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해 대운이 들어온다고 했다
하루 종일 울어서 눈이 아프다. 눈이 빠질 것 같다. 이번 주, 도장깨기와 같은 하루하루를 보냈다. 교수들과의 면담도 있었고, 서류가 붙었다고 연락을 준 기업 또는 기관 인터뷰도 있었다. 박사를 하겠다며 벌려 놓은 학회 발표나 논문도 수습했다. 여전히 배의 힘이 드는 요즘, 중요한 일이 하루 걸러 하루 생겼다. 그래서 몸이 바스러질 것 같은 날들이 이어졌다. 스트레스가 몸을 지배한 듯하다. 몸과 정신이 분리되었다고 하는 데카르트의 이원론을 부정할 수 있는 증거가 바로 나다! 코로나 핑계로 도망칠까 수십 번을 생각했다. 그래도 결국 도망치지 않은 나에게 박수를.
정신없는 나날을 보내다 집중할 무언가가 사라지자 그 자리에 끝없는 회의와 자기혐오가 찾아왔다. 아니, 사실 그것들은 그 자리에 있었다. 애써 괜찮다고 무시했을 뿐. 대학원을 포기했다고 말하며 여전히 미련을 가지는 나약한 자신과, 낯선 취업의 세계에 뛰어들 자신이 없는 내가 끊임없이 싸우고 있었다. 선택할 힘을 잃은 와중에 결정해야 한다는 강박이 몸을 감쌌다. 뜬금없는 사람들의 시선도 보였다. 옛날에 조모임에서 싸우고 좋은 회사에 취직한 동기라든가. 엎친데 덮친 격으로, 껍데기만 남은 몸에 가진 능력보다 빠르게 돌아가는 뇌만 남았다. 능력 이상으로 빠르게 돌아가는 CPU는 결국 기계 자체를 망친다. 어제의 나, 그제의 나, 그리고 오늘 나는 고장 나고 있었다. 동생이 출근하는 오전 7시쯤 잠에서 깨 유튜브를 보기 시작했다. 피곤해도 잠이 안왔다. 울다, 다시 유튜브를 봤다. 그리고 울었다.
살아보겠다고 각종 강연을 찾아봤다. 나와 비슷한 상황에 처한 이들과 연결되려고 발버둥 쳤다. 그렇게 회의적이던 오은영 박사 님의 프로그램도 찾아봤다. 나는 이 세상의 금쪽이를 찾아 나섰고, 그들에게서 나를 찾고 다시 울었다. 사연이 달라도 아픔이 같다며 나는 같잖은 연대를 하고 있었다. 정신 차리고 보니 3시간이 넘었다. 이러지 말아야 한다고 생각하면서도 손가락은 자기혐오적인 말은 끊임없이 내뱉었다. 걱정시켜서 미안하다면서, 단짝에게 또 이기적이게 “나는 예쁜 쓰레기야.”라고 메시지를 보냈다. 석사까지 졸업했지만 쓸모 있는 능력은 하나도 없는 내가 버리지도 또 가지지도 못하는 인테리어 장식물 같았기 때문이었다. 단짝은 “'예쁜'은 꼭 앞에 붙이네?” 라며 농담으로 기운을 북돋아주려 했다. 회사일에 치이는 동생도 귀여운 이모티콘과 다정한 말로 손을 내밀었다. 그래도 나는 구덩이에 빠져있었다.
감정이 극한으로 갈수록 이상하게 엄마가 보고 싶어 졌다. 엄마에게는 아직까지 그 어떤 말도 하지 않았다. 29살이 되었으면 이 정도는 스스로 해결해보고 싶었다. 예전에 상담 선생님이 내게 그런 말을 한 적이 있다. “주피 님한테는 선생님이 한 명 있네요? 그 선생님은 끊임없이 주피 님한테 이런 사람이 되어야 한다고 훈계하고, 가르치는 것 같아요.” 상담을 받으면서 그 선생님의 자아를 떨쳐내려고 애썼지만, 스프링 같은 29살의 나는 다시 그 선생님을 꺼내 들었다. 내 안의 선생님은 말했다. ‘이 정도는 혼자 해결해야지.’ 이미 동생이나 단짝의 도움을 받고 있었지만, 애써 그 사실을 무시한 채 나는 혼자 해결해야 한다고 믿고 있었다. 그렇게 연락하고 싶은 마음을 꾹 누르며 또 울기 시작했다.
한참 울고 있던 그때, 전화가 울렸다. marmee라는 이름과 함께. 영화 ‘작은아씨들’ 속 자매의 엄마가 꼭 우리 엄마 같아서 그들이 엄마를 부르는 방식으로 저장해두었다. 5초 정도 망설였다. 솔직히 소름 끼쳤다. 며칠 째 메신저로만 연락을 주고받다가 하필 오늘 엄마가 전화를 걸었다. 말할 새도 없이 이미 전화에 대고 나는 펑펑 울고 있었다. 엄마는 당황했다. “무슨 일이야! 말해 봐!” 아무 말도 할 수 없었다. 그냥 펑펑 울었다. 엄마는 연신 무슨 일이냐고, 코로나 때문에 몸이 아픈 거냐고 물었다. 나는 답했다. “마음이 너무 아파.” 한치의 망설임도 없이 그녀가 오겠다고 했다. 도착하면 연락할 테니 내려오라고 했다. 나는 알겠다고 답했다. 엄마를 만나 차를 타고 밥을 먹으러 가는 와중에도 펑펑 울었다. 첫 연애를 끝내고 나서 “내 눈이 수도꼭지 같아.” 드립을 쳤던 것보다도 울었다. 그것보다 더 울었다. 사정을 설명하다 울고, 또 말하다 울었다. 엄마는 비싼 장어를 먹이고, 스타벅스 핫초코를 사줬다. 차에서 또 밥을 먹으면서 그녀는 이야기를 잠자코 듣다가, 화도 냈다가, 답답한 마음을 내비쳤다.
그리고 기뻐했다. 엄마는 나의 방황을 축하했다. 지금, 29살, 그리고 벌써, 아파하는 나를 보며 엄마는 다행이라고 말했다. 나의 삶이 이 젊은 나이에 순탄하지 않아서 좋다고, 빙빙 돌아가서 기특하다고 덧붙였다. 앞만 보고 달려가다 그 끝에 허망한 스스로를 깨닫지 않기 위해, 아프고 다치고 상처받으면서 주변을 돌아보는 나라서 장하다고. 엄마는 나를 집에 보내지 않았다. 대신 차를 수리하는 세 시간 동안 같이 있자고 말했다. 그녀는 카페에서 동영상을 하나 같이 보자고 했다. 정여울 작가의 강연이었다. 20대를 바쳐 대중 강연에 거부감을 표현해온 내가, 요 몇 달 사이에 웬만한 유명 강연자들을 한 사람씩 도장깨기 하고 있다. 늦바람이 이렇게 무섭다. 사실 강연이 대단히 인상적이진 않았다. 프로이트나 융의 심리학과 관련된 설명과 그녀의 깨달음을 낳은 주옥같은 명언이 이어졌다. 결국 스스로를 알아가는 과정은 힘들고, 거칠고, 가시밭길이지만 필요하다는 게 강연의 포인트였다.
강의를 듣다 문득 엄마에게 말했다. “내 띠가 올해 대운이 들어온다고 했는데, 대체 언제 들어오는 거지?” 그녀가 답하기도 전에 말을 이었다. “근데 이게 어쩌면 대운이지 않을까? 내가 뭘 좋아하고, 뭘 원하고, 뭘 하면서 살고 싶은지 죽도록 탐구하는 이 시간이 올해 내 대운이 아닐까?” 엄마는 그런 것 같다고 답했다. 나는 쉬지 않고 말을 이었다. “심지어 이렇게 힘든 시간에 나는 나를 지켜봐 주는 동생과 단짝, 그리고 엄마와 이모, 어쩌면 아빠가 있네. 이걸 머리와 마음이 모두 알아챌 수 있는 이 시간이 올해 나한테 들어온다고 했던 그 대운인가 봐.”
동생이 보내준 사진이 있었다. 노래 가사였다.
각자의 장단점이 명확한 선택지 속에서, 신자유주의가 가르쳐준 계산 가능성에 찌들어온 나는 지금도 미래의 리스크를 더하고 빼고 곱한다. 결정은 여전히 난제다. 그래도 오늘 내가 알아챈 대운은, 조금 더 그 리스크를 받아들이는 데에 도움이 될 것 같다. 나는 누군가의 셀레브리티이고, 나의 셀레브리티인 당신을 위해 응원할 준비가 되어있으니까. 엄마도 말했다. “내가 너를 좀 아는데, 너는 결국 네가 원하는 걸 해야 하는 아이야. 그걸 찾는 시간이야.”
그랬다. 대운이 이미 들어와 있었다.