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아시스에서의 휴식. 와카치나
이른 새벽. 아직은 어둠이 가득한 길을 걸어간다. 우리는 버스를 타고 와카치나로 향한다.
2층 버스에 타고 가는데 운 좋게도 제일 앞자리의 창문 앞이 비어있다! 둘이서 하나씩 자리를 잡는다.
정면의 모습도 멋지지만 우측이 더욱 압권이다. 사막을 향해 엄청난 파도가 친다. 태평양에서부터 건너온 파도이다.
가는 길에 피스코라는 도시를 들렀다. 펭귄이 유명한 곳이란 걸 나중에 알았다. 다른 친구가 해준 말로는 꽤나 괜찮았다고 한다. 다음에 다시 올 때는 들렀다 가야겠다.
해가 슬슬 머리 위에 있을 즈음 드디어 이카가 눈앞이다. 구름이 많아 걱정이다. 이카 시내에서 버스를 갈아타서 와카치나로 들어가기로 한다.
한 20분쯤 갔을까? 도착한 와카치나는 구름 한 점 없이 맑아 눈이 부실 정도다. 버스터미널에서 구름이 많아 걱정된다고 승무원에게 말했더니 분명 맑을 거라 했었다. 그의 말이 정확했다. 도심과는 다르게 와카치나에 도착하니 사막임을 과시하듯 건조함에 숨이 막힌다. 그 와중에 호수의 반짝임이 환상적이다. 이것이 오아시스구나! 사막을 헤매다가 이곳을 접한다면 아마 바로 뛰어들지 않았을까. 난생처음 보는 오아시스는 신비롭다. 산만큼 거대한 모래언덕 한 중간에 와카치나 라군이 존재한다. 야트막한 건물들 뒤로 그것의 배는 되어 보이는 모래언덕이라니 신기할 따름이다. 심지어 이 언덕이 매번 옮겨 다닌다도 한다고 생각하니 자연의 위대함에 경외감이 든다.
금강산도 식후경! 일단 예약해둔 호텔로 이동해서 체크인을 하고 짐을 푼 뒤 밥을 먹으러 나온다. 이른 점심이라 열려있는 식당이 별로 없어 버거집으로 향한다. 생각 이상으로 맛있다. 매우 만족.(그리고 다음날 아침도 이곳에서 먹었다)
식사를 했으니 와카치나 호수를 돌아다녀볼까!
아. 구경전에 오늘 여기온 목적을 해결해야지. 일단 버기 투어와 샌드 보딩을 예약한다.
그리고 다시 라군으로 향한다.
물이 탁해 보이지만 물비린내는 전혀 없다. 그래도 물에 발을 담그고 싶진 않다.
뒤로 보이는 산이 모래언덕이다. 야트막한 동네 뒷산 정도 높이는 되어 보인다.
이제 해가 머리 위에서 조금 더 지나간 시점. 버기 투어를 떠날 시간이다. 약속 장소에 가니 버기 여러 대가 서있다. 나중에 안 사실이지만 우리 숙소 뒤쪽이 투어 시작점이다. 안내에 따라 버기에 탔더니 다른 일행을 태우러 도시 한 바퀴를 돈다.
그리고 드디어 출발!
두근두근하다. 가파른 모래언덕을 빠르게 올라간다. 그러고는 쏟아질듯한 내리막길을 미끄러지듯 내려간다.
그리고는 점프!
순간적인 무중력을 경험한다. 아찔한 운전이 한참 지속된다.
높은 모래언덕도 뛰어넘고 열심히 차를 타고 달리다 보니 전망대에 도착한다. 경이로운 사막이다. 이집트에서 봤던 사막과는 또 다른 느낌이다.
아름답다. 노을 때는 더 아름답다니 기대된다.
드디어 샌드 보딩 도전할 시간이다. 매우 신난다. 한번 서서 타보는 것을 도전해보았지만 발이 잘 고정 되질 않아 스노보드 타듯이 되진 않는다. 이것이 투어를 잘 골라야 하는 이유이다. 어떤 투어에서는 발에 고정되는 바인딩이 있어서 서서 탈 수 있는 경우도 있다고 한다. 좀 더 자세히 물어볼 걸 그랬다.
샌드 보딩은 다 좋은데 두 개의 단점이 있다. 하나는 옷 속에 모래가 가득해진다는 점과 내려간 만큼 다시 걸어 올라가 야한다는 점이다. 타는 동안은 전혀 신경 쓰이지 않을 정도로 재미있긴 했다. 비록 이후 숙소 바닥이 사막이 되어버렸지만.
정신없이 즐겼나 보다. 벌써 해가질 때가 되었다. 가이드가 노을 명소에 우리를 데려간다. 벌써 많은 팀들이 도착해있다.
사막에서의 노을은 환상적이다. 한 번도 경험해보지 못한 아름다움이었다. 외로울 정도로 아무것도 없는 사막이다. 그래서 더욱 내 내면의 외로움을 마주할 수 있는 것이겠지. 시릴 정도로 푸른 하늘이 점점 붉어지기 시작하자 사막의 모래도 따라서 발그레지기 시작한다. 고독의 아름다움이 이런 것이리라.
문득 나미비아의 풍경이 상상된다. 작년 아프리카에 갔을 때 대륙의 서쪽은 전혀 생각하지 않았었다. 이후 친구가 나미비아에서 찍어온 사진을 보여주었다. 그 순간 나미비아는 나의 버킷리스트에 이름이 올라갔다. 아마 이런 비슷한 풍경이었겠지.
다시 와카치나로 돌아가는 길. 저 멀리 조그마한 마을의 모습이 보인다.
오늘 저녁식사는 전통요리인 세비체와 볶음밥이다. 세비체는 생선회를 얇게 썰어 레몬즙이나 라임즙에 1시간 정도 절인 후 양파, 토마토, 고수 등을 다져 올리브유에 버무려 숙성한다. 새콤한 세비체의 맛과 함께 곁들여 먹는 고구마의 달콤한 맛이 조화로워 상당히 매력적인 음식으로 유명하다. 하지만 생선의 신선도와 관리 문제 때문에 장염에 걸리기 딱 좋은 음식이기도 하다. 누군가 말하기를 세비체는 유명한 전문점 가서 먹지 않으면 탈 나기 딱 좋은 음식이다 라고 했던가. 이번이 그런 경우였다. 우리는 다른 사람의 충고를 들었어야 했다. 한입을 먹었더니 식초 특유의 향이 아닌 시큼한 맛이 살짝 느껴지길래 친구에게 안 먹는 게 좋지 않을까 란 이야기를 했다. 하지만 친구는 괜찮다면서 한 숟가락 크게 먹는다. 나도 조금 더 먹다 볶음밥 위주로 식사를 했다.
아니나 다를까. 친구는 다음날 탈이나 버렸다. 이럴 때를 대비해 정로환을 챙겨가길 잘했다.
여행자 설사 같은 질병 등 새로운 나라에 갈 때, 특히 위생상태가 좋지 않은 곳을 갈 때는 식사와 음료를 주의해야 한다. 흔히 말하는 물갈이를 하는 사람들은 더 조심해야 한다. 꼭 지사제 등의 상비약들을 챙겨가도록 하자. 쉽지 않게 떠난 여행인 만큼 아프면 서럽지 않겠는가. 조금의 약이 여행의 즐거움을 지켜줄 것이다.
밤이 되니 별이 보고 싶어 졌다. 숙소에서 나가 모래언덕을 올라간다. 놀랍게도 호텔 와이파이가 잡힐 정도의 거리에 모래언덕이 있다. 그래서 카메라를 설치하고 친구와 함께 모래언덕에 앉아 맥주 한잔을 하며 별을 바라본다. 남반구의 별은 확실히 우리가 보아왔던 별과는 달랐다.
별이 궁금한 사람은 우리뿐만이 아니었나 보다. 친구와 둘이 이런저런 이야기를 하고 있으니 저 멀리서 우리나라말이 들려온다. 고요한 사막은 모든 소리가 가깝게 들린다. 이들의 여행에 행복이 가득하길 기원해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