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주를 능력으로 바꾸기

<극장판 주술회전 0>을 봤다

by 강주피

긍정의 나를 발굴해보자고 마음먹은 지 며칠이 지났다. 많은 사람들이 긍정적인 사람이 되려는 결심에 부딪힌다는 건 잘 알고 있다. 다만, 주인공 강주피의 드라마에서 그녀의 마음가짐은 조금 특별하다. 그는 ‘사회과학도’라는 이름으로 얼마나 스스로를 옭아매 왔는지 얼마 전에 알아챘다. 학술 활동이라는 명분으로 그녀는 자기 자신에게 족쇄를 채우고 있었다. 긍정의 힘에 반기를 들어왔고, 생각은 그녀를 오랫동안 아주 논리적으로 지배해왔다. 그렇기 때문에, 지금 그의 깨달음은 한 편의 드라마에서 클라이맥스에 해당할 것이다.


요새 입맛이 없다. 몸이 계속해서 쑤신다. 툭하면 눈물이 흐른다. 글도 잘 써지지 않는다. 썼다 지우고, 또 썼다 지운다. 숨 쉬고 걷고 말하는 모든 일에 이전보다 두-세 배의 힘이 든다. 밥 먹고 난 뒤에 곧잘 하던 설거지도 쉽지가 않다. 거기에 해야 할 일, 아니, 해야 한다고 생각하는 일도 늘어난다. 웨잇리스트로 걸려있는 학교에서 주최하는 행사나 미팅이 줄줄이 이어진다. 조바심에 적당히 관심 있는 기업들에 서류도 제출하고 있다. 서류가 통과한 기업들에서 날아오는 면접 소식도 있다. 문득 느꼈다. 알아차림의 대가가 꽤 크다는 사실을. “윙가디움레비오사”라고 외치며 마법봉을 한 번 탁 친다고 변하지 않는다. 조울증 마냥, 해가 지면 제법 침착해졌다 해가 뜨면 다시 불안해진다. 마음의 엔진이 너무 빠르게 작동하는 탓에 몸이 힘들다고 외친다.


미뤄둔 약속을 더 미룰 수가 없어서 오랜만에 친구를 만났다. 계약직으로 대학 내 국제교류 부서에서 일하며 알게 된 친구다. 그를 만나기 전, 토익 시험을 치러 갔다. 집에서 가까운 중학교를 20분 정도 걸어가는 데에 눈물이 쏟아질 것 같았다. 아니 쏟아졌다. 또. 어제도, 그제도, 그그제도, 그렇게 울어놓고 눈물샘은 주책맞게 다시 유난을 떨려고 했다. 요새 나로 인해 새벽 넘어 아침에 자는 단짝에게 카톡을 보냈다. “신이 있다면 더 크게 하시려고 이런 고통을 주시는 거겠지.” 또다시 자포자기의 문장을 내 손가락으로 쳤다. 눈물을 애써 훔치며 시험장으로 향했다. 그리고 대문을 통과하기 전, 어느 새부터 시작된 나만의 의식을 치렀다. 네이버에 ‘오늘의 운세’를 검색하고 총평과 시험운을 확인했다. 시험운에서는 자만하지 말라했고, 총평에서는 기운이 가득한 하루라 했다. 이것도 참 믿기 어렵구나.


꼬르륵 거리는 배를 붙잡고 시험을 마무리한 뒤, <극장판 주술회전 0>을 보러 합정역으로 향했다. 친구는 애니메이션 덕후인데, 마침 동생네 회사에서 초대권이 나왔다. 애니메이션보다는 드라마 파인 나이기에, 사실 친구가 아니라면 관심조차 가지지 않을 영화였다. 최대한 정신을 바짝 차리고 식사를 한 뒤, 영화관에 들어섰다. 오후 7시였다.


애니메이션에는 큰 흥미가 없어서 별로 기대는 하지 않았다. 영화를 보기 전, 친구에게 정보만 간단히 물어보았다. 그는 주술 고등학교 학생들의 이야기라는 것과 그 주술이 어떠한 목적으로 사용되는지 정도를 설명해주었다. 자세한 설명이 필요하지도 않았다. 영화관에는 생각보다 사람이 많았다. 적당한 거리두기를 하고 앉았다. 귀찮아서 화장실도 다녀오지 않았는데, 필요하면 중간에 나가서 다녀와야지 싶었다. 자리에 앉자마자 저녁과 함께 살짝 마신 맥주 기운이 도는 듯했다. 몸이 더 쑤시기 시작했다.



7시 10분쯤, 영화가 시작했다. 어린 시절 평생을 약속한 여자 친구가 죽고, 그녀의 존재가 망령으로 씌워진 주인공이 등장하며 이야기가 시작되었다. 망령은 주인공 주위를 맴돌며 힘을 발휘했다. 저주로 인해 주변 사람들을 해치는 스스로를 부정하며 세상을 등지려던 순간, 그는 자신을 찾아온 한 교사를 따라 주술사들이 모인 학교에 입학한다. 그 이후의 내용은 스포일러가 될 수 있기에 자세히 설명하지는 않으려 한다. 솔직히 설명하기도 어렵다. 영화는 주술사들의 우정부터 선과 악의 정의에 대한 질문까지 등 많은 주제를 한 번에 엮어낸다.


영화 전반에 깔린 주인공의 성장 스토리 때문일까, 관람 내내 나는 끊임없이 지금의 나를 떠올렸다. 줄거리를 이해하면서 나를 반추하는 일이 동시에 가능하다는 사실에 놀랐다. 주인공이 “누군가가 날 필요로 해서, 내가 살아도 된다는 자신감이 필요해.”라고 외치며 저주에 걸린 스스로를 자책할 때 내가 보였다. 그가 눈앞에 벽을 깨려 할 때는 촌스럽게 ‘힘내’라는 응원을 마음속으로 외쳤다. '힘'을 내는데 얼마나 많은 '힘'이 필요한지 잘 알기 때문이었다. 클라이맥스에서 그가 사력을 다해 적을 물리칠 때는 온몸에 소름이 돋았다. 영화관의 질 좋은 스피커 덕분에 머리부터 발 끝까지 시원한 기운이 한순간에 돌았다. 아마 나도 그렇기를 바라기 때문이겠지.


주인공의 학생증에는 주술사 등급이 적혀있었다. 2급도, 1급도 아닌 특급이었다. 그러나 그 특급의 실력, 아니 저주는 그를 고통받게 했다. 그는 저주로 인해 다른 사람과 연결되지 않고 스스로를 구속하려 했다. 그리고 영화가 막판으로 치달으며 자신에게 걸린 저주가 실은 온전히 자신의 역량임을 알아챘을 때, 그는 대체 불가한 사람이 되어 있었다. 그는 자신이 믿는 정의, 그것을 위해 온전히 자신의 힘을 사용했다. 그는 특별했다. 문득 생각했다. 나는 내 능력을 저주라고 믿고 있었던 건 아닐까. 사실 저녁을 먹으며 친구에게 요즘의 고민을 가볍게 털어놓았다. “요즘 내 영어 실력에 대한 의심을 너무 많아져.” 친구는 답했다. “6개월이 넘는 동안 영어로 수많은 교수와 학생을 응대한 건 너였어. 그거 아무나 하는 거 아니야.” 솔직히 아직까지 그녀의 칭찬이 완전히 와닿지 않았지만, 믿어보기로 했다. 작은 믿음이 하나둘 쌓일 때, 내 저주를 능력이라고 받아들이는 날이 오지 않을까 생각하며.



집에 돌아오는 길에 브런치 글을 하나 읽었다. 작가는 자포자기한 심정으로 자신의 헬스 트레이너에게 물었다고 했다. “선생님, 한 동작을 오래 하다 보면 힘이 빠져서 뒤에 자세가 무너져요. 그래도 계속하는 게 의미가 있나요?” 트레이너가 답했다. “자세가 조금 틀려도 결국 근육은 붙고 있어요. 그러니 계속하세요.” 요즘 내 자세는 완전히 무너졌다. 나는 그 무너진 자세로 같은 동작을 하염없이 하고 있다. 그래도 일단 약속된 개수를 채우려고 한다. 30개째라면 당장 31개째에 집중하며. 영화 속 한 대사가 가장 오래 기억에 남는다. 훈련에 지친 주인공에게 동료가 말한다.


“고통이 있느냐, 없느냐에 따라 성장 속도는 전혀 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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