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지의 땅과의 조우
때는 2016년. 아프리카로 떠나기 전까지 거슬러 올라간다. 1월. 아프리카 여행을 준비하다가 아르헨티나에서 FIP(세계 약사 모임, 아프리카에서 열린 IPSF, 세계 약대생 모임의 형제뻘인 모임이다.)가 열린다는 이야기를 듣고 남미에 대해 관심이 생겼다. 당시 같이 아프리카에 갔던 인원중 몇몇이 남미를 가자는 이야기를 해오길래 살짝 혹했지만 도저히 내 주머니 사정이 허락하지 않아 다음으로 미뤄놨다. 그러다가 2016년 말이 되어 실습을 시작했다. 2018년은 본격적인 실습에 투입하게 되어 여행은 불가능하니 결국 마지막 방학이 2017년 여름이었다. 졸업하면 곧바로 일을 시작하게 될 것이다. 결국 장기여행을 갈 수 있는 마지막 기회인 것이다. 그때 갑자기 남미가 떠올랐다.
그래! 미지의 대륙 남미로 떠나는 거다.
혼자 계획을 세우고 있는데 옆에 있던 동기가 관심을 보인다. 그렇게 동행도 구해졌다. 이제 떠날 날만 기다리다 보니 2017년 1학기 기말고사가 끝이 났다.
공항으로 떠나자!
남미로 넘어가는 방법은 크게 2가지가 있다. 유럽을 경유해서 브라질 등이 있는 남미 동부로 가는 법. 미국 서부를 경유해 페루 등이 있는 남미 서부로 가는 법이다. 가격이 제일 저렴한 방법은 LA를 경유해 페루의 수도 리마로 가는 방법이다. 우리는 비행기표를 조금 늦게 구한 것도 있고 리마로 들어가 리우데자네이루에서 한국으로 돌아오는 일정이라 비행기 가격만 120만 원이 들었지만 리마에서 인천으로 오갈 계획이면 왕복 70~100만 원이면 충분히 비행기표를 구할 수 있다. 리마까지 비행시간은 대략 20시간 정도. 그래서 많은 사람들이 LA에서 잠시 쉬면서 구경을 하다가 남미로 들어간다. 특히 칸쿤으로 신혼여행 가는 경우가 그러하다.
친구의 집이 부산이라 우리는 기차에서 만나기로 한다. 당시에는 인천공항까지 연결되어서 최선의 선택은 KTX였다. 같이 먹을 간식으로 빵을 사다 보니 기차 시간이다.
떠나보자!
방학이 시작되어서인가 공항에는 사람이 많다. 조금 일찍 도착해서 공항 구경을 시작한다.
면세점에서 만약을 대비해 멜라토닌을 산다. 참고로 멜라토닌은 일종의 호르몬으로 생체리듬을 조절하는 역할을 한다. 그래서 보통 가벼운 불면증이나 시차 적응이 힘든 경우 먹으면 좋다. 일반적으로 2mg을 취침 2시간 전에 복용하는데 오늘은 저용량이 남은 게 없어 10mg을 사서 쪼개 먹었다. 우리나라에서는 전문의약품이라 처방을 받아야 살 수 있지만 쿠팡이나 이런 데서도 판다. 하지만 임신을 앞둔 사람들은 장기 복용은 추천하지 않는다.
시차 적응을 위해 하나 샀지만 정작 남미에서는 안 쓰고 한국 와서 먹었다. 역시 불면증은 스트레스에서 오는 법이다.
비행기에서 딱히 할 게 없어서 테트리스를 했는데 1위부터 8위까지 전부 내기록으로 채워 넣었다. 친구가 이상한 눈으로 쳐다본다.
창가에 앉으면 밖의 구름을 보는 재미도 쏠쏠하다. 저 밑으로 비행기 한대가 지나간다. 그들도 설렘을 안고 떠나고 있겠지.
첫끼는 와인과 함께.
참고로 기내식은 남는 음식이 있다면 리필이 가능하다. 그리고 음료도 트레이에 있는 것 말고도 정말 다양하게 준비되어있다. 특히 주류의 경우가 그러하다. 마시고 싶은 게 있으면 한번 물어보자. 바가 멀리 있지 않다. 그 외에도 간식의 종류도 다양하다. 승무원들에게 정중히 부탁해보자.
벌써 비행기에서 2끼째. LA에는 언제 도착하는가.
얼마를 기다렸을까. 정신이 아득해질 즈음 LA에 도착했다는 기장의 안내를 듣고 밖을 본다. 아래로 나성의 너른 풍경이 펼쳐진다. 아쉽게도 할리우드라는 간판이 보이지 않았다.
LA의 체류시간은 1시간 반. 아예 1박을 할 걸 그랬나 싶다. 그래도 환승 중에 잠시 밖에 나가서 LA의 공기 한번 들이쉬고 다시 들어왔다. 뜨거운 바람이 불어온다. 내가 있는 곳이 LA임을 다시 한번 일깨워준다.
어느덧 리마로 가는 비행기에 몸을 싣는다.
리마에 내렸을 때는 깜깜한 밤이다. 친구와 우버를 타고 호텔까지 이동한다. 리마의 밤은 매우 으스스하다. 창문마다 철창이 쳐져있고 거리에도 사람이 하나도 없다. 우버가 숙소를 잘 못 찾아서 헤매고 있기에 근처 큰길에 내려달라 하고 걸어 들어간다. 숙소 내부는 꽤나 깔끔하다. 중정이 있는 복도를 지나 조그마한 거실에 도착했다. 거실과 연결된 문을 열고 들어가니 침대 2개와 냉장고 에어컨, 조그마한 화장실이 딸린 아늑한 방이 나온다. 이곳이 우리가 잠시 머물 곳이다. 냉장고와 에어컨 소리가 조용하게 웅웅거린다. 친절한 주인의 안내로 편안한 밤을 맞이 할 수 있었다. 둘 다 긴 비행에 지쳤나 바로 곯아떨어진다. 첫날부터 멜라토닌은 의미가 없다.
리마의 아침은 어제와 완전 딴판이다. 활기찬 거리는 조금 남아있던 여독까지도 날려버린다.
숙소 바로 앞에 있는 케네디 공원에는 parroquia la virgen milagrosa라는 성당이 있다.
내부로는 들어가 보진 못했다. 케네디 공원 앞에 꽃청춘에서 갔던 샌드위치 가게인 라 루차가 있다. 맛은 나쁘지 않았다.
길을 가다 보니 약국이 보이기에 사진 한 장을 남긴다. 남미 여행에서 꼭 필요한 것 중 하나가 고산병 약이다. 우리나라에서는 처방을 받아야 하고 워낙 희귀한 약인 데다 비급여라 약값 자체도 매우 비싸다. 하지만 고산이 많은 남미라 그런가 우리 돈 만원 정도면 20알이 들어있는 한통을 살 수 있다. 미리 사서 가지 말고 현지에서 사는 것을 추천한다. 약은 나중에 샴푸 등 필요한 물건 살 때 사기로 하고 일단 리마 관광을 떠난다.
제일 먼저 간 곳은 와이키키 해변. 숙소에서 미라플로레스를 지나 천천히 걸어가니 20분 정도 걸린 것 같다.
엄청난 파도다. 눈 앞에 태평양이 넓게 펼쳐져있다. 저 파도는 얼마나 멀리서부터 왔을까. 신기한 기분이다.
인포메이션 센터가 있기에 시내까지 가는 방법을 물어보니 센터 앞에서 버스 타고 가거나 해변까지 내려간다면 택시를 타란다. 아 그렇군요.
사랑의 공원을 지나가면 와이키키 해변까지 내려가는 길이 나온다.
워낙 절벽이 높아 내려가는 것도 일이다. 내려가 보니 택시 타란 이유를 알겠다. 다시 올라갈 엄두가 안나는 높이다.
가판대에 잉카 콜라가 있어서 하나 사 먹었다. 내 취향은 아니다…
파도가 높아서 그런가 서핑하는 사람이 많다. 교육해주는 사람도 많으니 만약 가게 된다면 한 번쯤 도전해보는 것도 좋을듯하다.
길을 가다 보니 전깃줄에 신발이 매달려있다. 당시는 큰 의미를 두고 지나가지 않았었다. 이후 찾아보니 종교적 이유 등 다양한 이유가 나왔지만 중론은 두 개 정도인듯하다. 하나는 근처에 마약상이 있다는 것. 두 번째는 갱단 간의 다툼으로 살인사건이 있었단 것. 결론은 신발이 걸려있는 것을 본다면 그 지역을 피하는 게 좋다.
남미의 모든 도시의 공통점은 아르마스 광장이 도시 한중간에 있고 그 옆에는 성당이 있다는 점이다. 이것은 과거 식민지 수탈 당시의 산실이다. 아르마스 광장(무력을 뜻하는 arm과 같은 뜻.)은 스페인의 무력을 상징하고 그 옆의 성당은 원주민에 대한 포교를 상징한다. 특히 이곳에 무기고가 있기도 했단다. 그래서 아직도 군대 및 경찰의 순찰의 시작점이 아르마스 광장인 곳이 많다. 리마도 마찬가지다. 특히 수도여서 그런가 대통령궁도 이 광장에 있다. 게다가 번화가도 이 광장과 연결되어있다. 남미의 대부분의 도시가 아르마스 광장을 중심으로 퍼져나간다.
신도심 내의 한 식당에 들어갔다. 당시에는 스페인어를 몰라 메뉴판의 그림 중에 적당히 고기가 많아 보이는 걸로 시켰다. 다양한 고기를 구운 요리인 아사도이다. 정말 많은 고기가 나온다. 저게 한국돈 만원 정도. 먹다 먹다 지쳐 감자는 하나도 못 먹었다. 남미의 음식답게 요리는 상당히 짜다. 항상 Sin sal(소금 빼주세요)을 외쳐보자.
친구는 잉카 콜라가 맘에 들었나 보다. 이번에도 주문한다.
구시가지는 치안이 안 좋다고 하니 다들 조심하시길 바란다. 강력 범죄는 없지만 소매치기는 많다고 한다. 얼핏 보아도 치안이 좋아 보이지는 않는다.
남은 감자를 싸들고 버스를 타고 숙소로 이동한다. 가는 길에 근처 마트에서 샴푸, 면도기, 비누, 소로체필 등 필요한 것들을 구매하고 나니 벌써 밤이다. 숙소 근처에서 기념품을 사고 숙소로 돌아간다. 맥주 한잔하고 일찍 잠에 든다. 내일은 새벽에 첫차를 타고 이카에 갈 예정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