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름에 대한 존중, 가치에 대한 집중
노사관계 : 노동 시장에서 노동력을 제공하여 임금을 받는 노동자와 노동력 수요자로서의 사용자가 형성하는 이해관계 <고려대 한국어 대사전>
노사관계라는 단어는 그 자체로도 거리감과 답답함이 느껴지는 단어인가 보다. 초록창에 노사관계를 검색하려 들면 그 뒤에는 '개선', '개혁', '매듭 풀기', '법률' 등등이 추천 검색어로 뜬다. 얼마나 많은 노사관계에 관련된 문제가 있었는지 짐작이 가는 부분이다.
도대체 왜
무엇이 노동자와 사용자 사이를 이렇게 멀어지게 했을까? 이 둘의 사이를 좁힌다는 것이 가능한 것일까? 방법이 없다면 그냥 그대로 흘러가야 하는 것일까? 나는 이 문제에 대해서 꽤 자주, 긴 시간 고민해왔다. 그리고 나만의 노사관계 가이드라인을 정하기로 했다. 가이드라인을 정하려면 우선 서로에 대해 너무나도 다른 이 두 존재를 각각의 존재로 떼어놓고 특징을 분석하고 인정해야 한다.
화성에서 온 직원
직원은 늘 '가성비'를 따진다. 사업을 하다 보면 가격 대비 성능이 나오지 않는 선택을 하게 되는 상황이 많다. 그래서 가성비 외적인 관점에 익숙하고 굳이 가성비가 안 좋은 선택에 거부감이 없다. 그렇지만 직원은 다르다. 정해진 수익 내에서 최대한의 성과를 만들어야 하기 때문에 여러 주식, 펀드, 투잡 등 동일 자본 내에서 더 좋은 투자가 무엇인지 항상 고민한다. 직원에게 있어서 가장 많이 하는 투자는 최소 하루의 삼분의 일만큼 회사에 자기 인력을 투자하는 것이다. 그 대가를 월급이라는 보상으로 가져간다. 그러면 그 직원에게 가성비 좋은 투자란 무엇일까?
적게 일하고 똑같이 받는 것이다. 근무시간을 강제로 줄일 수 없다면 어떨까? 내 에너지라도 덜 써야 한다. 사람은 하루에 사용할 수 있는 에너지에 제한이 있다. 내가 근무시간에 더 많은 에너지를 쓸수록 퇴근하고 나의 N잡, 자기 계발에 쓸 에너지가 남아있지 않다. 집에 가면 그저 쉬고 싶어 지기 때문이다. 그래서 회사에서 최대한 에너지를 비축함으로써 내 인생을 위해 투자할 에너지를 남겨놔야 하는 것이다.
직원에게 급여는 생존이다. 물론 사장에게도 매출은 생명이다. 그러나 똑똑한 사장님들은 항상 예외의 상황에 대비하기 위해 일정 금액을 모은다. 적금과 같은 개념이다. 그러다가 위기의 순간에 그것을 쓰곤 한다. 하지만 직원에게 적금의 개념은 다르다. 위기라는 것 자체가 인생에 자주 오지 않는다. 그래서 적금의 목적도 위기관리가 아니라 특정 목적이 있다. 집을 사기 위함이라든지, 원하는 것을 사기 위함이라든지.
예를 들어 어떤 중소기업에서 사장이 굉장히 아끼는 직원이 있다고 하자. 그 직원은 고졸 사원으로 입사하였다. 배움에 아직 미련이 남아있던 그를 위해 회사에 다니면서 학사와 석사를 졸업할 수 있게 비용 및 근무 조건을 모두 맞춰 주었다. 그리고 그 직원의 자기 계발비도 별도로 챙겨주었고, 결혼식 때도 거액의 축의금을 주었다. 그런데 갑자기 코로나 19 사태로 회사가 어려워졌고, 그 직원의 월급이 밀리게 생겼다. 그 직원은 사장에게 퇴사를 통보한다. 생계를 유지하기 위해서는 어쩔 수 없는 선택이라고 한다. 그 직원의 급여를 고려했을 때 지금까지 모아둔 돈이 없을 리가 없다. 그렇지만 사장은 과연 '회사를 위해 3개월만 기다려 줄 수 없을까? 그 정도 모아둔 돈은 있을 거잖아. 회사도 너무 힘들어서 그래. 지금까지의 내 호의를 생각해서 함께 위기를 극복하려 노력해줄 수 없을까?'라고 얘기할 수 있을까? 아마 그럴 수 있는 사장도 몇 없고, 그래 봤자 소용없을 가능성이 높다. 급여는 직원들에게 생존이기 때문이다.
'가족같이 일할 분 구합니다'를 바라보는 구직자들의 시선을 어떨까? 저 문구를 처음 사용할 때만 해도 '아, 분위기가 좋겠구나, 잘 어울리는 분위기구나'라고 생각했다고 한다. 그런데 지금은 '노예처럼 부려먹겠구나'의 상징이 된 지 오래다. 직원들은 절대로 회사 사람들 혹은 상사, 대표와 가족 같은 관계가 되길 바라지 않는다.
직원 : "사장님, 퇴사하겠습니다. "
사장 : "갑자기 왜...?"
직원 : "더 좋은 곳에서 비교할 수 없는 조건을 제시했습니다. 죄송합니다."
사장 : "우리 회사에서 2,3년만 더 열심히 해서 잘 되면 그땐 그것보다 훨씬 더 좋은 조건이 주어질 거야. 좀 더 길게 보고 함께하는 게 좋지 않을까?"
이후의 대화는 더 볼 것 도 없다. 직원은 99% 확률로 퇴사를 한다. 비전보다 중요한 건 돈이기 때문이다. 미래에 주어질지도 모르는 돈은 직원에게는 돈의 가치로 느껴지지 않는다. 훗날의 성공만을 바라보는 사장과는 다르다는 것이다. 사람이 자신의 이익을 위한 선택을 한다는 것, 이익을 찾아 회사를 떠나는 것은 인간의 본성이다.
사장 : "자, 내 의견에 이견 있는 사람?"
직원들 : "...."
사장 : "아무 대답이 없으면 다들 동의하는 것으로 알아도 되겠지? 이상 회의 끝"
위 대화 내용에서 직원들은 다들 동의했을까? 절대 그렇지 않다. 직원들에게 그 사장은 이견을 말해봤자 소용없는 사람일 가능성이 많다. 동의를 하는 게 아니라 소용이 없어서 말을 안 하는 것뿐이다. 침묵의 기본은 거절이다.
흔히 사장님들은 직원이 자신에게 솔직해줬으면 한다. 그렇지만 직원은 절대 그렇지 않다. 많은 직원들이 하는 첫인사. "안녕하세요"부터 거짓인 경우도 많다. 하나도 안녕하지 않은데 인사를 건네고, 딱히 상사나 다른 직원의 안녕이 궁금하지 않은 것이 기본이다. 왜냐하면 언제나 '탈출'을 꿈꾸고 있기 때문이다. 그런데 탈출은 지능 순이라 먼저 탈출하고 있지 못하는 것일 뿐...(ㅂㄷㅂㄷ)
금성에서 온 사장
중소기업 혹은 스타트업에서 가장 시급이 낮은 사람은 사실 사장이다. 사장들은 주 100시간, 아니 그냥 매 순간이 근무시간이다. 나 역시 실제로 새벽에도 전화가 오고, 상견례 자리에서 전화를 안 받았다가 거래처 사장에게 "사업하는 사람한테 주문보다 중요한 게 있나 봐요?"라는 소리를 들은 적도 있다. 참았다. 참아야 다음에 그 사람에게 돈을 받을 것이 아닌가. 그렇게 돈을 받아 내야 승리하는 것이다. 사장들이 이렇게 많이 투자하는 이유가 뭘까? 결과가 없다면 모두 말짱 도루묵인데... 모든 사장들에게 주어진 암묵지가 바로 High risk, high gain이기 때문이다.
사장들은 간혹 급여가 제로인 경우도 있다. 소득세를 내는 경우가 그럴 때이다. 이 외에도 경기가 안 좋아 직원 급여는 줬지만 사장은 급여를 가져가지 못하는 경우들도 많다. 그렇지만 그들이 포기하지 않는 이유는 '언젠가 잘 돼서 한방에 벌어도 되니까'라는 생각이 있기 때문이다. '몇 달 돈 없다고 죽지 않아'라고 이를 악 물어본다.
잘 없지만 간혹 정말 가족만큼 애정을 쏟는 대표들도 자주 봤다. 나 역시 우리 조카나 우리 형에게 주는 개인 돈보다 직원들에게 쏟는 개인 돈이 훨씬 많다. 돈이 모든 것을 뜻하진 않겠지만, 정말 나와 같은 방향을 바라봐 주는 직원이 너무 고맙고, 이런 사람을 만난 게 감사해 가족보다 더 큰돈을 줘도 아깝지 않고 흔쾌히 줄 수 있는 경우들도 있다. 그런 대표를 본 적이 없다고? 물론 그럴수도 있다. 혹은 안타깝게 그게 당신이 아닐 뿐일 수도 있다.
사장들은 기본적으로 '회사가 잘되야 급여를 올릴 것 아니냐', '회사가 살아남는 게 우선이다'라는 마인드가 있다. 어떤 직원 입장에서는 굉장히 성과를 잘 내서 본인의 몫보다 100만 원 이상을 수행했지만 옆 부서의 직원은 큰 실수로 본인의 몫보다 1,000만 원의 손해를 보는 일이 생겼다. 이때 성과가 좋은 직원은 왜 상여금을 주지 않는지 짜증이 날 것이다. 그러나 사장 입장에서는 결국 회사는 손해를 봤고, 손해를 보는 상황에서 무슨 상여금 타령이냐는 생각을 할 것이다. 어떤 하나의 이벤트에 일희일비할 수 없고, 언제나 회사의 생존을 중심으로 생각해야 하는 것이 사장이다.
회사가 망할 때 직원들이 돈 한 푼 보태주지 않는다는 것을 사장들은 잘 알고 있다. 그래서 사장들은 언제나 가시가 서있을 때가 많다. 말하지 않더라도 스스로 외로운 존재라고 인식하고 있는 사람들이 많다.
리더인 사람들은 바쁜것이 기본이다. 항상 해결해야 할 일이 산더미고 머릿속은 늘 복잡하다. 직원은 항상 사장이 현업에 대해 잘 모른다고 생각하지만 대부분의 사장들은 일부 디테일 빼고는 어떻게 흘러가는지 잘 알고 있다. 그렇기 때문에 당신의 구구절절 이야기가 자신의 시간을 잡아먹는다고 생각한다. 언제나 효율을 찾는 사람들이고, 그 효율을 통해 원가를 1원이라도 더 내리려는 사람들이다. 그들이 시간을 소중히 여기고, 당신의 얘기를 듣는 것 보다 자신이 생각하는 더 나은 방법을 지시하는 것은 굉장히 자연스러운 것이다. 그래서 더 큰 규모의 회사일 수록, 더 큰 성공을 거둔 사람들일 수록 남의 말을 잘 경청하지 않는다.
일도 안 하는 사장이 왜 돈을 많이 가져가냐고? 일도 안 하는 사장이 만든 회사가 왜 지금까지 잘 되고 있는 걸까? 분명 그게 인맥이든 실력이든 그 사장은 분명 무언가를 갖고 있다. 일도 안 하는데 돈만 가져가면 나가서 한번 따라서 시도해보자. 아마 당신이 볼 땐 치졸한 사장이었을 지라도 그 시장에서 거래처들에게 꽤 평판이 좋을 가능성이 높다. 회사가 오랜 기간 폐업하지 않고 살아남았다는 것은 그게 정량적이든 정성적이든 누군가의 투자가 있었다는 것이다. 사장은 그 투자 비율이 최소 은행이자보단 훨씬 높아야 되고 감수한 리스크의 보상만큼 더 있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그렇지 않고서야 그냥 은행에 넣거나 은행이자보다 조금 더 나은 수익률의 것을 찾아 돈을 넣어놓는 게 좋지 않겠는가?
어떻게 세상 사람들이 다 같고, 동일한 유형으로 묶을 수 있겠는가? 당연히 모두가 위와 같지는 않겠지만 그 위치에서 갖는 '기본적 욕구'들이 있기 마련이다. 이렇게 둘을 떼어놓고 보면 노사관계에 문제가 생겼을 때 각자의 관점에서 바라보면 충분히 둘 다 인정할 수 있다. 상대방을 '이해'하려 하지 말고 그냥 그렇다고 인정하고, '어떻게 할 것인가'에 더 집중한다면 쓸데없는 감정 소모를 줄일 수 있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