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5년, 아직은 무더운, 9월이 다가오는 어느 날. 아르바이트와 집만 오가던 생활이 지겨워지기 시작한다.
평소 떠나고 마음을 삭히느라 TV에서 여행 프로그램을 자주 봤는데 마침 TvN에서 꽃보다 청춘-라오스 편을 방영하고 있었다.
배낭여행의 천국이란 말이 내 가슴에 불을 지폈다.
일은 다음 주면 끝나고 개학도 아직 2주 남은 시점.
정신을 차리고 보니 라오스행 비행기에 몸을 싣고 있다.
인천에서 라오스의 수도 비엔티안까지는 5시간 정도가 걸린다.
저가항공이라 큰 기대를 하지 않았는데 나름 야간비행이라 가볍게나마 기내식이 나온다. 기내식을 먹고 잠시 눈을 붙이니 착륙이다.
처음 만난 라오스는 어둠뿐이다. 택시를 타고 숙소로 이동하는 동안 가로등도 시원찮다.
어둠 가득한 이곳에서는 할 수 있는 게 딱히 없다. 체크인을 하며 내일 방비엥으로 가는 버스만 예약하고 여독을 푼다.
아침햇살이 내 눈꺼풀을 간지럽힌다. 버스 출발도 오후라 시간도 충분하다. 아침을 먹을 겸 근처 시장으로 발걸음을 옮긴다.
나는 여행을 가면 그 도시의 새벽시장을 꼭 가본다. 활기를 느끼며 하루를 시작할 수 있을 뿐만 아니라 저렴한 가격으로 현지를 느낄 수 있기 때문이다.
어제까지만 해도 주변에 아무것도 없다고 생각했는데 아침에 나와보니 꽤나 번화하다. 주변에 호텔들도 많고 조금 나가니 은행에 환전소, 여행사도 많다. 두 블록 앞이 비엔티안 메인 도로라고 한다.
시장도 메인도로 한편에 있어 길을 따라 걸어간다.
아직 이른 아침이라 도로에는 사람이 별로 없다. 하루를 시작하는 사람들은 분주히 움직인다. 나만 여유로운 것 같아 괜스레 미안하다.
조금 걸어가니 라오스 국립 문화회관이 나온다. 내부는 아직 열기 전이라 외부만 보며 지나간다.
시장이 안 열었다... 아쉽지만 다시 숙소로 돌아와 아침을 먹기로 한다. 즐거운 산책이었다.
아직 버스 출발까지 한두 시간 남았으니 숙소에서 느긋하게 짐을 정리하고 체크아웃을 한다.
로비에서 잠시 기다리니 누군가 내 이름을 부른다. 그 사람이 나에게 버스 타러 가는 게 맞느냐 묻는다. 그렇다 하니 따라오란다.
조그마한 트럭으로 안내한다. 마치 군용 트럭처럼 간이의자가 만들어져 있다. 설마 이걸 타고 방비엥까지 가는 건 아니겠지란 걱정이 마음속에 피어난다.
삐걱이는 의자에 앉으니 가이드가 차에 탑승한다. 덜컹거리는 소리와 함께 트럭이 출발한다. 한참을 돌아다니면서 사람을 태우기 시작한다. 좌석이 가득 찼는데도 중간 바닥에 앉으라며 계속 태운다.
바닥도 사람으로 가득 찼을 무렵 버스정거장에 도착한다.
그냥 픽업 서비스였다. 다행이다.
안내해주는 버스에 타고 밖을 보니 뭔가 친숙한 글씨가 보인다. 라오스에서는 중고버스를 많이 쓴다더니 사실인가 보다. 느낌이 안 좋다. 여행 오기 전에 봤던 여행기에서 에어컨이 안 되는 차들이 많다는 글을 심심찮게 봤었다.
설마가 사람을 잡았다. 찜통이 따로 없다. 차라리 트럭을 타고 가는 게 나았을 것 같다. 찌는듯한 동남아시아의 더위에 사람으로 가득 차 있는 버스는 마치 불지옥에 떨어진 기분이다.
다행히 창가를 보며 도시와 자연을 보고 가니 시간은 금방 간다.
한 시간 넘게 달렸을까 휴게소에 도착했다. 휴게소라 해봐야 조그마한 구멍가게에 화장실이 딸려있는 정도다. 음식을 팔고 있기에 하나 먹어본다.
이런 길을 한참을 달리다 보면 방비엥이라는 표지판이 나온다.
이제 도착이 눈앞이다.
내리니 현기증이 난다. 온몸이 딸에 절었다. 얼른 숙소에 들어가야겠다.
방비엥 시내는 걸어 다녀도 금방 다 돌아볼 정도로 작다.
버스정거장에서 한 10분 걸었을까 내가 예약해둔 숙소가 보인다.
라오스에서 숙소를 결정할 때 가장 중요하게 생각한 건 에어컨의 유무였다. 숙소 상당수가 에어컨 없이 선풍기만 있는 곳이 많으니 꼭 확인하고 결정하자. 모기도 많아 창문도 잘 못 여는데 에어컨조차 없으면 끔찍하다. 체크인을 하고 에어컨을 켠 뒤 잠시 누워있는다.
1시간 정도 잠들었을까. 내일 참여할 투어를 예약해야 하니 시내로 걸어간다. 옛 비행장 터를 지나 시내로 걸어가면 여행사가 줄지어서 있다. 이곳저곳 돌아다니며 투어를 알아보고 예약을 잡는다. 아직 해가 떠있으니 여행사에서 근처 갈만한 곳을 추천받았다.
탐짱동굴까지는 걸어가도 되지만 라오스까지 왔으니 자전거를 렌트한다.
방비엥 리조트 입구를 지나 조금 더 가면 남송 강 위에 낡은 현수교가 자리 잡고 있다. 이 다리 너머로는 자전거를 타고 못 지나가니 자전거를 주차하고 가란다. 수많은 자전거 사이에 나도 자전거를 묶고 다리를 건너간다.
삐걱거리는 다리 아래로 황토색의 남송 강이 지나간다. 생각보다 유속이 빠르다. 우기인 탓에 물이 많이 불어난 모양이다.
다리를 건너 조금 지나가면 수초로 가득한 연못이 나온다. 매우 깨끗하다.
라오스에서는 물에 대해서 신기한 경험이 많다.
가장 많이 볼 수 있는 풍경이 물만 고여있으면 남녀노소 할 것 없이 물에 들어가 있다. 나도 그들 따라 수영복을 입고 있는 상황이면 따라 들어가 놀았다. 같이 수영하고 다이빙하고 있으면 어느새 어울려 함께 즐거운 시간을 보내게 된다.
이때는 그런 상황이 익숙하지 않아 청바지를 입고 왔더니 물속에서 노는 그들이 마냥 부럽다.
연못을 지나쳐 조금 더 가다 보면 탐짱동굴로 올라가는 계단이 나온다.
정상에 올라 아래를 보면 방비엥 시내가 한눈에 들어온다.
탁 트인 풍경이 그동안 아르바이트로 지친 내 마음을 위로해준다. 저녁시간이 다가와서 그런지 집집마다 굴뚝들이 연기를 뱉고 있다.
벤치에 앉아 그 여유로운 풍경을 한참 바라본다.
뒤편으로 동굴 입구가 보인다. 입구는 시멘트로 만들어져 매우 투박하다. 큰 기대 없이 동굴로 들어간다.
종유석으로 가득한 벽면은 매우 아름답다. 오랜 세월 만들어진 동굴은 종유석 하나하나에서 생동감이 느껴진다. 동굴 입구만 해도 엄청 더웠는데 이 안은 추울 정도로 시원하다. 동굴은 그리 깊지는 않아 금방 돌아볼 수 있다. 나가려니 아쉽다.
배도 고프고 자전거도 반납해야 하니 다시 시내로 돌아가기 위해 계단을 밟는다. 내려가는 길에 이름 모를 꽃이 내 발걸음을 붙잡는다.
다시 돌아온 방비엥 시내. 고소한 냄새가 멀리서 풍겨온다. 냄새를 따라가 본다.
꽃청춘에서 사람들이 먹던 로띠이다. 버터에 얇게 편 반죽을 튀기고 그 위에 바나나와 누텔라 등 다양한 재료를 얹어준다. 맛없기가 힘든 조합이다. 한국에서도 잘 팔리지 않을까 하는 생각을 문득해본다. 먹기 위해 포크를 드는데 갑자기 빗방울이 떨어진다. 동남아시아의 스콜은 이렇게 막무가내로 찾아온다. 얼른 숙소로 돌아가야겠다.
다시 숙소로 돌아가는 길. 강아지 한쌍이 풀밭에 누워있다. 나도 얼른 눕고 싶다.
숙소에 도착했다. 이제 본격적으로 비가 오려나보다. 비가 그칠 때까지 숙소에서 쉬기로 한다.
그렇게 한 시간이 지났을까 드디어 비가 그쳤다. 비 온 뒤라 습기는 높지만 낮에 느꼈던 더위는 사라진 지 오래다. 저녁시간도 다가왔으니 시내로 살살 걸어가 본다.
아까는 조용하던 시내가 북적북적하다. 다들 트럭에서 내리는 걸 보니 투어를 마무리하고 왔나 보다. 배낭여행의 천국이라는 이름을 조금이나마 공감하게 된다.
걸어가다가 맛있는 향기가 나는 식당으로 몸을 돌린다. 자리에 앉으니 메뉴판을 준다. 라오스에 왔으니 맥주 하나와 볶음밥 하나를 시킨다. 맥주가 먼저 나왔다. 맥주병의 서리가 얼마나 시원한지 말해준다. 한 모금 마신다. 더위가 사라질 정도의 청량함이 목구멍을 통해 느껴진다. 방비엥의 활기찬 분위기를 안주삼아, 아름다운 풍경 안주삼아 홀짝홀짝 술잔을 기울인다. 절반쯤 마시고 나니 볶음밥이 나온다. 향기가 예사롭지 않다.
라오스에서는 음식에 대해 좋았던 경험이 많다. 다른 동남아시아 국가 음식보다 향신료 향이 강하지 않은 것 같다. 관광지라 그런지 모르겠다. 식당 대부분이 맛있고 양도 많으며 무엇보다 저렴하다. 고기 듬뿍 얹은 쌀국수가 1000~1500원, 맛있는 과일이 가득 들어간 생과일주스가 1000원 정도. 정말 원 없이 먹었다.
과일주스는 하루에 5번 이상은 마신 것 같다. 최고의 디저트다.
라오스에 한국 관광객이 많은가 보다. 이런 게시판도 있다. 들어가진 않았지만 계속 눈길이 간다.
생각날 때마다 마신 과일주스. 설탕을 넣지 않았는데도 너무 맛있다. 아직도 잊을 수가 없다.
옛 활주로 터에는 야시장이 열렸다. 낮에도 열려있었지만 밤이 되니 더욱 활기차지고 할 것도 많아졌다.
시장은 수많은 음식에서 흘러나오는 다채로운 향기로 가득하다. 상인들은 각자 가져온 흥미로운 물건을 보여준다. 관심이 생긴 사람들과 상인들, 서로 재밌게 떠드는 관광객들로 시장은 떠들썩하다. 다양한 공연이나 오락거리들에 사람들이 몰린다. 그래서 시장이 좋다. 항상 처음 보는 곳에 가면 꼭 시장에 찾는 이유이다. 시장에 가면 그곳의 전통과 도시의 활기를 온몸으로 체험하고 올 수 있다. 비엔티안의 아침 시장을 못 간 게 다시 한번 아쉬워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