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들이 만드는 환상의 그림. 나스카
와카치나에 있는 투어 샵에서 나스카 경비행기 투어를 예약하고 나니 버스시간까지 아직 시간이 남아있다.
아침을 먹기 위해 어제 점심을 먹은 식당으로 간다. 아침으로 팬케이크를 하나씩 시켰다. 맛있게 만 팬케이크 위에 누텔라를 얹은 것과 캐러멜을 얹은 것을 시켰는데 매우 만족스럽다. 안에 가득 들어있는 과일이 특히 마음에 든다.
아직 친구는 상태가 영 안 좋은가 보다. 급하게 화장실을 다녀온다. 그래도 다행히 어제만큼 심하지는 않다. 아침을 먹고 주변 기념품점을 돌아다닌다. 특별히 손이 가는 것은 없다.
이제 출발할 준비를 하고 버스를 타러 간다. 어제와는 반대로 우선 이카로 이동한 뒤 나스카로 향하는 버스를 탄다.
남미는 생각보다 버스가 잘 되어있다. 어느 도시든지 연결이 되고 의자도 생각 이상으로 편하다. 가격도 저렴하고 기내식도 제공해준다. 단, 브라질에서 버스를 탈 때는 기내식이 안 나왔으니 먹을걸 챙겨가자. 심지어 와이파이도 꽤나 잘 터지고 화장실까지 있으니 말 다했다. 이중에 가장 좋은 장점은 역시 풍경을 실시간으로 보면서 갈 수 있다는 점이다. 반면에 단점은 시간이 상당히 오래 걸린다는 점이다. 워낙 거리가 멀다 보니 최소 10시간 이상을 타는 경우가 수두룩하다. 사실 여행자에게 시간은 상당히 중요한 요인중 하나이다. 그래서 가능하다면 비행기를 추천한다.
건조한 곳답게 풀 한 포기 나지 않는다.
간단하게 나온 기내식으로 허기진 배를 채운다.
그렇게 한참을 달렸을까. 나스카에 도착한다. 우버를 타고 투어 샵으로 이동한다. 우선 짐을 풀고 잠시 기다리니 가이드가 공항으로 출발하잔다. 공항으로 가는 내내 건조해 보이는 황무지가 펼쳐진다. 모래사막이던 와카치나와는 또 다른 느낌이다. 황무지를 달리다 보면 나스카 라인이 어떻게 지금까지 남아있는지 조금은 이해가 된다.
드디어 그 유명한 나스카 라인을 볼 수 있다! 두근거리기 시작한다.
나스카 경비행기 공항. 여기에도 투어 샵이 많다. 아무래도 나스카 라인 투어 위주로 운영하다 보니 그리 크지는 않다.
체크인을 하고 들어간 대합실. 아쉽게도 친구랑 찢어져서 비행기를 탔다. 이때부터 당했다란 생각이 조금씩 든다. 분명히 4인용으로 우리 둘은 같은 비행기에 탄다로 예약했는데 가니까 자리 없다면서 6인용으로 나눠서 태운다. 기분이 확 나빠진다. 항의를 해도 영어 잘못한단다. 스페인어를 배워야겠다는 생각이 든 첫 번째 순간이다.
어쩌겠는가. 나스카까지 왔으니 나스카 라인을 보긴 해야지. 생애 첫 경비행기라니! 다시 떨려오기 시작한다.
경쾌한 프로펠러 소리가 들리고 잠시 후 비행기의 창문으로 활주로가 빠르게 지나간다. 잠시의 부유감과 함께 활주로에 조그마한 그림자만 남긴다. 드디어 건조한 나스카의 광활한 황무지가 눈에 들어오기 시작한다. 저 밑에 풍문으로만 들었던 나스카 라인이 보인다. 경이롭다. 시끄러운 비행기 소음 사이로 기장의 안내가 들려온다.
황무지를 배경 삼아 그려진 그림은 매우 매력적이다. 까마득히 오래전 흘러갔을법한 강의 흔적이 이곳의 건조함을 말해준다.
비행기에 타기 전 나눠주었던 지도와 기장의 설명에 귀를 기울이다 보니 점점 울렁거리기 시작한다. 좌우의 승객들 모두 보여주기 위해 팔자 비행을 하다 보니 승차감이 좋지 않다. 어느 순간부터 나스카 라인이 눈에 들어오지 않는다. 분주히 셔터를 누르던 손은 어느새 손바닥을 누르고 있다. 너무 쉽게 생각해 멀미약을 챙기지 않은 게 실수이다.
이제 비행기에서 내려 다시 투어 샵으로 향한다. 너무 지쳐 일단 쉬기로 한다. 쿠스코행 버스는 밤이니까 일단 눈을 붙인다.
몇 시간이 지났을까 밖이 어둡다. 투어에 포함되어있는 저녁을 가볍게 먹는다. 친구는 아직 상태가 안 좋은지 밥 생각이 없다고 한다. 세비체를 잘못 먹은 데다 나보다 멀미가 심했으니 음식을 삼키는 게 쉽지 않은 모양이다. 나도 아직 속이 안 좋아서 조금만 먹고 짐을 꾸린다.
버스정거장까지 데려다주는 게 투어에 포함되어 있어 가이드에게 픽업을 부탁했더니 잠시 기다리란다. 버스 출발 20분 전인데도 아직도 느긋하다. 우리가 아무리 재촉해도 기다리란다.
결국 화가 난 우리는 당장 택시 부르라 하고 택시를 타고 간다. 마지막에 기분을 잡쳤다. 다시 한번 관광객을 대하는 우리의 태도가 그 나라에 대한 이미지에 큰 영향을 끼친단 것을 깨닫는다. 우리가 민감하게 군다고 생각할 수 있지만 남미에서 버스를 타는 건 비행기를 타는 것과 유사하다. 체크인을 하고 짐을 맡기고 몸 검사도 하고 탑승을 한다. 짐은 승무원이 직접 트렁크에 넣어 도착할 때까지 열어주지 않는다. 그러니 귀중품은 꼭 트렁크에 넣고 간단히 필요한 것만 챙기고 타면 된다.(들고 탄 짐에서 잠시 손 떼고 화장실 간 순간 그건 당신의 것이 아니다) 그런 상황이니 이미 20분도 빠듯한 상황인 것이다. 게다가 익숙지도 않은 도시이니 더 조심스러울 수밖에 없다. 결국 겨우겨우 버스를 타고 쿠스코로 향한다. 쿠스코는 부디 만족스럽기를 빌어본다.
이제 버스를 타고 16시간을 이동하면 된다. 우리는 긴 시간이니 만큼 가장 좋은 자리(그래 봐야 4~5만 원이다)를 타고 간다. 의자가 180도로 젖혀지니 너무 좋다. 문득 비행기에서 비즈니스석이나 일등석을 타는 이유를 알 것 같다.
쿠스코로 가는 방법은 우리처럼 버스를 타거나 비행기를 타고 가는 방법이 있다. 비행기는 편하긴 하지만 단점은 고지대에 적응하기가 힘들다는 점이다. 해발 0미터에서 해발 4000미터까지 한 번에 올라가다 보니 힘들어하는 사람이 많다고 한다. 그래서 우리처럼 야간 버스를 타고 가기도 한다. 단점은 길고 긴 길을 구불구불 올라가다 보니 멀미를 하는 사람도 있고 너무 긴 시간이라 심심하기도 하다. 장점은 오랜 시간 천천히 고도를 높여 고산지대에 적응이 좀 더 쉽다고 한다. 그리고 숙박비도 아낄 수 있다. 둘 다 장단점이 명확한 만큼 각자에게 맞는 선택을 하면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