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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예령 Jul 13. 2023

돌이킬 수 없는 것들에 대하여

나의 첫 번째 한 줌



첫 번째 한 줌,

잡으면 흩어져버릴 후회


어느 날 나에게 물었다.

'너는 지금 옳은 선택을 하고 살고 있는 것 같니?'

'흠, 글쎄 맞을까?'


곰곰이 생각해도 명쾌한 답이 나오질 않는 걸 보니 아마도 아닌 것 같았다. 엄청나게 큰 좌절감을 겪은 것도 아니고, 그렇다고 엄청나게 뿌듯한 일들이 생기지도 않은. 불안함과 평온함의 딱 중간이랄까? 너무 평온해서 불안한 그런 느낌인 건가도 생각이 들었다. 긍정적으로 살기, 정말 쉽지 않은 일이라는 것을 매 순간 느끼곤 한다.


올해 가장 열심히 준비했던 도전이 뭐야?라고 물어본다면 나는 지체 없이 '출판학교 지원 준비'라고 답할 것이다. 출판업계 직종은 처음이라 긴 과정을 잘 헤쳐나갈 수 있을까? 에 대한 물음표가 가장 컸지만, 왠지 모르게 올해 공고가 지나면 다시는 나에게 돌아오지 못할 기회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래서 일단 스스로를 믿어보기로 했다.


지난 4월부터 5월까지 약 한 달 동안 출판학교에 들어가기 위해 열심히 준비했다. 서류전형에서부터 독서이력서와 서평 등 이것저것 준비해야 할 것들이 많았다. 일을 하고 돌아와서 밤을 꼬박 새워가며 준비했다. 열심히 준비하다 보니 내가 쓴 것들을 몇 번씩 돌아볼 만큼 정이 들기도 했다.


'서류전형 합격'

참, 보기만 해도 심장이 찌르르하고 울리는 한 문장이다. 열심히 준비한 것에 대한 보상을 받은 것만 같아 날뛰듯 기뻤다. 2차는 필기시험, 역시나 밤을 꼬박 새우며 열심히 준비했고, 합격이라는 결과를 얻어낼 수 있었다. 드디어 마주한 마지막 관문인 '면접'. 제일 무서워하는 전형이기도 하다. 달달 외우면 오히려 너무 기계적인 모습처럼 보일까 봐 그냥 나를 보여주자!라는 식으로 생각하고 준비해 봤지만 역시나 나는 즉흥과는 거리가 먼 것 같았다. 최대한 자연스럽게 보일 수 있도록 몇 번이고 말하기 연습에만 몰두했던 며칠이었다. 까마득히 멀게만 보였던 한 달이 순식간에 지나가버렸다. '이렇게 열정적으로 무언갈 준비한 적이 있었던가?' 생각하며 내심 뿌듯하기도 했던 시간이었다.


결과적으로는 최종 전형에서 불합격했다. 면접을 보고 나오면서 대답을 잘 하긴 한 건지 긴가민가한 마음을 떨칠 수 없어 내심 불안했는데 왜 불안한 생각은 어김없이 들어맞는 것인가 원망스러웠다. 게다가 면접 후 바로 다음날 동생과 일본여행을 떠난 터라, 재미있게 놀고 와서 듣는 슬픈 소식은 어찌나 슬프던지. 여행하며 웃었던 모든 웃음들이 부정당하는 것만 같았다. 집에 와서 가족들에게 결과를 전하며 참았던 눈물을 펑펑 쏟았다. 훌쩍거리며 울면서도 한편으로는 나도 모르게 눈물이 났다는 사실이 놀라웠다. 무언가를 이렇게 진심으로 바라며 열심히 준비한 적이 없어서 그랬던 게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예령아, 그냥 운이 아니었던 거라고 생각해. 더 좋은 기회가 분명히 찾아올 거야"

가족들이 건네는 위로의 말을 들으면 잠시 수긍하다가도, 이내 괜스레 후회가 되었다.

'그냥 얌전히 긴장한 채로 기다릴 걸 괜히 시시덕거리면서 놀러 갔다 와서 이런 결과가 나온 걸까?'

지금 와서 생각해 보면 정말, 말도 안 되는 후회가 따로 없었다. 내가 적은 제목 그대로, 잡으면 흩어져버릴 후회에 불과했다. 여행에서 돌아온 날, 정성스럽게 포장해 온 어버이날 감사케이크에 눈물만 흠뻑 쏟아냈던 아린 저녁이었다.




이전에는 크게 삶의 목표에 대해 구체적으로 계획하고 생각하기보다는 그냥 나는 어떤 삶을 살고 싶다 정도의 바람만 꿈꿔왔었다. 거창하지 않은 결과라도 좋으니, 내가 이상하는 삶에 조금이라도 가까워질 수 있는 한걸음이라면 꽤 값진 경험이라고 생각했다. 어떤 이들은 큰 꿈을 갖고 과감히 행동해야 한다고 말하지만, 모두들 각자만의 속도가 있고 나는 나에 맞는 속도가 무엇인지 알기에 그에 맞게 차근히 나아가는 중이다. 쉽게 관심을 갖고 쉽게 식어버리기도 하는 나이기에, 그 무엇보다도 글을 쓰는 것만큼은 꾸준함이 중요하다고 생각했다. 내가 질리지 않고 오래도록 사랑할 수 있도록 내가 원하는 것들을 은은하게 데워가자고 생각했다.


하지만 한 줌의 생각이 턱, 하고 나의 발길을 막아섰다. 바로 돌이킬 수 없는 것들에 대한 후회. 정말 흩어져버릴 한 줌의 생각에 불과한, 손가락 사이로 사라져 버리고 말 그런 생각들 말이다. 항상 후회하지 않는 삶을 살아야겠다고 다짐해 왔는데 나는 결코 그 다짐에 따르지 않고 있었다. 되새겨왔던 다짐들이 방심할 때 또다시 후회했다. 후회하지 않기 위해선 나의 선택에 책임을 질 수 있고, 후회하지 않을 결심을 해야 한다는 것을 누구보다 잘 알고 있었다. 정말 필요한 것은 긍정이라는 것을 알고 있었지만 맘처럼 잘 되지 않았다.


스스로 면접을 말아먹었다고 자책할 것이 아니라, 괜히 놀러갔다며 후회할 게 아니라 지난 일들은 잊고 다시 앞으로 나가야만 했다. 최선을 다했으니 되었다고, 앞으로의 것에 더욱 열정을 쏟자고 자신을 토닥였어야했다.


언제쯤 성숙한 선택을 할 수 있을까 자책하고, 왜 홀로 우뚝 설 수 없는가에 대해 공허해졌다. 선택의 결과에도 당당할 수 있는 방법, 나를 다독이고 다시 앞으로 나아갈 방법은 없는 걸까? 실패와 실망과 절망은 정말이지 마주하기 싫은 존재들이지만 살면서 불가피하게 마주하게 되는 것임을 인정하고 덤덤하게 대할 줄 알아야 함을 깨닫는다. 한걸음 뒤에서 나를 바라보면 이런 방황들이 스스로를 어리다고 생각하게 만들지만, 그런 불안정하고 흔들리는 것들에서 벗어나기 위한 또 다른 도전이 필요할 것 같다.


힘껏 움켜쥐어봤자 이미 바스러져 흩어져버릴 후회를 나는 과연 꽉 쥐고 흔들릴 필요가 있을까? 이 글을 쓰며 되돌아본다. 햇살 좋은 날의 모래처럼, 손가락 사이를 빠져나갈 생각들이라면 잡더라도 후하게 놓아주자 생각해 본다. 그렇게 나의 첫 줌은 이 글에서 깔끔히 보내주기로 한다. 이제는 더 이상 나를 위한 새로운 선택에 나를 미워하지 않기로 마지막 문장을 미루어 결심한다.  




이번 매거진에는 일상을 보내며 스치듯 지날 수 있는 한 줌의 생각들에 대해 담아보려 한다. 시간에 스쳐가는 작은 한 줌일지도 모르지만 나를 일으키게 할 수도, 돌이키게 할 수도 있기에 놓치지 않기로 했다. 당신의 마음에, 혹은 뇌리에 스쳤던 한 줌의 생각은 무엇인지 궁금해지는 저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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