된 ‘키치’로 굳어지는 것을 의미했다. 따라서 그는 성행위에 ‘무거운 의미’가 부여되려는 찰나를 의도적으로 차단한다. 그에게 성이란 외부 세계에 점령당하지 않은 채 마지막까지 지켜내야 할 자유였기 때문이다.
Q. 토마시의 '가벼움'은 사실 '강박적 무거움'이 아니었을까?
그러나 역설적이게도, 진정으로 가벼운 사람이라면 바람을 피워도 그만, 안 피워도 그만이어야 한다. 하지만 자유를 수호하기 위한 토마시의 행동은 점차 그를 지배하는 강박적 의무이자 일종의 중독이 되어버린다. 그는 진정으로 가벼운 것이 아니라, 가벼워야 한다는 강박에 스스로를 가두고 만 것이지 않을까.
이는 소설 속에서 공산주의에 반대하며 자유를 부르짖는 행위가, 어느덧 반대편의 전체주의적 속성을 닮아가는 모습과 궤를 같이한다. 결국 토마시의 행보는 우리에게 질문한다: “당신이 끝까지 붙잡고 있는 그 ‘자유’는 진정한 존엄인가, 아니면 당신이 직면하기 두려워하는 무언가를 가리기 위한 전략인가?”
Q. 가벼움을 끝까지 밀어붙이는 것이 과연 가능한가?
가벼움의 철학을 실천하려 했던 토마시조차 테레자의 고통 앞에서는 완전히 가벼울 수 없었으며, 촉망받던 의사로서 누렸던 사회적 인정으로부터도 온전히 자유롭지 못했다. 그는 존재의 무거움을 끝내 떨쳐내지 못한 것이다. 끝까지 가벼움을 유지한다는 것은 결국 타인과의 모든 유대와 역사적 맥락을 거부해야 한다는 뜻인데, 이는 불가능한 영역에 가깝다. 결국 토마시의 가벼움은 테레자라는 '무거운 운명'과 충돌하며 끊임없이 흔들리는 불완전한 자유였을 뿐이다.
반면, 끝까지 가벼움을 실천한 사비나의 끝은 공허과 고독이었다.
Q. 나이 듦에 따라 가벼움을 내려놓는 것은 슬픈 일일까?
테레자는 토마시가 더 이상 젊지 않기를 바랐다. 그가 늙고 쇠약해진다면 더 이상 여자 문제로 자신을 불안하게 하지 않을 것이며, 비로소 그의 가벼움으로부터 해방될 수 있으리라는 기대 때문이었다. 실제로 토마시는 테레자를 위해 망명을 포기하고, 의사라는 사회적 지위를 잃고, 끝내 시골에 정착하며 자신의 '자유'를 하나씩 지워나간다. 마침내 토마시는 테레자의 바람대로 늙고 무기력해졌지만, 그 모습을 본 테레자는 승리감이 아닌 깊은 죄책감에 빠진다. 자신이 갈구했던 안정이 결국 토마시의 생기를 깎아낸 대가였음을, 그리고 자신의 사랑이 상대를 변화시키고 소유하려는 욕망이었음을 깨달았기 때문이다. 그러나 역설적이게도 토마시는 그 지점에서 생경한 평온을 얻는다. 평생을 도망쳐왔던 '무거운 책임감'을 기꺼이 받아들이는 순간, 오히려 '가벼워져야 한다'는 강박의 짓눌림으로부터 진정한 자유를 얻은 것이다.
어떤 분야든 고수의 반열에 오른 이들은 늘 "힘을 빼라"고 말한다. 하지만 힘을 빼기 위해 안간힘을 쓰는 것조차 결국 또 다른 힘이 들어가는 법이다. 토마시에게 나이 듦이란 무언가를 잃어가는 슬픔이 아니라, 평생 쥐고 있던 가벼움이라는 짐을 마침내 내려놓음으로써 얻게 된 진정한 가벼움이었을지도 모른다.
밀란 쿤데라 <참을 수 없는 존재의 가벼움> 시리즈는 총 3편에 걸쳐 매주 목요일에 공개될 예정입니다.
기다리지 않고 바로 확인하려면 : https://wnm.kr/wnmfocus-life
▶1편: 신념으로부터 자유롭겠다는 신념
▷2편: 사랑은 사실 트라우마와 결핍의 산물이지 않을까?
︎▷3편: 인간으로서 실천할 수 있는 최선의 사랑은 무엇인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