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신캐니 Nov 30. 2020

오늘의 엄마 이야기(20.11.27.)

냉동새우와 초장

아침에 엄마가 아침 먹으라고 깨우는 소리에 잠에서 깼다. 

7시 반이 조금 넘었는데 남편은 출근하고 아이들은 벌써 일어나 티브이도 보고 거실에서 장난감도 가지고 노는 모양이었다. 

오늘따라 어찌나 아이들에게 밥 먹으라고 성화였는지 비몽사몽 하던 중에 주방으로 나가 보니, 

식탁 앞에서 작은 종지에 초장을 담는 엄마가 보였다. 

그 옆에는 얼마 전에 튀김을 하려고 사둔 냉동새우가 그대로 냉동된 상태로 스티로폼 트레이에 담긴 채 놓여있었다. 

이미 두세 마리는 먹은 듯 그 자리만 비어있는 걸 보자 심장이 쿵 떨어지는 느낌이 들었다.

이어서 불같이 화가 치밀었다. 

생새우인지, 냉동새우인지 구분도 못하고 그걸 초장에 찍어 드신 후 

아이들에게도 그걸 먹으라고 밥상을 차리고 계신다는 게 너무 답답하고 황당했다. 

그리고는 뭐 하는 거냐고 소리를 쳤다. 말하다 보니 나도 모르게 점점 더 화가 났다.

그러다가 배탈이라도 나면 어쩌려고 그러는지 정말 눈앞이 캄캄했다. 

내가 화를 내자 깜짝 놀란 아이들도 모래밭에 게처럼 슬금슬금 옆으로 기어가 티브이 앞에 조용히들 앉아 내 눈치를 봤다.




엄마는 전부터 초장을 좋아했다. 

초장에 찍어먹는 거라면 어떤 거든 가리지 않고 사랑했다. 

회는 물론 좋아했고(간장에 찍어먹는 회는 싫어했다) 데친 브로콜리를 초장에 찍어먹거나, 돌나물, 데친 쪽파 등 야채도 초장에 찍어먹는 걸 굉장히 좋아하셨다. 

지금도 새콤달콤한 초장을 먹을 때면 늘

“좋은 세상이다. 전에는 초장을 만들려면 식초, 설탕, 마늘 뭐 이거 저거 넣어서 만들어 먹어야 했는데... 

지금은 이렇게 간편하니 쭉 짜서 담아 먹기만 하면 되니 얼마나 편하고 좋으냐” 

하는 말을 늘 레퍼토리처럼 하신다.

 

하지만 아무리 그래도 냉동새우를 익히지도 않은 채 회처럼 그대로 초장에 찍어 먹는 건 너무 했다.

한바탕 화를 내고 냉동새우를 정리해서 넣어두고 한참이 지나도 감정이 잘 사그라들지 않았다.

그래서 땀을 흘려가며 화장실 청소를 했다. 

부글거리는 거품 속으로 솔질을 슥슥 하면 누런 땟국물이 나올 때 희열이 느껴졌다.

내 감정은 그저 이렇게 다스리지만, 엄마의 위험함은 어떻게 다스려야 할까. 


이 글을 쓰는 밤까지 엄마는 설사하는 기색이나 배 아파하는 기색이 없으니 천만다행이다. 

아무리 회를 좋아하시기로 정말 그걸 꺼내서 초장에 찍어 드실 거라곤 상상도 못 했다.

치매라는 질병은 정말 무섭다.

어디로 튈지 모르는 불안함을 늘 갖고 사는 것이 오늘따라 너무 피곤하게 느껴진다.

내가 어디까지, 언제까지, 무엇을 더 잘 컨트롤할 수 있을지 무기력한 생각도 든다.


작가의 이전글 오늘의 엄마 이야기(20.11.26.)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