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신캐니 Nov 10. 2020

오늘의 엄마 이야기(20.11.8.)

엄마와 나의 공통 지점, 며느리

일요일 저녁 시댁에 다녀왔다. 

시 아주버님 생신이라 가족끼리 저녁 식사 모임이었다.

엄마가 저녁에 드실 밥과 반찬을 챙겨놓고 쌀만 안치면 된다고 엄마에게 말하며 서둘러 인사를 하고 집을 나섰다.

"걱정 말아라. 애들이나 잘 챙겨라. 차 조심하고."


한참 고기를 구워 밥을 먹고 있을 때 집에서 전화가 왔다.

엄마였다.

"니는 지금 시간이 몇 신데 집에는 안 오나?"

무슨 일인지 물으니 더욱 화를 내신다.

"내가 집 지키는 개도 아니고! 나는 내 집으로 갈란다! 끊어라!"

화가 단단히 나셨다.

이유는 간단했다. 끼니때가 되었는데 아무도 없으니 당신이 밥을 차려야 해서 화가 나신 거였다.

그렇다고 내가 지금 집으로 돌아갈 수 있는 것도 아닌데, 시댁에 갈 수밖에 없는 며느리의 자리와 의무를 알고도 저러시는 건 아닐 텐지 하면서 속으로 달래며 음식을 넘겼다. 

하지만 야속한 마음이 드는 건 어쩔 수가 없었다. 

혼자 밥도 하실 수 있으면서 저녁 한 끼 정도는 혼자 드시면 어때서 하는 생각에 속이 상했다.

물론 엄마도 혼자 드실 수 있고, 잠시 후 전화를 다시 걸면 언제 화를 냈냐는 듯이 웃으시며 딴소리를 하신다.

밥은 물론 잘 드셨고.


밥이 어디로 들어가는지 모르게 신경이 쓰여 좋지 않은 기분으로 저녁식사를 마쳤다.

식사 후에 시댁으로 가서 케이크도 같이 자르고 아이들 재롱도 보며 시간을 보냈다.

시부모님께서 친청엄마도 같이 모시고 오지 그랬냐며 물으셨다.

"엄마가 피곤해하셔서요."


반은 거짓말이었다.

그전엔 엄마를 모시고 같이 시댁에 온 적도 많다.

엄마는 시부모님 앞에서도 큰소리로 남편의 흉을 봤고 남동생을 욕했다. 

시어머니는 여태 살면서 자녀에게 욕을 하신 적이 한 번도 없다는데 엄마는 “**새끼”라는 말을 사돈 앞에서도 스스럼없이 하셨다.

그럴 때면 나는 벌거벗고 그 자리에 앉아있는 느낌이 들었다.

아무도 궁금해하지 않는 옛날 엄마 살던 동네 아줌마 얘기까지 이야기가 확장되는  바람에 어디서 이야기를 끊어야 할지 몰라 분위기는 늘 어색해진다. 

그러다 식사시간이 되면 눈치 없이 밥을 자리에 앉아 받아 드신다.

 상석에 앉으시면 시부모님 뵙기가 송구스러운 것이 보기가 힘들고 말석에 앉으시면 구석자리 애 서 맛있게 밥을 드시는 모습이 불쌍해 보여 보기가 힘들다.


그 누구보다 어렵다는 시댁 식구들에게 치부를 드러내는 것도 아랑곳하지 않는 뻔뻔스러울 정도의 태연함을 사랑으로 덮어주시는 시부모님의 넓은 아량과 비교하면 감사했지만, 반대로 자존심이 무척 상했다. 

어리숙한 엄마의 행동을 보는 것만으로도 내 마음을 송곳으로 누군가 계속 할퀴는 느낌이 든다. 

고개를 돌리고 싶을 정도로.


그래서 나는 계속 보는 것을 멈추기로 결심했다.

나중에 정신이 돌아온 엄마에게 핀잔을 들을 것 같았고, 무엇보다 지긋지긋할 정도로 내 마음에 생채기를 내는 일은 이제 좀 줄이고 싶었다.

시아버님은 다음번에 꼭 모시고 오라고, 부모님 잘 모시고 다니는 게 효도라고 말씀하셨다.

나는 알겠다고 대답했지만, 그저 시아버지의 어른다운 올바른 말씀에 동의한다는 뜻이었지 그렇게 바르게 행동하겠다는 뜻은 아니었다.


사돈 될 사이라고 어려워만 하던 예전의 엄마가 생각났다. 

엄마는 씩씩하고 대범했지만 늘 못 배우고 가난하다는 자격지심 때문에 어쩔 땐 이상하리만치 숙이기도 했다.

예비 사돈에겐 늘 그랬다. 

'딸 가진 죄인'이라는 말이 딱 맞게 굴었었는데, 지금은 딸을 죄인으로 만드는 게 아닌가 싶은 생각도 들었다.




엄마와 나의 며느리 노릇은 명절이 되면 가장 가슴이 아프다.

엄마는 명절이 되기 2~3주 전부터 명절 걱정을 하신다.

강원도 동해에 있는 큰집에 언제 가야 하는지, 명절 음식 장만은 어찌할지, 할머니가 건강이 좋으시고 무탈하신지, 큰아빠는 또 술 먹고 술주정을 하지는 않을지, 고모들의 잔소리는 얼마나 소란스러울지 등등.

엄마의 명절은 아직도 10년 전에 머물러 있다.

친정아빠는 작년 겨울 돌아가셨다.

큰엄마와 큰아빠는 이혼을 하셨고 이제 큰집에 모이지 않는다.

할머니는 노환으로 요양병원에 계신다.

엄마가 명절에 해야 할 일이라곤 이젠 아이들의 세배를 받거나 전을 먹는 일 정도일 뿐인데 아무리 이야기를 해 드려도 기억이 멈춰버린 10년 전과 늘 같은 고민을 하고 계신다.


나는 그런 엄마를 두고 명절 연휴엔 며느리 노릇을 하러 시댁에 다녀온다.

시어머니가 챙겨주신 엄마가 좋아하는 전, 갈비, 식혜 같은 음식을 싸가지고 집에 돌아와 보면 엄마는 남동생과 배달 음식을 시켜먹고 티브이를 즐겁게 보고 계신다.


나는 둘 다 잘하고 싶은 욕심 많은 사람이다.

며느리 자리도 잘 지키고, 치매에 걸린 엄마 딸의 자리도 잘 지키고 싶다.

엄마의 품위를 지키고 싶지만, 엄마의 품위를 지키기 위해 엄마와 나에게 스트레스를 주고 싶지 않다.

시부모님의 권위를 지켜드리고 싶지만, 그렇다고 엄마의 치부를 드러내 보여드리고 싶진 않다.

엄마와 같이 살면서 매일매일 사랑해주고 싶지만,  같이 산다는 건 매일매일 서로 상처 주는 일이기도 하다.

현실과 이상의 괴리 속에서 나는 점점 부정적이고, 금방 포기해버리고, 그래서 잘 되지 않는 것을 우울해하는 사람이 되어간다.


저녁 늦게 집에 돌아오니 엄마는 또 반갑게 맞아주셨다.

언제 화를 냈냐는 듯이, 시댁에 다녀오느라 얼마나 힘들었냐며, 며느리가 다 그런 거라고 하셨다.

주방을 둘러보니 밥도 새로 해서 드셨고, 깨끗이 잘 치워 두셨다.


엄마에겐 없어져 버리는 행동과 말이 나에게는 아직 남아있어 이렇게 신경이 쓰이는데, 그나마 둘 중 한 명에겐 사라져 버리니 다행으로 생각해야 할지도 모르겠다. 

 




작가의 이전글 오늘의 엄마 이야기(20.11.7.)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