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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신캐니 Nov 09. 2020

오늘의 엄마 이야기(20.11.7.)

해가 지면 집으로 가야한다. 설사 여기가 어딘지, 내가 누군지 모를지라도

- 일몰 증후군 이란:  치매 환자가 밤에 보이는 불안 반응이나 소동으로, 치매 환자에게 흔히 나타나는 행동 심리 증상이다. 치매 환자는 해가 진 후에 더욱 혼돈스러워하는 경향이 있다. 낮에는 일상적으로 생활하다가도 일몰 후에는 초조해하고 불안해하면서 쉽게 화를 내거나 과민 반응을 보인다. 강박적이거나 난폭한 행동을 보이기도 하고 심한 경우 환각이나 망상 증상도 나타난다. 이 때문에 밤에 화재 사고나 실종 사건이 발생하기도 한다.   

출처: [네이버 지식백과] 일몰 증후군 (시사상식사전, pmg 지식엔진연구소)


주말 아침이라 아이들과 이불에서 뒹굴거리며 놀았다. 

늦은 아침이었고 남편은 일찍 출근했으니, 사위가 밥을 안차려 주고 출근한 모양이었다. 

엄마가 아침을 차리고 싶으신 지 주방을 계속 들락날락거리시는 눈치가 보였다. 

평소 같았으면 그쯤 일어나 아침을 차려드렸을 텐데, 오늘은 주말 아닌가! 

주말 아침은 좀 넉넉히 누워있어도 되겠지 하는 생각에 몇 번이나 아침밥을 기다리는 엄마의 인기척이 느껴졌으나 모른 척했다. 

이불속에서 승규가 좋아하는 아기 놀이도 해주고 예진이와 아이패드를 들고 배 깔고 엎드려 누워 어렸을 때 노래하고 춤추던 동영상도 보다 보니 금세 9시가 넘었다.

그제서야 주방에 들어갔다. 

엄마가 현관에서 물건을 주섬주섬 치우는 인기척을 들으며 어제 먹은 닭죽을 데워고 있는데 어느 순간 조용했다. 

인기척이 들리지 않았다. 느낌이 싸했다.

조용하면 아이들은 어디선가 사고를 치고 있는데 그건 엄마도 마찬가지이다. 


"예진아, 할머니 좀 찾아봐라. 집 안에 안계신거 같아."

예진이가 화장실, 할머니방, 베란다, 현관을 부지런히 다니더니 할머니가 정말 없다고 했다.

혹시 아파트 앞 벤치에 앉아 다른 할머니와 이야기를 하시나 싶어 발 뒤꿈치를 들고 창밖을 보았지만 잘 보이지 않았다. 

아무래도 밖에 잠깐 나가셨다가 공동현관 비밀번호를 못 누르시고 현관 밖에 서 계실 것 같았다. 

지난번에도 몇 번이나 그랬었기 때문이다. 

번호는 잘 외우시는데, 항균비닐이 붙은 이후로는 영 문을 못 여신다.

혹시 멀리가신걸까 하는 불안함을 꾹 누르고 태연한 척 예진이에게 말했다.

 

"그럼 엄마는 이거 죽 좀 데우고 있을 테니까 예진이가 요 앞에 현관까지만 가서 할머니 혹시 문 못 열고 서계신지 좀 보고 올래?"

"응! 옷 갈아입고 나갈게!"

예진이가 옷을 후다닥 갈아입고 현관 앞으로 나섰다.

"혹시 할머니 안 계시면 그냥 바로 들어와. 엄마가 찾아볼게."

어깨를 토닥이며 중문을 열고 내보내는데 비밀번호 누르는 소리가 띠띠띠띠 들렸다.

"할머니 왔다! 할머니!"


엄마는 외투도 입지 않고 나갔다 와서 인 지 얼굴이 뻘겋게 상기된 채 숨을 쌕쌕거리며 들어오셨다.

"아이고 춥다. 왜 나와있나?"

"엄마 안 와서 어디 갔나 찾으러 갈려고 했지! 어디 갔다 오는 거야?"

"아이고 뭘 할머니가 애도 아니고, 찾으러 나온다고 난리냐. 그냥 요 앞에 잠깐 나갔다 온 건데."


예진이가 7~8개월 무렵 엄마를 모시고 나, 남편, 아기였던 예진이와 함께 안산으로 이사 갔었다. 

그때 딱 요 무렵이었다. 찬바람이 막 불기 시작하는 11월쯤 겨울의 초입이었다. 

엄마가 집을 나가버리는 바람에 아기를 아기띠에 안고 워머를 머리 끝까지 씌우고 온 동네를 돌아다녔던 일이 생각났다. 


안산으로 이사 간 걸 엄마는 정말 싫어하셨다. 

결혼 후 엄마와 아빠가 분양받았던 향남지구의 새 아파트에 살고 있었다. 

남편은 늘 긴 출퇴근 시간이 불만이었고, 나는 그다음 해에 복직이 예정되어 있었으므로 직장이 가까운 안산이나 수원 쪽으로 이사를 가고 싶어 했지만(물론 엄마를 모시고) 친정 아빠는 향남에서 계속 살았으면 하셨다. 

그래서 어쩔 수 없이 남은 휴직 기간의 몇 개월만이라도 남편의 학교와 가까운 안산의 오피스텔에서 한번 살아 보기로 결정했다. 


오피스텔은 복층이었다. 방은 없었고, 1층은 주방과 거실, 2층은 허리가 채 펴지진 않았지만 침실로 쓰기엔 딱이었다. 좁고 높은 계단이 있어 아기가 좀 걱정되었지만, 난간을 잘 막는 것으로 해결하기로 했다. 

주방 아래엔 작은 드럼세탁기가 있었고, 계단 아래엔 수납장이 있었다.

 화장실은 한 사람이 들어가면 꽉 찰만큼 작았다. 

그럭저럭 깨끗한 편이었고, 34평의 아파트를 청소하다가 요 작은 오피스텔을 청소하니 딱 반만 한 살림살이를 하는 느낌이었다.

점심시간에 남편이 나와서 점심을 먹고 가기도 하고 퇴근도 훨씬 빨라졌으니 어린 아이를 더 오랜 시간 봐줄 수 있어 독박육아에서 벗어나니 훨씬 편했다. 


하지만 주말마다 교회를 가기 위해 향남에 있는 새 아파트에 가게 되면 자꾸만 현실을 자각하게 되었다. 

'이렇게 따뜻하고 햇빛도 잘 드는 좋은 집을 놔두고, 내가 왜 거기서 고생을 하는 걸까?' 


우선 오피스텔은 건조했고 웃풍이 셌다. 

예진이는 아토피가 심해서 그 무렵부터 얼굴에 진물을 달고 살았다.

다니던 소아과도 바뀌었고, 의사들의 말과 처방은 모두 달랐다.

가습기를 틀어도 건조했고, 웃풍 덕인지 감기를 달고 살았다. 

허리도 펴지지 않는 2층에서 매일 이불을 모조리 펴놓고 침구청소기를 한 시간씩 돌릴 때면 누워서 보채는 예진이에게 신세한탄이 절로 나왔다. 

보행기는 다닐 공간이 없어 점퍼루, 쏘서 같은 아기용품을 놓으니 편히 다리 펼 자리도 마땅치가 않았다. 

엄마가 화를 내기 시작한 건 그때부터였다.


"당장 장로님(사돈어른, 나의 시아버지) 불러와라. 도대체 이게 집이나? 여기서 어떻게 애까지 데리고 산다고... 세상에..."

이런 말을 하루에도 열 번이 넘도록 반복했다. 

그러고 내가 더 이상 대꾸를 안 하면 물끄러미 화난 채로 앉아있다가 없어져 버리는 패턴이 슬슬 반복되었다. 

주로 내가 애를 재우거나 화장실 청소를 하느라 정신을 딴 데 두고 있을 때 없어졌다. 

정말 귀신같았다.

엘리베이터를 타러 나가시는 걸 잡아오기도 하고 오피스텔 아래 편의점 앞에서 잡아오기도 했다.

하지만 그 날은 정말 찾을 수가 없었다.


"오빠! 엄마가 없어졌는데, 내가 지금 30분째 찾는데 안 보여. 언제 나가신 건지도 모르겠어. 어쩌지?"

떨리는 목소리로 남편에게 먼저 전화했다.

남편도 심상치 않다고 느꼈는지 학교 선생님들에게까지 부탁해서 함께 동네 전체를 뒤지기 시작했다.

(남편의 직장은 안산의 고등학교였다.)


지금은 실종신고를 여러 번 해본 경험으로 알게 되었지만 실종자를 찾는 데엔 초기 몇 시간이 정말 중요하다. 

시간이 흘러가버리면 수색해야 하는 범위가 기하급수적으로 늘어나버리기 때문이다. 

그때엔 경찰에 실종신고할 생각까지는 못했고, 그저 발로 뛰기도 하고 차를 타고 돌기도 하며 대여섯 명의 선생님들과 함께 무조건 계속 찾으러 다녔다.

해는 점점 져서 어둑해졌고, 바람은 여전히 쌀쌀했다.

어린 아기에게 우주복을 입히고 워머까지 씌웠지만 나는 맨발에 슬리퍼를 신고 뛰어다녔다는 걸 알았다.

남편은 엄마가 스스로 집을 찾아 오 실 수도 있으니 아기를 데리고 집에 들어가 기다리라고 했다.

하지만 집에서 기다리는 것은 밖에서 찾는 일보다 더 속이 타는 일이었다. 

가만히 있기가 힘들어 좁은 오피스텔 방안을 종종걸음으로 돌아다녔고, 혹시나 싶어 엘리베이터가 열리는 소리가 나면 계속 현관문을 열어보았다.


결국 두 시간쯤 후에 안산역에서 엄마를 찾았다.

지하철 대합실에 물끄러미 앉아 계신 걸 동료 선생님이 찾아서 모시고 왔다.

엄마는 나를 보자마자 무척 반가워하셨다. 

눈에 눈물이 고일만큼 환하게 웃으셨다. 아주 오랜만에 만난 딸을 보듯이.


그리고 우리는 두 달 만에 오피스텔 생활을 접고 다시 향남으로 돌아왔다.

아파트는 따뜻했고, 엄마는 이제 사돈어른을 모셔오라고 하지 않았지만 나는 중문 바깥쪽에 잠금장치를 설치했다.

가끔 쓰레기라도 버리러 나가거나 마트에 갈 때면 잠금장치를 걸어두고 나갔다.

엄마가 보는 앞에서 문을 잠그기가 너무 가슴이 아파서 엄마가 잘 다녀오너라 하고 뒤돌아 들어가시면 기다렸다가 살짝 잠가두고 다녀오곤 했다. 


그 이후로 지금까지는 엄마와의 생활은 거의 실종에 대한 두려움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늘 반복되는 실종에 핸드폰을 사고, GPS를 달고, CCTV를 설치해보기도 했지만 여전히 불안에 살고 있다.

(엄마는 CCTV를 달고 감시한다며 싫어하셨고, 핸드폰을 베란다밖으로 던져버린적도 있다.)

오늘 아침과 같은 일은 사실 너무나 흔한 일이다.


엄마의 실종에는 늘 패턴이 있다. 

특히 해가 질 무렵 원래 살던 당신 집으로 돌아가시려고 하며 불안해하신다.

바로 일몰증후군이다.


또한 외출했다가도 갑자기 집에 가야 한다며 혼자 어디론가 가버리려고 하셔서 타지에서도 잃어버렸다가 찾은 적도 많다.

집으로 돌아가고 싶어 하는 회귀본능이 안타까울 정도로 강렬하다. 

어딘지 모르는 곳에 도착했을 때에 어떤 기분일지, 내가 왜 걷고 있는지 어디로 가고 있는지 갑자기 리셋될 때 얼마나 불안하고 공포스러울지 상상하면 다시 한번 내 가슴이 저릿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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